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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의 잔류 농약과 왁스의 세척, 그리고 유기농 감귤의 문제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20. 4. 21.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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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몬 껍질의 왁스를 제거하느라 고생했다는 한 주부의 사연을 읽게 되었다. 그 주부는 레몬 표면에 발려 있는 왁스를 없애고자 다음과 같은 여러 단계의 작업을 시차를 두고 이어나갔다고 한다. 

 

- 레몬 표면을 굵은 소금으로 닦는다. 

- 레몬을 베이킹소다 희석액에 담가 놓는다.

- 레몬을 식초 희석액에 담가 놓는다.

- 레몬을 끓는 물에 1분간 담가 놓은 뒤 식히고 물기를 닦는다.

 

그 주부는 레몬의 왁스를 제거하느라 매우 힘들었지만 결과물을 보고 나니 기쁘다는 글을 적어 놓았다. 그러나 다음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그런데 왁스가 다 제거된 게 맞는지 걱정스러워요."

 

그런 사연을 아내에게 전해주자 아내도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레몬을 씻는다고 베이킹소다로 헹구고 소금으로 문지르고 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레몬을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표면을 박박 씻어냈는데, 너무 세게 문질렀는지 레몬 표면에서 진물 같은 게 흘러나왔다고 한다. 아내는 그제야 레몬 씻기를 멈출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2.

수입산 과일의 표면에는 대체로 왁스가 발려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은 레몬뿐만 아니라 사과, 배, 오렌지, 아보카도, 피망, 멜론, 오이, 가지, 자몽, 라임, 멜론, 복숭아, 파인애플, 호박 등등의 과일 표면에도 왁스 처리를 한다. 우리는 이런 과일 중에서도 유독 레몬 세척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편인데, 레몬이 보통 수입산인 데다가 다른 과일과는 달리 껍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레몬청과 레몬 제스트가 대표적이다. 제빵 분야뿐만 아니라 레몬즙을 뿌리는 생선 요리에도 레몬 제스트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니 레몬 껍질을 특히 정성 들여 씻게 된다.

 

사과나 복숭아 또한 껍질째 먹는 경우가 있는데 레몬과 달리 세척에 과도한 공을 들이는 경우가 많지 않다. 사과와 복숭아는 국산인 경우가 많아 껍질에 왁스 처리를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러 사과의 왁스를 문제 삼는 경우도 있었으나 레몬에 비하면 정도가 덜한 편이었다.

 

일반적으로 레몬과 오렌지 같은 감귤류는 수입산뿐만 아니라 국내산에도 수확 이후에 여러 후처리를 한다. 껍질에 살균제를 뿌린 뒤 왁스 코팅을 하는 방식이다. 이 왁스는ㅡ정상적인 인증을 받은 제품이라면ㅡ식용이며 독성이 보고된 바가 없다. 따라서 식용 등급의 왁스 코팅보다는 살균제 같은 농약이 인체에 훨씬 더 해롭다. 그런데 과일에 공업용 왁스를 발랐다거나 감귤을 노랗게 칠했다는 식의 공포스러운 기사 때문인지, 혹은 왁스라는 이름에서 산업용 코팅제를 떠올리게 돼서인지, 아니면 검사 기관과 농업인을 향한 기본적인 불신 때문인지, 농약 못지않게 왁스의 유해성에도 주목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식용 등급의 왁스라 하더라도 과일에 인위적으로 칠을 한 이상 잘 씻어내서 나쁠 것은 없다. 과일 껍질의 잔류 농약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세척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일 세척으로 고생을 하는 주부의 사례를 보면 궁금한 점이 생긴다. 감귤과 레몬을 여러 단계에 걸쳐 오랫동안 세척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더 좋은 결과를 보상받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리 오래 세척하더라도 레몬의 농약 잔류물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농약 성분 중 일부가 과일 표면에 머무르지 않고 과일 내부로 침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과일 내부로 침투해버린 성분은 일반적인 세척 방법으로는 제거할 수 없다.

 

이마자릴(Imazalil)과 티아벤다졸(Thiabendazole)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감귤 후처리에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는 살충제*인데, 한 실험에 따르면 이마자릴과 티아벤다졸은 가정에서 쓸 수 있는 일반적인 세척 방법으로는 완전히 제거하는 게 불가능했다. 

 

해당 실험은 '차가운 물로 씻기', '뜨거운 물로 씻기', '비누로 씻기' '주방 세제로 씻기' '초음파 세척기에 넣기'라는 다섯 가지 방법으로 레몬을 세척했다. 이중 '뜨거운 물로 씻기'와 '주방 세제로 씻기'를 이용해 티아벤다졸을 완전히 없애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방법으로도 이마자릴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다. 이마자릴은 과일 표면에서 과일 펄프와 과육으로 퍼지는 성질이 있어서 일반적인 방식으론 씻어낼 수가 없었다.**

 

레몬 세척 방법에 따른 티아벤다졸과 이마자릴의 잔류량. 각주 두 번째(**) 논문 참조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검출된 양이 한계 허용치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티아벤다졸과 이마자릴의 최대 허용치는 1kg당 5mg이므로 0.00~0.92mg는 받아들일 만한 수치로 볼 수 있다.

