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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정신분석, 한계와 의의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9. 12. 2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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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은 의식과 정신의 동일성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ㅡ 지그문트 프로이트

 

 

가끔 몇 가지 이유로 내가 요리하는 장면을 녹화해서 편집하곤 한다. 그렇게 편집된 영상을 보다가 미처 생각지 못한 특별한 장면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프로이트가 '실수 행위'라고 정의 내린 바 있는 행동이었다. 그때 난 요리 재료 중 하나인 월계수 잎을 집어 들고는 "월계수 잎"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했으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상 편집을 위해 동영상을 돌려보다가 그 장면에서 놀랄 수밖에 없었으니, 난 월계수 잎을 집어 들고는 "올리브 잎"이라 말하고 있었다. 아마 당시 누군가가 나를 보고 '방금 월계수 잎을 보고 올리브 잎이라고 말했다'라고 했어도 난 믿지 못했을 것이다. 난 분명 머릿속으로 월계수 잎을 생각하고 있었고, 내 의식과 언어가 다른 모습을 띨 수 있다고 믿을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영상이 내 실수와 착각을 확인 시켜 주었다. 

 

프로이트는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에서 이러한 실수 행위에 대해 정의하고 이를 무의식과 연계지어 설명한 적이 있다. 그가 말한 '실수 행위'에는 잘못 읽기, 잘못 듣기, 망각 같은 것이 있다. 인쇄물을 읽을 때 쓰인 것과는 다르게 읽으며 일어나는 '잘못 읽기', 기능적인 장애가 없음에도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을 잘못 듣는 '잘못 듣기', 그와 더불어 생각한 것과 다른 것을 말하는 '잘못 말하기'가 내게 드러난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그간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그저 사소하게 여기던 이러한 실수 행위들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작용되는 어떤 경향"*이 내재하여 있음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제 내게 내재하는 어떤 무의식의 산물을 발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째서 난 머릿속으로는 월계수를 생각했으면서도 입으로는 올리브라 말한 것일까? 단순히 주의력이 부족했거나 피로해서 그런 실수를 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를 하찮게 생각하지 않도록 해보자. 이미 프로이트는 '정신 분석은 가정주부가 잃어버린 열쇠나 연사의 말실수 같은 하찮은 문제를 다룬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으며 그에 대해 항변했다. 정신분석의 관점에 따르면 어쩌면 난 심리적으로 억압된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마트에 갈 때마다 밀봉된 연녹색의 올리브 열매에 눈을 빼앗겼으면서도 재료를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구매를 망설였던 게 억압으로 작용했다가 무의식 중에 튀어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프로이트의 주장에 관심을 기울인 건 내 행위에 무의식이 담겨 있으며 그 무의식적 행위가 억압의 결과라고 믿기기 때문이 아니다. 프로이트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우연이란 없다"**고 주장했고 분명 그럴듯해 보이는 면이 있다. 분명 난 말실수를 할 당시 올리브를 생각하고 있었다. 즉 내가 잘못 언급한 '올리브 잎'이라는 단어는 갑작스레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월계수를 말하고자 했을 당시에 올리브 또한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추론을 그 정도 선에서 멈추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앞서 언급했듯이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올리브 열매의 구매를 고민했으면서도 몇 가지 걱정 때문에 구매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월계수 잎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올리브를 떠올렸으며, 그래서 월계수 잎을 보면서도 올리브 잎이라고 말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억압 심리가 무의식 중에 표출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프로이트가 주장하고자 하는 정신분석 이론의 한 틀이다. 

 

이런 추론은 맞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것이다. 정신분석에서 모든 이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객관적 증거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프로이트의 새로운 시도는 기념비적이었고 영웅적인 면모마저 있었다. 정신분석적 접근법은 환자의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도 있었다. 그럼에도 문제는 그것이다. 프로이트는 '정상적인 상태' 사람들이 흔히 벌이곤 하는 '실수 행위'가 그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밝혀냈지만 그것을 무의식과 억압으로 확장하는 일은 개연성에 문제를 일으켰다. 내가 올리브를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실수로 올리브를 말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내 무의식에 올리브에 관한 억압 심리가 작용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는 물론 근거도 다르다.

