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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간적인 인간. 브라이언 크리스찬 지음, 최호영 옮김. (책읽는 수요일 2012)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4. 5. 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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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점점 발전해나가는 컴퓨터의 모습을 보고 상상하게 되는 것은 보통 다음과 같은 것이다. '앞으로 컴퓨터가 얼마나 인간과 가까워질 것인가?' 그런데 이 책은 '컴퓨터가 닮아갈 인간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라는 예상 외의 질문을 한다. 즉, 컴퓨터가 인간을 닮아가고 있다는 명제가 사실이라면, "인간의 어떤 속성 때문에 컴퓨터를 인간답다라고 평가할 수 있게 되었는가?"라고 묻는다. 질문의 중심에 컴퓨터가 아니라 인간을 놓은 뒤, 인간다운 게 무엇인지를 먼저 정의하자고 하는 것이다. 그 점이 이 책이 선사해준 첫 번째 놀라움이었다.

 

두 번째 놀라움은 인공지능 컴퓨터, 튜링 테스트와 같은 공학적 시각에서 출발한 문제제기를 인문학, 철학과의 연계를 통해 이어나가는 질문 방식이었다. 이것은 이 책의 저자가 한쪽의 분야에만 머무르는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지식의 스펙트럼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많지만 여러 분야를 두루 통찰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고 그런 책도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은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을 만했다.

 

세 번째로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책이 논거로 들고 있는 다양한 정보들이다. 이 책에는 많은 사례들이 제시되어 있었는데, 이를 테면 '뇌분할 수술' 같은 것이 그렇다. 이런 다양한 사례 제시는 분명 사고 확장에 도움을 준다.

이런 주목할 만한 방법들 통해 이 책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오랫동안 별다른 의심 없이 사용되어 왔던 다음 문장, "기계가 사람을 닮아 가고 있다"라는 문장이 무슨 이유로 대두되게 되었는지를 고찰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인간과 동물을 구분해주는 도구로 '이성'을 꼽았던 그 역사적 사건 때문에 기계가 필연적으로 인간을 닮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인간의 조건에는 매우 많은 것들이 있다. 사랑, 도덕, 논리... 그리나 도박, 충동, 성욕과 같은 비이성적인 것들도 있고 꿈이나 허영 같은 기질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다양한 인간 조건 중 오로지 '이성'만을 강조함으로써 기계가 인간을 닮아버리도록 허용해버렸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만이 '이성'의 영역을 지배한다는 주장에 결정적 타격을 입히게 되었다. 컴퓨터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거의 모든 다른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공교롭게도 인간에게 고유하다고 여겨진 것을 확살하게 가지고 있다"(92쪽)

다시 정리해보자. 수리적이고 논리적인 분야에서의 능력만을 가지고 인간성을 판별한다면 컴퓨터와 인간은 결코 구별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수리적이고 논리적인 분야는 정해진 규칙이 있고 그 룰을 따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그 룰을 철저하게 따르는 컴퓨터를 우리는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 예로 이 책은 세계 체스 챔피언을 이긴 딥블루를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오로지 수리적이고 논리적인 부분에 한정될 이야기일까? 우리 인간이 행동양식을 정하면 정할수록, 즉 예의범절을 겉으로 드러낸 규칙으로 확정할수록 우리는 인간과 컴퓨터를 구분하기 어렵게 된다. 컴퓨터가 가장 잘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정해진 것(자신의 메모리에 저장된 것)을 똑같이 따라하는 것(로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컴퓨터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은 오로지 (예측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감정이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슬픔, 비탄, 좌절... 어쩌면 분노나 정신이상의 한 형태까지도. 이 책의 저자는 이성 이외의 부분에서 인간성을 찾고자 하지만---현재 일부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우리의 감정이 전기와 호르몬의 반응에 불과하다면, 먼 미래의 언젠가는 컴퓨터가 감정이라는 것을 가지게 될 날도 분명 오게 될 것이다. 그때, 인간이 인공지능 로봇과 자신을 구별하기 위해 가져다 쓸 '또 다른 정의'는 무엇일지 나는 무척 궁금하다.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에 과학과 인문학이 가장 멋들어지게 조화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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