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환풍구가 추락하는 큰 안전사고가 났다. 산악 시설 안전 담당으로, 그 이후엔 전산 보안 담당으로 일을 했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안전 사고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뒤얽혀 마음이 참착해진다.
십여 년 전, 맨홀 뚜껑을 밟았다가 그 안으로 발 한 쪽이 그대로 빠진 적이 있다. 난 그 뒤로 맨홀 뚜껑을 밟지 않는다. 내가 그때 맨홀 뚜껑을 밟았던 이유는, 저렇게 사람이 언제라도 밟은 수 있는 물체는 땅으로 쉽게 꺼지게 만들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틀어졌고, 그 이후로 난 주변 시설물에 대한 막연한 믿음을 조금씩 버리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난 지하철 환풍구를 밟지 않는다. 현재 지상에 만들어져 있는 지하철 환풍구 중 상당수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밟을 수 있다. 어떤 환풍구들은 보도와 거의 같은 높이에 있다. 그렇기에, 인도가 사람들로 붐비면 환풍구 위로 지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밟지 않는다. 물론 그 위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그 사람들은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이 쉽게 밟을 수 있는 걸 그렇게 약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렇게 약한 거라면 올라가지 못하게 어떤 강력한 조치가 취해져 있을 것인데 그렇지 않으므로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닐 거라고. 일례로, "지하철 환풍구가 높은 이유가 뭔가요?"라는 네이버 지식인 질문(2007년)에 '서울 메트로'에서 답변을 달았는데, 서울 메트로는 '위험'이나 '안전'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조금도 하지 않았다.
내가 환풍구를 밟지 않는 것은 내 개인적인 성격의 문제다. 나 역시 저 환풍구를 밟아도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밟고 지나다니는 것을 봤으며, 어렵지 않게 밟을 수 있었고, 얼마나 깊은지도 알 수 없었으며(지하철 환풍구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이 쉽게 올라갈 수 있는 환풍구의 깊이가 20m나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또 환풍구 주변에서 환풍구를 밟으면 추락할 수 있다는 표식을 본 적도, 교육 받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부실 시공을 했을 수도 있으니--- 되도록 환풍구를 밟지 말자, 하는 생각만 막연히 했을 뿐이었다. 횡단보도에서 녹색 불이 떨어져도 좌우를 살피며 걷는 나에게 그 정도의 주의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이번 환풍기 사고가 구조적인 문제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이 좀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고 희생자들에게 왜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너지 않았다고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계심이 많은 사람은 돌다리도 두드려 보겠지만, 그렇지 않은 걸 개인의 잘못으로 몰 수는 없다. 만일 환풍구가 돌다리가 아니었다면 그것을 알릴 수 있도록 사전에 무언가 조치가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랬다면 사람들은 그 위험한 곳에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옥상 난간에 '추락 위험' 표시가 없더라도 굳이 몸을 기대지 않는다. 위험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위험을 알고도 했다면 그것은 개인에게 책임이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번 환풍구 사고는 우리들 대다수가 그 위험성을 미리 알지 못했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
그런데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면 그 문제의 화살이 결국 어디를 향하게 되는가? 난 항상 이 부분이 걱정이 된다. 그 화살이 결국은 말단 안전 담당 실무자에게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말단 실무자는---말단이기 때문에---안전 문제에 대한 경험이 적을 것이고---안전에 대한 전반적인 무관심 때문에---심지어 담당하게 된 안전 업무에 대해 아주 간단한 교육 말고는 어떤 다른 교육도 받아본 적이 없을 수 있다. 안전 담당은 할 일이 별로 없다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자기 담당인 '안전'보다는 다른 업무를 복합적으로 맡고 있을 확률도 높으며, 안전만 책임지고 업무를 맡더라도 건물 보안부터 인적 보안, 자료 보안, 심지어 전산 보안까지, 결코 완벽하게 해낼 수 없는 엄청난 분량의 업무에 눌려 있을 수도 있다. 안전 업무를 맡기는 상사들조차, 안전 업무 담당이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고(알더라도 이런 실적도 안 보이는 업무를 왜 해야 하는 건지 모르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물론 나는 확신이 아니라 가능성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산악 시설 안전과 전산 보안을 담당했던 내 경험에 의하면---그 확률은 매우 높았고, 세월호 이후의 지금도 여전히 높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태에서, 단순한 구조 문제 제기는 결국 말단 실무 담당자에 대한 징계로 끝이 나기 일쑤다. 실무 담당자는 본인 스스로도 몰랐던 위험에 대해 책임자란 비난을 들으며 쓸쓸하게 구속된다. 자신이 교육 받지도 못한, 예전에 해본 적도 없는, 모두가 피하고 싶어하는 안전 업무 때문에. 정작 안전 업무가 아니라 다른 업무로 대부분의 시간을 뺏겼음에도 안전 사고가 일어나면 그제서야 '담당자'라는 이름으로 '네가 책임져'라는 소리를 듣는다.
진짜 구조적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그저 정부를 향해 손가락질 하는데 그친다면 그 구조에 의한 반복적 희생양은 결국 또 다른 약자를 지목하는데 불과할 것이고, 이 악순환의 고리는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난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말하고 싶다. 당신의 손과 눈과 입이 두루뭉술하게 어떤 건물을 지목하는 데에서 끝난다면, 그 책임은 결국 그 건물에서 가장 약자인 사람이 떠맡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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