 

분명 자신도 모르게 억압되어 있던 어떤 심리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환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상당하다. 사람들은 타인의 무의식적인 행동을 과도하게 해석하여 스스로 고통받았고 또 그런 해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해 왔다. 단순한 실수가 의도로, 우연한 표정이 내면의 무의식적 표현으로 변질하였다. 이 차이를 어떻게 구분해 낼 수 있을 것인가? 프로이트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상대방의 반박을 재반박하는 데 저서의 상당량을 할애하였다. 그의 의견을 거칠게나마 다음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학문이란 엄정하게 입증된 명제들로만 구성되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오류이며 또 그렇게 요구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이 문장은 현대 과학이 지닌 한계를 명징하게 지적하는 동시에 프로이트 자신은 그 한계 내에서 과학적 노력을 다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바로 그런 한계 때문에 평범한 일상적 관계에 그의 분석을 적용하면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예로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한 약속을 내가 잊어버렸을 때, 아내는 애초에 내가 그와의 약속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잊어버린 것이라 가정할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 그걸 잊어버릴 수 있지. 정신분석에 따르면 실은 그는 무관심했던 거야!" 그 약속은 여행이 될 수도 있고 기념일이 될 수도 있으며 아이들의 학예 발표회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약속을 잊어버린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추론은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공통 심리이기도 하고 정신분석적 방법에 따라 내릴 수 있는 견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실은 가려져 있다. 그런 견해에는 그저 타당성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때로 그런 해석이 '일반적으로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의 그런 의견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렵다. <안나 카레니나>를 비롯한 무수한 비극적 인물들의 불행한 결말은 대개 타인을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그 판단이 틀리지 않는다고 여기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는 삶의 무수한 균열을 발견한다. 우리는 아내나 남편의 실수에서 우연에 기인한 결과물이 아니라 마음이 멀어졌다는 증거와 암시를 발견한다. 어쩌면 그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명하지는 않다.

 

속담 같은 것에서 정신분석과 비슷한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을 보자. 그 속담이 앞으로 우리가 하려는 어떤 일에 맞게 적용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알 수 없다. 그 속담과 다르게 '다 같이 했더니 오히려 의견만 무성하고 진척이 없더라' 하는 식의 결론이 날 수 있다. 이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속담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여럿이 해서 어떤 일이 빠르게 해결되었다고 '여겨질' 경우, 우리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역시 조상님이 남긴 말씀엔 틀린 데가 없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석에서 누군가 약속을 잊어버린 일로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무관심'을 추론하는 과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이런 부류의 분석은 '일의 결과를 다 보고 난 뒤에 때려 맞추는 것에 불과하다'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따라서 만일 누군가가 저지른 어떤 실수나 무의식적인 행위에 그 자신도 모르게 억압된 의도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할 때, 즉 당장 판별이 불가능하여 아직 명확한 증거가 없을 당시에, 만일 실수의 원인을 찾는 행위나 과정이 우리에게 불쾌한 감정을 유발한다면, 평범한 우리는 그 무의식에서 심리학적 의미를 찾고자 애쓰지 않는 것이 좋아 보인다. 비록 정신분석적 방법을 이용하여 내린 어떤 판단에 충분한 정당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진실은 유보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런 판단은 자신의 내면을 허락 없이 파헤치는 행위여서 불쾌하게 느껴지고 만다(우리 대부분은 자신을 정신분석의 대상이 되는 환자로 간주하지 않고, 상대방을 임상심리학에 권위가 있는 심리학자나 의사로 간주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할 때 필요한 건 타인에 대한 일방적인 추론이 아니라 그저 질문이다. 프로이트도 바로 그 질문을 강조했다.

 

"해답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모두 어떤 개입이 필요합니다. 말한 사람에게 왜 그가 그렇게 잘못 말하게 되었는지, 잘못한 그것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 줄 수 있는지 등을 물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그것을 해명해 주려고도 하지 않고 잘못을 그냥 지나쳐 갈 것입니다. 질문을 받은 그는 자기에게 맨 처음 떠오르는 생각을 가지고 설명을 해줄 것입니다. 자, 이제 이러한 작은 개입과 그 성공을 보십시오. 그것은 이미 정신분석입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는 과학적으로 논증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프로이트를 <시크릿(the secret)>이나 <긍정의 힘> 같은 대중심리학을 이용한 작가들과 같은 선상에 놓는다면 매우 불공평한 처사일 것이다. 그는 과학의 힘을 빌리기 위해 노력했고 이론의 한계와 예상되는 반박을 서술하였다. 그 스스로 자신의 이론이 완벽하다고 주장하기보다는 먼 미래로 가는 하나의 발판이 되길 바랐다. 나에게 프로이트의 업적은 해석의 정확성이 아니라ㅡ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노력과 더불어ㅡ새로운 관점에 있었다. 환자를 상대할 때 질문을 하고 그저 들으라는 것. 그의 그런 주문은 타인에 대한 섣부른 판단과 비방을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된 오늘날의 세계에서 더욱더 의미심장하다. 바로 그것이 그의 정신분석이 많은 비판에도 아직까지 살아남아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강의> 임홍빈 홍혜경 옮김 (열린책들 2018), 100쪽
** 지그문트 프로이트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 이한우 옮김 (열린책들 2003), 358쪽 
***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강의> 임홍빈 홍혜경 옮김 (열린책들 2018), 67쪽 
**** 같은 책, 6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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