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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기, 새로운 길을 가다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20. 11. 7.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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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청소를 좋아하여 거의 매일 청소를 하는 편이다. 빗자루를 쓰던 시절을 지나 진공청소기가 일상화된 이후로는 나 역시 진공청소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진공청소기는 확실히 편리하긴 했지만 불편한 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무거운 무게, 움직임을 방해하는 전선, 시간이 지나면 약해지는 흡입력. 무엇보다 다음의 두 가지가 큰 걸림돌이었다.

 

하나는 진공청소기가 흡입한 공기가 빠져나오는 바닥부 필터였다. 진공청소기의 역할은 바닥에 있는 이물질을 흡수하는 것인데, 공기가 빠져나가는 필터가 바닥 쪽에 있어서 아직 청소하지 않은 곳의 먼지를 공중으로 날려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공기 배출구가 아직 청소하지 않은 곳을 향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무선 청소기가 나오면서 사정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1세대라 부를 수 있는 초기 무선 청소기는 모터와 필터가 아래쪽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서 청소기를 조금 기울이면 양방향으로 빠져나가는 배출 공기가 청소하지 않은 바닥 쪽의 먼지를 일으키곤 했다. 난 어릴 때 천식과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심하게 고생했었기에 되도록 먼지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또 하부가 커서 좁은 곳을 청소하려면 별도의 부속품을 끼워 청소해야 했다. 그렇게 부속품을 이용해도 침대 밑처럼 좁고 넓은 구역을 청소하기는 쉽지 않았다.

 

1세대 무선 청소기의 주요 형태. 모터와 필터가 하부에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진공 청소기가 뿜어내는 공기에 상당량의 먼지가 섞여 나온다는 점이었다. 한번 빨아들인 먼지는 먼지통에 갇혀서 빠져나오지 않아야 하는데, 미세한 먼지들이 배출 필터를 그대로 빠져나왔다. 먼지통에 남는 건 머리카락, 빵 부스러기 같은 비교적 큰 이물질들이었다. 바닥의 먼지가 그대로 빠져나온다면 반쪽짜리 청소에 불과했다. 청소라기보다는 바닥에 가만히 가라앉아 있던 먼지를 일으켜 공중에 흩뿌리는 불쾌한 행위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이런 문제로 고심하던 차에 다이슨 무선 청소기가 등장했다. 그야말로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다이슨 무선 청소기는 모터와 배출 필터가 손잡이 부근에 달려서 바닥부에 있는 먼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또 헤파 필터를 부착하여 한번 먼지통으로 들어온 먼지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걸 최대한 차단하고 있었다. 흡입부가 작아서 침대 밑이나 소파 밑을 청소하기에도 편했다. 내가 고민하던 문제를 한번에 해결해 주는 놀라운 제품이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탐나는 기능을 탑재하고 있었지만 다른 청소기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가격 때문에 선뜻 손을 댈 수 없었다. 짧은 가동 시간과 값비싼 배터리 교체 비용도 걸림돌이었다.

 

고민 중이던 어느 날 해당 기기를 직접 볼 기회가 생겼다. 다이슨 무선 청소기가 작동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그런데 의아스러운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바로 청소기의 먼지를 쓰레기통에 비울 때였다. 청소기의 어떤 버튼을 누르자 먼지통 바닥이 딸깍 열렸고, 먼지는 그렇게 열린 바닥면을 지나 쓰레기통으로 쏟아져 내려갔다. 다이슨은 이를 두고 먼지통의 먼지를 쉽게 버릴 수 있다고 홍보하였는데, 내 눈엔 도저히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헤파 필터로 애써 모아 놓은 미세먼지들을 먼지통을 비우며 사방으로 퍼트리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그 점에선 다이슨이 다른 브랜드의 청소기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무선 청소기는 먼지통을 뚜껑이 닫힌 채로 분리할 수 있어서 먼지통만 들고 밖으로 나갈 수가 있었다. 

 

그걸 보면서 다이슨도 먼지 통제가 완벽한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이슨도 먼지통을 비울 때는 청소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렇게 밖에서 먼지통을 비우면 집안에 먼지가 날리는 걸 방지할 수 있지만 어쨌거나 먼지통을 비우는 과정에서 먼지를 뒤집어써야 했다. 무엇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먼지통을 집밖에서 비우기보다는 집안에서 바로 비우고 있었으니, 헤파 필터를 사용하는 다이슨 청소기의 장점은 희석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나만 했던 건 아닌가 보다. 삼성전자에서 청소기의 먼지통을 비워주는 '제트 청정스테이션'을 출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그리 귀담아듣지 않았다. 예전처럼 먼지통을 들고 밖에 한번 나갔다 오면 될 걸, 굳이 그런 기기를 사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그간 먼지통을 비우며 겪어야 했던 성가신 일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먼지통에 쌓여가는 먼지들도 눈에 들어왔다. 밖에 한번 나갔다 오면 된다지만 정작 그 한번이 귀찮아서 먼지통 비우기를 등한시하고 있었다.

 

먼지통의 먼지를 빨아들이고 있는 삼성 제트 청정스테이션. 2020.11. 3.

 

삼성 제트 청정스테이션을 몇 번 사용해 보니 분명 좋은 점이 있었다. 물론 가장 큰 장점을 먼지통 비우는 게 무척 편리하다는 것이다. 미룰 필요 없이 그때그때 원할 때마다 먼지통을 비울 수 있다. 머리카락 등이 필터에 붙어 안 떨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아직은 매번 깔끔하게 떨어져 나가고 있다.

 

그런데 청정스테이션이 '꼭' 있어야 하는 물건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있으면 편리하지만 없어도 그리 큰 상관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먼지통을 비우는 일은 설거지나 빨래처럼 잦은 일이 아니다. 사용 빈도가 떨어지면 '가성비'가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진다. 먼지통을 비우는 과정에서 조금의 먼지도 빠져나오지 않는 건 아니라서, 청정스테이션에서 먼지통을 분리하면 뚜껑이 열려 있는 먼지통에서 여분의 먼지가 날린다. 따라서 먼지통을 분리하자마자 먼지통 뚜껑을 재빨리 닫아야 한다. 또 청정스테이션 내부에서도 먼지가 올라온다. 그러니 먼지통을 분리하자마자 청정스테이션의 뚜껑을 재빨리 닫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적지 않은 양의 미세먼지가 방안에 퍼질 수 있다. 재빨리 닫는다고 해도 약간의 먼지가 퍼지는 건 감수해야 한다. 유지 비용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청정스테이션에는 먼지 봉투가 들어가는데, 먼지가 가득 차면 갈아주어야 한다. 청정스테이션 내부의 필터 역시 시간이 지나면 교체해 주어야 한다.

 

청정스테이션이 없다면 가끔 밖으로 나가서 먼지통을 비운 뒤 집으로 들어와 얼굴, 손 등을 씻으면 된다. 청정스테이션이 있다면 원할 때마다 아주 간편하게 먼지통을 비우고 때때로 먼지봉투와 필터를 갈아주어야 한다. 어떤 게 더 좋을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내가 청정스테이션에 높은 점수를 준다면, 그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물건을 상용화한 도전 정신 때문이다. 다이슨이 이룩했던 신화도 불편함에서 새로운 길을 찾던 그 정신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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