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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출판사 2008)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4. 9. 1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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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소설은 그 이전에 읽었던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처럼 인상이 강하지 못하였다. 어쩌면 영화로 내용을 먼저 접했기 때문일지도, 아니면 처음에 놀랍게 느껴졌던 주제 사라마구의 쓰기 기법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무엇보다도 난 이 소설의 커다란 플롯에 동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이 하루 아침에 멀어버린 사람들의 세계를 완벽하게 다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세계가 강간과 살인으로 이어지고, 백색병에 걸린 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배척과 방관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리고 그 와중에도 서로 의지하며 인간다움을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설정은 내가 기대했던 주제 사라마구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기존에 익히 접해왔던 설정과의 큰 차이점이라면, 그 눈 먼 자들 속에 단 한 명의 눈뜬 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저자의 의도대로 이 소설을 따라가기 위해선 이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가 느끼는 감정을 잘 읽어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내의 행동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어느 부분에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한 면(강간, 살인, 외도)을 보이는 동시에, 어느 부분에선 또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순수(몸을 파는 여자와 한쪽 눈이 없는 대머리의 중년 남성이 눈을 뜨고 난 이후에도 사랑을 이어나가는 모습)를 보여주는 상반된 장면을 내 머릿속에서 동화시키는 데 실패한 것이다. 내가 더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이 실패를 주제 사라마구가 만들어냈는지, 아니면 사람들의 인간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내가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것이다(성 바르톨로메오의 밤을 비롯한 많은 학살들과,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위한 모금 행동처럼 지금껏 우리의 행동이 극과 극을 달려왔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이 가진 이런 갑작스러운 감정 기복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이런 의문과는 별도로, 소설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는 그의 냉소적인 위트는 아주 단단히, 그의 이름이 기대하게 만드는 바를 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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