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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아내와 금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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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경내를 구경하던 아내가 감탄사를 보인 곳은 국보인 대웅전도 아니고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담겨 있는 금강계단도 아니었다. 나보다 앞장서서 걷던 아내가 담장 한편에 서서 망연히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기에 따라 올라갔더니 그 너머로 어딘가 익숙한 구조물이 보였다. 


"아, 이게 금강계단이야?" 


난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물었다. 아내가 너무 태연한 태도로 바라보고 있어 그곳에서 그런 보물이 보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우린 바로 전에 아이와 함께 대웅전에 들어가 보았던 터였는데, 대웅전 안에는 불상 대신 가로로 기다란 유리창이 놓여 있었다. 난 대웅전 안에 들어오자 뜀박질 본능이 되살아난 아이에게 주의를 주면서 창문 너머에 있는 게 뭐냐고 아내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아내는 저 너머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담긴 금강계단이 있다고 했다.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들어오기 전에 안내판을 보았다고 한다. 창은 제법 컸지만 위치가 키보다 높아 금강계단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을 남긴 채 대웅전을 나와 안내판을 읽어 보니 금강계단을 개방하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이때 다시 찾아와야 하는가 했는데 우연히도 그렇게 금강계단을 보게 된 것이었다.


아내는 나와 달리 호들갑스러운 성격이 아니었고 그래서 금강계단을 보았음에도 감정을 안에 담았다. 사찰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섣불리 감정을 내보이는 건 예의가 아니니 주의를 기울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아내조차 '우와' 하는 감탄을 보일 수밖에 없는 곳이 있었다. 난 아내에게 뭣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하고 얼굴에 놀라운 표정을 띠운 채 대답했다.


"금목서야."


그때 난 은목서 앞에 서 있었다. "오, 은목서가 있네." 하고는 옆에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어디서 많이 본 나무 같다" 하고 있는데 아내가 이름표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란 것이다. 그제야 모든 것이 금목서로 보였다.


"이렇게 큰 금목서는 처음 봐."


수고가 4m 정도 되었으니 작은 나무는 아니었다. 하지만 통영 충렬사에 있는 금목서에 비하면 작은 나무였으니 다시 한번 아내와 함께 충렬사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당시 난 아내와 함께 통영 충렬사 주차장까지 들어갔으나 아내는 아이를 안은 채 다소 지쳐 있던 상태라 나 혼자 급하게 충렬사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다 그곳에서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금목서를 보게 되었으니 난 이 일을 금목서를 볼 때마다 자랑처럼 늘어놓는다.


통도사 여행의 마무리 장소는 주차장 앞에 있는 다정 카페였다. 일주문 앞에 있는 한송정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은 뒤 추위를 피해 들어간 카페였는데 개량 한복을 입고 있으신 직원분들이 친절하여 기억에 남았다. 물론 내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한 직원분은 서비스로 과자를 내주셨는데 아이의 입과 옷에 과자 가루가 묻자 따뜻한 물수건을 내와 아이의 입을 닦은 뒤 옷에 떨어진 가루까지 털어내 주셨다. 난 카페를 나설 때 아이에게 인사시키는 걸 잊지 않았다. 



속이 빈 나무둥치에 선 아내와 아이들. 양산 통도사, 2019.12.31.



아래 사진 중앙으로 구룡지 연못과 다리가 보인다. 통도사가 세워지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거대한 연못을 메우고 남은 것이다. 연못 위에 세운 사찰이라는 통도사 설화는 익산 미륵사지의 창건 설화를 떠올리게 한다.


구룡지 연못과 다리. 양산 통도사, 2019.12.31.


형태를 자연스럽게 살린 기둥이 눈길을 끌었던 스님들의 수행 공간. 양산 통도사, 2019.12.31.


"우와, 금목서야." 아주 건강하고 알찬 금목서였다. 양산 통도사, 2019.12.31.



양산 통도사는 황룡사 9층 목탑을 주도했던 신라시대의 고승 자장율사가 세웠는데, 이때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차 종자를 가져와 통도사 인근의 다소촌(茶所村)에 심어 차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차는 우려내는 물이 맛을 좌우하는데 통도사는 사찰 약수로 으뜸에 속하니 차를 음미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사찰 약수. 양산 통도사, 2019.12.31.


내 눈길을 끈 대웅전의 계단과 기단 장식. 양산 통도사, 2019.12.31.



대웅전 주련 중 하나. "원숭이가 팔을 이어 물 속의 달을 건지려 한다"는 뜻이다. 불심이 깊은 원숭이들이 부처님에게 공양하고자 연못의 달을 건지려 하였으나 손을 넣을 때마다 달이 사라져 버렸다. 달과 원숭이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문살의 형태도 예사롭지 않다. 


대웅전의 주련. 양산 통도사, 2019.12.31.



통도사 대웅전의 처마부. 서까래의 부연, 추녀, 사래, 그 아래쪽으로 공포와 익공이 보인다. 기와 위쪽으로 사찰의 주법당 지붕을 장식하는 데 쓰이는 백자 연봉이 보인다. 


통도사 대웅전의 처마부. 양산 통도사, 2019.12.31.


통도사 대웅전. 지붕 구조가 독특하다. 오른쪽 담장 너머에 금강계단이 있다. 양산 통도사, 2019.12.31.


아내가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문구. 이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양산 통도사, 2019.12.31.


통도사 금강계단. 사리탑의 석종 안에 사리가 담겨 있다. 양산 통도사, 2019.12.31.



아래에 보이는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에서 유리건판으로 촬영한 통도사 금강계단을 스캔한 것이다. 이끼 등이 끼어 지저분해 보인다. 지금과 형태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일제시대에 촬영한 통도사 금강계단. <월간 통도> 2020년 1월호 스캔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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