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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에 두 개의 수플레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20. 3. 1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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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플레는 본디 오븐에 넣어 구워내는 디저트이지만 근래엔ㅡ길거리 음식의 인기와 영향으로ㅡ팬으로 구워 만드는 수플레의 수요가 더 많은 듯하다. 팬으로 굽는 수플레는 팬 위를 뚜껑으로 덮어 오븐을 갈음하기에 수플레(soufflé, 부푼, 부풀린)라는 뜻과 달리 부풀어 오르는 현상이 그다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에 더 많은 양을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 아내가 생각하던 수플레도 라미킨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팬으로 구워 접시에 올린 수플레였다.

 

수플레는 18세기 초 프랑스에서 개발된 오래된 디저트라 다양한 변형이 있는데, 나는 보통 기본 반죽만으로 수플레를 만들고 설탕은 되도록 줄이고자 하는 편이다. 수플레는 단독으로 먹기보단 생크림 등을 올려서 함께 먹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그런 편이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설탕이 많이 들어가는 디저트라 집에서 먹을 때는 다른 당분을 추가하지 않으려고 한다. 크기 등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보통 수플레 1개에 약 20g의 설탕이 들어간다. 세계보건기구의 하루 섭취 권장량에 육박하는 양이다. 설탕을 줄이고자 하지만 그래도 향미를 위해 바닐라 익스트랙을 조금 넣는 편이고 때론 슈가 파우더를 살짝 뿌리기도 한다.

 

수플레는 잘 부푸는 게 중요하기에 라미킨에 담아 만들 경우 컵 안쪽에 버터를 바르는 과정이 꼭 들어간다. 그렇지 않으면 반죽이 그릇에 눌어붙어 부푸는 현상을 방해한다. 반듯하게 부풀어 오른 형태를 중시한다면 반죽을 틀에 넣은 뒤 표면을 고르게 성형하는 작업도 거쳐야 한다. 버터 코팅도 누락된 지점이 없는지 확인해 가며 좀 더 꼼꼼히 발라야 반듯한 형상을 낼 수 있다. 

 

 

2.

오늘은 라미킨 4개에 달걀 5개로 수플레를 만들었다. 아내가 수플레 2개를 앉은 자리에서 해치워서 내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아내는 아이가 많이 먹었다는 구실을 댔다. 그러면서 말한다. "인생 뭐 있어? 맛있는 거 먹고 기분 좋으면 그만이지."

 

'2개면 벌써 설탕이 몇 그램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때 난 소크라테스나 카토 같은 위인들이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것, 혹은 미각이 지성보다 앞서는 자를 크게 나무랐다는 고사를 얼른 생각해 내지 못했다. 원래 이렇게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변해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내는 자신이 변했다고 덧붙였다. 사실, 변한 거로 치면 내가 아내를 크게 앞선다. 한때 내 삶의 지침과도 같았던 고대인들의 말은 이제 수많은 참고 목록 중 하나가 되었다. 야식으로 따지면 입도 뻥긋 못할 처지다.

 

어쨌든 먹을 만하다는 이야기이니 만든 사람으로서 기분 좋은 일이다. 사실 1개로는 조금 부족하다. 요즘처럼 온종일 아이와 있어야 할 때는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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