 

 

3.

그럼 레몬을 어떻게 세척하는 게 좋을까? 일반적인 설명은 뜨거운 물로 씻어낸 뒤 키친타월로 잘 닦으라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가 그 정도만 해도 식용 왁스 및 농약 성분이 상당 부분 씻겨나간다고 설명한다. 위 실험에서도 그런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굵은 소금으로 문지르거나 베이킹소다에 씻거나 하는 작업을 더 해도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은 잔류물에 큰 차이가 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몇 단계에 걸쳐서 씻든, 레몬 표면만 계속 씻는다면 결과는 비슷할 것이다. 그래도 심적으로 위안이 된다면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왁스가 식용 등급이며 농약 잔류물이 허용치를 넘어서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계속 섭취하면 건강에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특히 레몬 껍질을 첨가한 음식을 자주 먹는 경우 그런 불안이 생길 수 있다. 아무리 허용치 이내라고 해도 많이 먹으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먼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허용치 이내의 화학 성분을 자주 섭취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건강 이상을 염려하고 있다면, 과자나 음료 등을 자주 섭취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건강 이상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레몬 껍질이나 펄프에 남아 있을 농약 잔류물의 과한 복용이 걱정된다면, 과자 등에 들어 있는 고농도의 설탕이 일으킬 수 있는 질병 또한 걱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즉, 음식에 있을 수 있는 화학 성분을 염려하기보다는 그런 음식의 잦은 섭취 자체를 줄이는 게 건강에 이로울 수 있다.

 

직업 특성이나 취향 등의 문제로 레몬 껍질을 이용한 음식을 자주 먹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혹은 어린아이의 음식에 이용할 생각이라면 후처리를 전혀 하지 않은 유기농 레몬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그 무엇보다 화학 성분이 걱정된다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4.

그런데 유기농 감귤을 선택하기 전에 과일에 왁싱 같은 후처리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왁스는 판매 과정에서 과일 표면의 살균제가 사라지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만약 레몬이나 감귤에 아무런 후처리를 하지 않는다면 껍질에 화학 물질 대신 박테리아가 번식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과일에 후처리를 한 뒤 PLS 같은 제도를 만들어 농약의 잔류허용기준을 정하고 검사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미생물과 벌이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니 정부의 제도와 방침을 너무 의심의 눈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유기농 식품이라고 해도 완벽할 수는 없다. 자신의 유기농 농장에서 보내주는 감귤은 씻을 필요도 없다고 홍보하는 곳이 있는데, 이는 녹색곰팡이(Penicillium digitatum) 같은 균류의 번식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문제가 있는 발상이다. 아무리 국내 유통이라고 하더라도 운송 중 감귤에 상처가 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순식간에 곰팡이가 번질 수 있다. 만일 비즈 왁스 같은 천연 왁스도 바르지 않은, 정말 아무런 후처리도 하지 않은 감귤이라면 피해는 더 심해질 수 있다.

 

 

5.

살균 작업 및 왁스 처리는 미생물 억제, 보습력 유지, 광택 유지, 보존 기간 연장 같은 긍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인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부정적인 면 또한 지니고 있다. 과일 표면의 식용 왁스와 농약은 물로 쉽게 씻어낼 수 있지만 껍질 내부로 침투한 것은 씻어낼 수 없다. 이처럼 과일의 잔류 농약을 완벽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잔류량은 허용 기준치보다 낮다. 그런데 이를 반복적으로 오랜 기간 섭취할 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이런 양면성은 유기농 과일에도 존재한다. 유기농은 살충제의 위협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후처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화학 물질의 위협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지만 위생 문제에서 또 다른 제약을 받게 된다. 갓 수확한 유기농 작물을 바로 구매하여 빠르게 소비하는 것이 좋을 테지만 항상 그런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한 가지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여러 관점에서 장단점을 두루 살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부에서 유럽처럼 소비자에게 과일의 왁스 코팅 여부와 사용한 왁스의 종류를 알리도록 제도를 정비한다면 소비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Milind Ladanyia "Citrus Fruit: Biology, Technology and Evaluation" (Academic Press 2008), p433 

**Anneli, K.; Andrea, L.; Jekaterina, K.; Koit, H. Pesticide residues in commercially available oranges and evaluation of potential washing methods. Proc. Est. Acad. Sci. Chem. 2007, 56, 134–141.

***Effects of citrus wax coating and brush type on imazalil residue loading, green mould control and fruit quality retention of sweet oranges NS Njombolwana, A Erasmus, JG Van Zyl, W du Plooy, PJR Cronje, ... Postharvest biology and technology 86, 362-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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