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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와 종교, 구분 짓기의 종말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9. 7. 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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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전 '마녀 배달부 키키'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알게 되었다. 내용이 꽤 충격적이었다. 어린 여자 아이가 주인공이었는데 그 아이는 마녀였다. 당시 내가 생각했던 마녀의 이미지와 귀엽게 생긴 '키키'라는 이름의 어린 여자 아이는 맞아떨어지는 데가 없었다. 게다가 키키는 빗자루까지 타고 다녔다.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여자, 그것은 전형적인 마녀의 이미지였다. 당시 내게 마녀는 악마의 또 다른 이름이자 하수인이었다. 백설공주에게 독이 든 사과를 먹이거나 스머프를 잡아 죽을 끓일 생각을 하는 것, 그런 것이 마녀의 행위였다. 그런데 '키키'라는 이름의 마녀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였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귀신, 악마, 마녀는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는 고대의 어느 때ㅡ히브리 성경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사탄, 바알세불, 벨리알 같은 존재가 성경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시기ㅡ에 어둠의 이미지와 결부되기 시작했고 훗날 사탄과 계약을 맺은 자가 되었다. 특히 기독교 사상이 악마와 깊은 연관이 있는데 초기 기독교는 악마를 그리스도와 대립을 이루는 존재로 부각시키곤 했다. 그런 인식은 카타리파 같은 이단과 종교재판, 성전, 르네상스 전후의 많은 가톨릭 회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 세계에서 마녀라 지칭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사악한 마술을 행하는 마녀'의 이미지가 초기 기독교 시대에 강화되었다는 것은 오늘날의 일반적인 견해다. 묵시문학이 유행했던 시기에 선과 악, 영혼과 육체, 거룩한 일과 속된 일 등을 대립시키는 이원론적 일신론은 마녀의 탄생에 일조했다. 현대 기독교는 교인들에게 퍼져 있는 이원론적 인식을 없애려 애쓰고 있지만 사탄에게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의 재림이라는 사상을 선과 악의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게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대립 이미지는 좋은 것을 강조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나머지 반을 사악한 것으로 규정해버리는 부정적인 측면 또한 일으킨다. 이원론적 믿음은 좋은 것 아니면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준다. 나쁜 것은 물리쳐야 하는 것ㅡ그런 심리 속에 비관용이 싹트기 시작한다. 게다가 '거룩함'보다는 '인간의 죄'에 무게추가 옮겨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온갖 종교 탄압에 이어 세일럼의 마녀재판과 같은 희대의 사건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반성이 뒤따랐다. 이원론적 잣대를 버려야 한다는 기독교 내부의 목소리가 나왔고 오늘날의 포스트모던 사회는 반성을 넘어 이미지의 전도까지 받아들이게 되었다.

 

'마녀 배달부 키키'라는 놀라운 애니메이션은 다양성이 용인되는 사회였기에 가능했다. 만일 초기 기독교의 이원론적이자 묵시록적 세계관이 강하게 지배하는 사회였다면, 처벌을 강조하는 독단적이며 비관용적인 경직된 사회였다면, 어린 동양인 여자 아이를 마녀로 묘사한 일단의 작가들은 집단 린치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 학창 시절 <실낙원>, <천로역정> 같은 기독교 문학에 심취했던 내가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며 받았던 충격은 그때까지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었던 '구분 짓기'의 종말과 함께ㅡ반항심을 동반한ㅡ새로운 구분 짓기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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