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동 회화의 추상주의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9. 8. 16. 01:06

본문

"부인, 부인께선 잘못 아셨습니다. 이것은 여자가 아니라 그림입니다." ㅡ 앙리 마티스

 

 

미술은 무엇일까? 뛰어난 그림은 현실을 얼마나 잘 모사하였는가로 결정되고, 훌륭한 작품은 마치 수수께끼를 풀 듯 다양한 기호로 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것은 관람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교육 방침에 따라 소묘와 정물화로 회화를 시작했고 황금비율의 이론을 습득하였으며 그림 속 거울이나 깨진 도자기를 해석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인은 마티스에게 "이 여자는 팔이 너무 길어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 

 

현대미술이 조롱받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화가가 사람의 인체나 사물을 현실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묘사하면 "그 정도는 나도 그리겠다" 혹은 "그러고도 화가냐" 하는 식의 비난 섞인 글이 달리는 걸 볼 수 있다. 과거 낙천적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사람들이 가상 공간에서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기보다는 끼리끼리 뭉쳐 다른 의견을 배척할 거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화가들이 선호하는 양식을 따라 화파를 이루듯 자신이 선호하는 생각을 따라 인터넷에 그룹을 형성했다. 미술 양식이 어떻게 형성되어 변화해 나가는지를 두고 여러 미술사가와 비평가들이 토론을 벌여왔는데, 그 단서 중 하나를 사람들이 의견을 교류하는 방식 자체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만큼 행동하고, 아는 만큼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호하는 것을 중심으로 뭉치고, 어떤 혁신적인 인물이 나타나기 전까진 다른 사상을 배척한다. 배척하는 건ㅡ정치적 목적을 제외한다면ㅡ단순히 미워서가 아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을 미술사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우리가 고대 그리스의 아르카익 미술이나 우리 삼국시대의 미술에 감화되지 않는 건 그 그림과 조각이 우리 눈에 조야해 보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화가라 불리는 조토나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을 보더라도 우리는 감탄하는 대신 이것이 도대체 왜 명화로 불리고 있는지, 이 화가가 대체 왜 위대한 화가라 불리는지 고심하게 된다. 그건 우리가 우리 시대의 눈으로 그들의 미술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과학의 경우 이런 예시가 쉽게 다가온다. 우리가 찬탄해마지 않는 최첨단 스마트폰이라 하더라도 몇 세기 뒤의 사람들은 이 스마트폰의 불필요하게 거추장스러운 몸집과 손가락으로 일일이 눌러야 하는 극심한 불편함에 깜짝 놀라고 말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이 이 스마트폰에 열광한 이유를 금세 납득할 것이다. 과학은 진보를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상이 과학이 아니라 예술에 속한 미술이 되면 상황이 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 과거의 회화는 구도가 상투적이고 평면적이어서 뛰어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을 졸작이라고 부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 미술 역시 과학기술처럼 진보하며 시대를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도 우리는 과거의 예술을 가리켜 보잘 것 없다고 말하기를 꺼리게 된다.

 

몇 세기 전만 하더라도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눈으로 보고 물감으로 그려내거나 돌로 조각해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였다.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원근법과 단축법, 명암의 채색의 기법조차 과거엔 놀라운 수법이었다. 최초의 미술사가라 불릴 만큼 뛰어난 인물이었던 바사리가 조토를 추켜세웠던 건 조토가 현실을 모방해 내는 데 놀라운 진전을 이뤄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조토의 작품을 보면 현실과 닮아 있는 부분보다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부분을 훨씬 많이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조토가 훌륭한 화가라는 이야기를 얼핏 듣고 기대에 들떠 있던 관람자는 당황하게 된다.

 

