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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숱한 커피 매장과 카페를 방문해왔지만 맛의 관점에서 따로 추억할 만한 곳은 많지 않았다. 국내에선 제주도의 유동 커피를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서 많은 매장을 방문했음에도 따로 언급할 것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럼 타짜도르는 무엇이 다를까? 서울의 용산 아이파크몰에 매장을 연 타짜도르 카페를 부러 찾아간 건 맛에 대단한 기대를 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에스프레소의 세계로 이끌었던 로마 타짜도르의 추억을 다시금 새겨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로마의 타짜도르 카페를 방문하기 전만 해도 난 아내가 드롱기 에스프레소 머신의 바스켓을 바늘로 한 땀 한 땀 청소하는 모습을 다소 무심하게 바라보았었다. 나의 커피 세계는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타짜도르 카페 방문 전과 후로 나뉘어 있었다.
용산의 타짜도르 카페는 구획이 나누어져 있지 않은 오픈 형태의 매장이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건물 내 복도 바로 옆에 매대와 카운터, 테이블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매장 한쪽의 대형 스크린에선 로마에서 온 카페라는 걸 강조하려는 듯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문하기 전 진열 상품을 둘러보았다. 로마의 타짜도르 카페와 동일한 원두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로마에 비하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 책정되어 있었다. 250g에 18,000원으로, 로마 타짜도르 카페에서 판매 중인 원두보다 3배 정도 높은 가격이었다. 국내 로스터리 카페에서 판매하는 원두 가격을 감안하여 가격을 현지화한 듯했다. 물론 에스프레소의 가격 자체도 로마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커피 가격도 국내 시장에 맞춰 조정되어 있었다. 흥미롭게도 국내 카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고객용 콘센트는 제공을 하지 않고 있었다. 로마의 3대 커피숍이라는 명성과 브랜드와 원두만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일까? 에스프레소 가격만 5,000원이니 현지처럼 에스프레소를 한입에 털어 넣는 손님으로 붐비는 상황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도 타짜도르는 국내에 아직 그리 많지 않은 에스프레소 전문점이라 높은 점수를 줄 만했다. 국내 커피 전문점과 체인점은 고급화 전략으로 스페셜티 싱글 원두로 내린 드립 커피를 선택하고 있는 추세라, 나름의 특별한 블렌딩과 로스팅을 거친 에스프레소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치는 않다.
로마의 타짜도르에서 내가 주문한 첫 커피는 카푸치노였다. 그래서 용산 타짜도르에서도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점원은 커피 위에 시나몬을 뿌릴 것인지 물었다. 베트남 계피가 아닌 스리랑카의 시나몬인지 궁금했지만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로마의 카푸치노는 원형의 노란 띠가 그려진 도기 받침과 철제 손잡이가 달린 유리잔에 담겨 나왔었는데 용산의 카푸치노는 손잡이가 거꾸로 달린 타짜도르 특유의 도기 잔에 담겨 나왔다. 로마에선 시나몬도 뿌리지 않았었다. 롤 형태의 티라미수는 처음이라 그것도 함께 주문했다.
2.
적잖은 가격이었지만 아내에게도 로마의 추억을 돌려주기 위해ㅡ로마와 용산의 타짜도르 카페는 모두 아내가 소개해 준 것이다ㅡ타짜도르 원두와 라테 잔을 구매해 집으로 가져왔다. 마침 아이가 집에 있던 라테 잔을 모두 깨트린 바람에 라테 잔이 몇 개 필요하기도 했다. 게다가 타짜도르의 라테 잔은 제조국이 중국이 아니라 이탈리아였다.
타짜도르 매장에서 판매하는 라테 잔은 일반적인 라테 잔에 비하면 크기가 작은 편이었다. 그래서 평소 하던 대로 더블 바스켓에 원두를 담아 에스프레소를 내리면 우유와의 비율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포터필터의 바스켓을 더블에서 싱글로 바꿔야 했다. 싱글 바스켓은 더블에 비해 크기가 작아 원두가 소량만 들어가고 추출하는 에스프레소의 양도 더블에 비해 적다.
커피 애호가가 늘면서 이제 상당한 커피 매장에서 더블 바스켓에 원두를 담아 '투샷'으로 커피를 만든다. 몇 년 전엔 에스프레소 두 개 분량, 즉 투샷으로 커피를 주문하면 비용을 더 지불해야 했는데 지금은 투샷을 기본으로 하는 카페가 대다수가 되었다. 어느 순간 서서히 바뀌더니 이젠 싱글은 아예 주문 받지 않는 카페도 생겼다. 용산의 타짜도르 카페도 에스프레소 도피오가 기본 메뉴로 올라와 있었다.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면 주둥이가 두 개 달린 포터필터로 두 개의 잔에 나눠 커피를 내린 뒤 각각의 손님에게 한 잔씩 서비스하는 것이 기본인 이탈리아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어쩌면 한 잔으로 만드는 에스프레소 싱글 대신 투샷이 들어가는 에스프레소 더블을 에스프레소 기본으로 하여 가격을 인상시키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바리스타들이 에스프레소 추출 시 싱글 바스켓보다는 더블 바스켓 사용을 선호하는데, 싱글 바스켓보다 더블 바스켓이 에스프레소 추출에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더블 바스켓이 편해서 그간 그를 써왔지만 이참에 싱글로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싱글 바스켓에도 적응을 해야 해서 오랜만에 저울을 꺼냈다.
용산 타짜도르에서 구매한 라테 잔과 커피 원두. 홈카페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른바 울산의 타짜도르 카페다. 2019.10.27.
싱글 바스켓으로 내린 타짜도르 원두의 에스프레소. 2019.10.27.
에스프레소에 따뜻한 우유를 부어 만든 카페라테. 타짜도르의 라테 잔에 담았다. 201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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