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3부작 중 첫 번째 이야기는 '대니얼 퀸'의 이야기를 본(혹은 들은) 누군가가 옮겨 적은 형태로 되어 있다. 그 사실은 1부의 마지막에서야 드러나지만 1부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결국 1부의 이야기는 '옮겨 적은' 것이란 얘기이다. 누군가 '퀸'의 이야기를 옮겨서 적은 뒤 <뉴욕 3부작>이라는 제목으로 출판을 한 형태를 띄는 것이다. 이것은 이 소설이 꽤 복합적인 구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 우리 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작가 '폴 오스터'는 <뉴욕 3부작>이라는 소설을 출판하면서 그 소설 주인공으로 '대니얼 퀸'이라는 소설가를 내세운다. 이 '대니얼 퀸'이라는 소설가는 탐정 소설을 쓰는 역할을 맡았는데, 자신의 소설 주인공으로 '워크'라는 탐정을 내세운다. 이 '대니얼 퀸'은 현실 세계에 실제 존재하는 소설가이자 실제 이 책의 지은이인 '폴 오스터와' 외양과 직업이 같은 '폴 오스터'를 만난다. '대니얼 퀸'은 탐정 소설을 쓰는 사람이지만 마치 자신이 탐정인 체한다. 이 책의 실제 지은이인 '폴 오스터'는 탐정 소설 느낌이 물씬 나는(뉴욕 3부작) 소설을 쓰면서 그 소설 안에서 탐정으로 등장한다(대니얼 퀸은 그 사람을 만나지 못 하지만). 현실 세계의 인물인 폴 오스터는 그 자신이 소설 속에 만든 인물 '대니얼 퀸'과 상당히 닮아 있고, 소설가이면서 탐정인 체 한다는 점에서 서로 병치되는 구조를 띠고 있다. 작가가 소설 속에 자신을 등장시키는 장면은 이 소설이 취하는 방식을 드러내기 위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와 탐정이 이중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왜 그런 식으로 썼는지를 고민해보라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폴 오스터는 그런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몇몇 장치를 해두었는데, 소설 첫 부분에서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를 잠깐 언급한 것이 첫 번째 단서라고 할 수 있다(마르코 폴로는 자신이 '들은' 내용을 토대로 여행기의 상당수를 기록했으며, 그 내용은 진실이 아닌 게 상당히 많다. 또한 이 단서는 뉴욕 3부작의 세 번째 이야기에서도 잠깐 등장한다). 두 번째 단서는 세르반테스가 <돈 키호테>를 쓴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는 장면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세르반테스를 폴 오스터로 놓고 생각해 보면, 폴 오스터가 뉴욕 3부작의 구성을 설명하기 위해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를 끌고 들어왔음을 알아챌 수 있다. 세 번째 단서라고 한다면 돈 키호테의 이니셜(DQ)과 주인공 대니얼 퀸(DQ)의 이니셜이 같다는 부분이라 하겠다. 이것 역시 돈 키호테와 이 소설의 관계가 밀접하게 엮여 있음을 은근히 드러내는 장치라 하겠다.
두 번째 이야기인 <유령들>은 가상의 존재가 등장하는 이야기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중 자아, 혹은 자아 분열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 중 탐정으로 나오는 블루와, 블루의 의뢰인인 화이트는 동일 인물이며, 아마도 화이트가 블루의 가상적인 존재일 것으로 보인다. <유령들>이라는 부제는 이런 가정에 어느 정도 힘을 실어준다. 소설가라는 직업은 홀로 방에 틀어박혀 작업을 해야할 때가 많고,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외부와 단절된 채 지내는 특이한 인물로 비춰질 때가 많다. 이런 특징을 가진 인물이 바로 화이트이다. 블루는 이 화이트를 뒷조사하고 감시하는 탐정으로 등장한다. 소설가는 사회, 단체, 인물들이 벌이는 온갖 현상에 대해 탐구하고 그것을 글로 적는 일을 하는, 어찌 보면 탐정이 하는 일과 매우 비슷하게 간주할 수 있다. 아마도 그런 유사점에 착안하여 폴 오스터는 탐정에서 소설가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고, 화이트라는 소설가를 탐구하는 탐정, 다시 말해 '소설가를 탐구하는 소설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이야기는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다소 기이하고 어둡고 음산한데, 그런 분위기는 폴 오스터가 이 소설을 쓰는 시기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폴 오스터가 <뉴욕 3부작>을 쓸 무렵은 아직 작가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가지지 못한 때였고, 어쩌면 (그는 그 자신의 재능을 믿고 있었을 테지만) 자신이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또 대중에게 이해받을 수도 없을 거라는 가정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는 이 글을 쓸 무렵 이혼과 재혼을 겪었고 재정적으로 그리 풍족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골방에 틀어박힌 채 자신의 내면으로 몰두해 들어가는 삶을 겪는 자신과, 그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인물들의 시선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을 것이다. 자신을 그런 이상한 눈으로 보는 주변사람들의 시선에 탐정의 시선을 대치시킨 뒤, 그 탐정이 소설가로 '보이는' 그 인물을 이해해 나가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의 분위기를 결정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다행히 그는 (대중들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성공했다. 만일 그렇지 못했다면, 그는 이 소설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변명거리이자 자기 위안으로 삼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팬쇼'에게서는 폴 오스터가 실제 가지는 것으로 보이는 많은 모습들이 발견되는데 그런 면에서 세 번째 이야기인 <잠겨 있는 방> 역시 자아를 관찰하는 두 번째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현실 세계의 폴 오스터가 바로 소설 속의 팬쇼이거나 서술자 '나'와 동일 인물인 것이다. 어쩌면 그 둘 모두가 폴 오스터에 해당할지도 모르겠다. 팬쇼가 쓴 소설은 "전형적인 소설은 절대 아니야. 전혀 그렇지가 않아"(258쪽)라고 표현되는데, 이 표현은 바로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소설과 현실의 교차가 이 부분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폴 오스터는 이 이야기가 지닌 이런 환상성을 드러내기 위한 단서를 몇 개 두었는데, 이것은 '마르코 폴로'와 '환상 특급'이라는 단어로 암시된다. 심지어 이런 문장도 등장한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어쩌면 즐겨 볼 만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266쪽) 이 정도쯤 되면 폴 오스터가 주는 암시를 눈치채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앞의 두 편이 그랬듯 이번 편에서도 탐정이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탐정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탐정 면허를 가진)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팬쇼라는 인물에 대한 전기문을 쓰게 되어 그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게 되는데, 그는 자신이 하는 그런 자료 수집의 과정을 탐정이 하는 일의 일환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탐정 노릇을 하고 있었고 내 일은 실마리를 찾는 것이었으니까." (317쪽) 즉, 소설가가 탐정과 비슷하다는 뉘앙스를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즉 이 책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그곳의 탐정은 바로 소설가 자신이다.
이 외에도 이 소설에는 훨씬 더 많은 장치들이 있으며 그것들을 탐구할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런 장치들을 일일이 열거한 뒤 내 방식대로 해석하는 것이 내가 이곳에 독후감을 쓰는 목적이 아니므로 이쯤에서 그만두고자 한다. 나의 유령 독자들도 그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나 역시 모두에게 이해받거나 인정받기 위해 이곳에 글을 쓰는 것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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