18세기의 전통주의적 교사인 제임스 배리는 두치오의 <마돈나 루첼라이>라는ㅡ오늘날의 눈으로 보면ㅡ졸작을 바사리가 추켜세웠던 이유를 "초창기 미술에서의 모방은 어린이들의 모방과 똑같아서,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이라도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있거나 탐구심이 있기 전에는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각주:1]기 때문이라고 썼다. 아는 것에 차이가 있으면 똑같은 사물을 보고 있더라도 볼 수 있는 것에 차이가 생기게 된다. 해부학을 배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보는 인체의 모습엔 확연한 차이가 나타난다. 식물을 자세히 관찰한 적이 있는 화가는 식물을 재현할 때 잎의 결각에 유의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런 정보가 없는 화가는 결각의 차이를 무시할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이유로, 결각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한 화가를 본 어느 관람객은 그 화가가 실력이 부족하다고 비난할 가능성이 있다.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를 가리켜 인체를 비현실적으로 그린 졸작이라 비판했던 당시의 비평가들의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19세기의 풍경화가인 컨스터블은 대중에게 그림과 조각을 감상할 능력이 없음을 넌지시 표명했다. 그가 보기에 미술의 감상이란 후천적 교육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고 대중은 그런 교육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미술 교육을 받은 비평가나 수준 높은 관람객이라 해도 열린 눈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컨스터블 또한 그 점에선 마찬가지였다. 보는 것과 아는 것에 어떤 차이를 두던지, 양자를 어떻게 구별하던지, 결국 이들은 하나의 양식과 하나의 관점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들의 주장대로 정말 '눈에 보인 것을 그대로 그린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다른 화파의 관점에선 옳지 않았으며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지각심리학의 성과는 회화의 진보는 과학과 다르다는 점을 밝혀 낸 데에 있다. 이는 우리가 아프리카 토기나 투박한 데다가 윗면 한쪽이 눌리기까지 한 비대칭의 작은 백자 그릇에서 예술성을 발견하는 근거를 제시해 준다. 또 묘사 기술이 떨어지는 르네상스 회화를 졸작이라 비난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미약하게나마 답을 해준다. 오랫동안 우리는 아는 만큼 볼 수 있다고 믿었고, 아카데미의 전통을 따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그려야 한다고 믿기도 했으며, 인상파의 주장에 따라 아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어떤 현인들은 아는 것과 보는 것의 구별이 진정 가능한지를 묻는다. 그들은 우리가 안다는 생각에 빠져 눈앞에 있는 것을 제대로 감각하지 못할 때가 있음을 환기시킨다.

 

그러니 아이가 어떤 의도로, 어떤 감정으로 휘저은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그림을 보며 로스코나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가 나타났다고 말한 것은 내 딸아이가 하는 모든 것이 천재적으로 보인다거나 무조건 추켜세워 자신감을 키워주고 싶었기 때문은ㅡ물론 그런 감정이 조금도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ㅡ아니었다. 예술 비평가이자 그 자신이 화가였던 러스킨이 조언한 바처럼 아이가 온갖 욕구를 참아가며 정성을 다해 드로잉에 집중했을 때에야 비로소 칭찬을 해줄 만큼 엄한 아버지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칭찬을 하고 보는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난 모방은 커녕 사과를 보고 동그라미조차 그려내지 못하는 만 두 살의 소녀에게 '붓'으로 무언가를 그려낸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를 생각해 보았다. 아는 것이 없어 모든 것이 감각대로 인지될 지금 이 순간, 러스킨이 말한 '순진무구한 눈' 그 자체에 놓여 있는 아이에겐 사과를 동그랗게 그린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지 않을 게 분명했다. 곰브리치는 러스킨을 비판하며 순진무구한 눈이라는 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그 대상이 만 두 살의 아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의 눈엔 사과가 조금도 동그랗지 않은 것이다. 사과가 동그랗다는 것은 그렇게 교육을 받은, 이미지를 기호로 추상화해 내는 법을 배운 내가 볼 때나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사과를 가리키며 추상적인 원 하나를 그렸을 때 아이는 내 말에 조금도 관심을 기울일 수가 없었다. 

 

그러니 한 가지 색밖에 사용하지 못하던 아이가 여러 가지 색을 골라 선을 그려냈을 때, 네모난 박스 하나를 하나의 색채로 통일해 냈을 때 나는 아카데미 회화에 기반한, 이 시대의 표준화된 눈으로 내려다보는 내 관점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는 아는 게 없기 때문에 사과를 순전한 원으로 그리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ㅡ어쩌면ㅡ아이는 아는 게 없기 때문에 순전히 다양한 선의 색채에, 네모난 빨강 바탕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그 행위가 순진무구한 눈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면, 아이의 행위는 추상표현주의라 부를 수 있는 화풍과 어느 한 극단에서 마주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그 그림을 낙서에 불과하다고, 아이를 향해 그림을 제대로 그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만일 내가 그림을 제대로 그리라고 말했다면, 그리고 만일 아이가 순진무구한 눈을 가진 채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분명 내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빠! 뭔가 잘못 아시는 거 같은데요, 내가 그린 건 현실의 어떤 것이 아니에요. 이건 그냥 그림이에요!"

 

작품명 <넘버1>, 2019. 8.14.

 

작품명 <넘버1 위의 빨강>, 2019. 8.14.

 

  1. E. H. 곰브리치 지음, 차미례 옮김 <예술과 환영> (열화당 2008), 37쪽, 재인용 [본문으로]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