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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나, 피에르 리비에르> (1), 광인과 정상인을 구분하는 권력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9. 8. 1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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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세기 프랑스 한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21세의 청년 피에르 리비에르가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 그리고 남동생을 살해한 뒤 도망쳤다가 한 달여 후에 붙잡힌 사건이었다. 그는 감옥에서 여러모로 놀라운 수기 한 권을 남겼고 그 수기는 곧 논란의 중심에 섰다.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 미셸 푸코를 포함한 몇몇 연구자들은 당시에 큰 이목을 끌었던 이 살인사건에 주목했다. 피에르 리비에르, 이 살인자는 사형 혹은 종신형을 피할 수 없었는데, 만일 그가 정상인이라면 사형을, 미친 자여서 비정상인이라면 종신형에 처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재판의 향방은 그가 정상인인지 그렇지 않으면 광인인지를 두고 논박되었다. 

 

검사 측은 "피고의 수기를 통해 피고가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었으며 특정한 광기나 살인 편집증이 없었다는 점"(257쪽)을 들어 사형을 주장했다. 변호 측은 그 반대였다. 그는 잔인무도한 살인자일 뿐인가, 아니면 정신이상 탓에 친족살인을 하게 된 불행한 인간인가? 그의 사형은 사회의 이익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본보기인가 아니면 의혹을 무시한 터무니없이 과한 형벌인가?

 

공판 당시 의사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세 명의 의사는 리비에르가 범행을 저지를 당시 정상이 아니었다고 판단했으나 다른 세 명의 의사는 "피에르 리비에르의 행실이 이상했고 판단이 실종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리비에르가 자기 행동의 도덕성을 충분히 평가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책임을 면할 수 없다"(266쪽)고 주장했다.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피에르 리비에르에게 유죄를 평결하였으나 여섯 명의 배심원은 정상참작을 받아들인다는 의견도 냈다. 

 

결과적으로 피에르 리비에르는 몇 달만에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정상인이었으나 일시적인 흥분을 이기지 못해 끔찍한 삼중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몇몇 정신의학자들의 청원에 힘입어 종신형으로 감형을 받을 수 있었다. 오늘날 이 사건에, 피에르 리비에르가 남긴 하나의 수기에 연구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광인이었나? 그가 남긴 수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연구자들은 피에르 리비에르가 남긴 수기와 당시의 모든 수사 및 재판 기록을 책에 옮겨놓은 뒤 이를 독자가 직접 읽어본 후 판단해 보라고 권한다.

 

 

2.

연구자들은 단순히 피에르 리비에르가 정상이었나 아니었나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피에르 리비에르를 두고 오갔던 지식인들의 논쟁에 관심을 두었다. 정상인지 아닌지 의견이 분분했던 한 인간이 정상으로 판정되어 생을 박탈당할 뻔했다가 정신의학자들의 도움으로 종신형으로 감형받게 되었으나 그러부터 몇 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어 결과적으로 네 명의 목숨을 앗아가게 된 이 일련의 사건에서 어떤 현상을 읽어내고자 한다.

 

한 연구자는 이 사건에서 당시 막 출발하기 시작했던 정신의학이 권력화되는 과정을 발견한다. 정신의학자들은 재판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정신의학의의 판단과 청원으로 한 사람의 생사가 뒤바뀔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정상인에서 광인으로. 이제 정신의학의의 판단은 한 인간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 지을 수 있는, 일반인은 감히 논박하기 어려운 일종의 권력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엔 문제가 있다. 정신의학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올바른 이성과 광기의 정신이 한 인간에게 동시에 내재할 수 있는가? 뛰어난 기억력과 침착한 태도, 놀라운 추리능력은 그가 완전히 이성적 인간이라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뛰어난 추리 능력이 망상과 이어지고 있다면 이를 두고 이성적이라 보아야 하는가, 광인의 증상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미셸 푸코가 보기에 정신의학은 여전히 이런 문제에 명확히 답할 수 없다. 오늘날 정신의학은 인간 정신의 문제를 19세기를 지배했던 편집증에 정신분열적 착란이라는 경계가 불확실한 이론을 더해 풀어내고 있으며 그를 토대로 돌이킬 수 없는 선고의 배후에 서고자 했다. 그러나 아직도 "편집증은 경계선만을 소묘했을 뿐"(502쪽)이다. 미셸 푸코는 19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그 살인사건이 현대에 다시 벌어지더라도 오늘날의 범죄학자, 정신의학자들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그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바라본 피에르 리비에르의 사건에서 그 점을 다시 확인한다. 미셸 푸코가 한 세기 반 전에 일어난 이 사건에 관한 책을 출간했을 때 정신의학자들은 무미건조한 담론조차 늘어놓지 못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침묵하고 말았다. (...) 오늘날 정신의들은 19세기 정신의들이 봉착했던 당혹감에 다시 직면하였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531쪽)

 

이처럼 정신의학은 어떤 정신 상태를 광기나 이성 그 어느 쪽으로도 분류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그 누군가를 정상 혹은 비정상으로 구분하고 있다. 19세기엔 이들에 대한 믿음이 상당하여 사법 권력에 개입하여 한 인간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 있는 권리와 한 인간을 붙잡아 정신병원에 감금할 수 있는 권리까지 획득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반성도 있었지만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과거엔 정신이상의 축에도 끼지 못했던 증상들이 오늘날 정신장애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교육자들을 CCTV로 관찰하면 태반에게 정신감정을 의뢰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부모, 조부모 세대는 과거 자신들의 교육 방침이 '아동학대'였다는 판결을 받아들이며 중얼거려야 했다. '뭐,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정말 누가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곳에는 이분법적 구분과 정신의학의 도움으로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게 된 진영의 힐난이 있다. 

 

푸코는 모리스 블랑쇼나 롤랑 바르트 같은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저서인 <광기의 역사>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최근까지도 <광기의 역사>를 페스트처럼 경계하며 읽어야 한다고 가르쳤다는 대학교수들의 말을 전했다. 그들은 철학자가 의학의 일에 관여하여 "정신병을 단순히 문화적 현상으로 환원하였다"(519쪽)며 마땅치 않게 여겼다. 그런데 이 시대에 퍼지고 있는 현상을 보면 푸코의 문제제기를 가볍게 생각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어떤 공포가 사회를 휩쓸고 있다. 조금만 실수해도 법률적 처벌과 도덕적 힐난을 받게 된다는 두려움이다. 그 공포는 서로를 멀리하고, 방어 차원에서 서로를 더욱더 비난하게끔 한다. 평범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정신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하면서도, 실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정신병은 가지고 있다는 말로 정신이상의 평범성을 강조한다. 그 혼돈 속에서 우리는 정신의학에게, 그리고 또 우리 자신에게 정상이라 불릴 수 있는 인간의 정의와 그걸 판단내릴 수 있는 권력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또 누가 소유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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