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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달의 이면>, 이상화된 일본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9. 8. 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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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비스트로스는 이 글에서 일본 문화의 독특함을 여러 차례 언급한다. 사실 일본은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의 나라, 심지어 가까이에 위치한 한국이나 중국과도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인다. 중국을 적극적으로 따랐던 조선과는 달리, 조선은 물론 중국과의 교류에도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던 일본 막부는 섬이라는 고립된 지형에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문화와 정치 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서양인들에게 일본 예술의 특이성은 "그 깔끔함, 우아함, 소박함, 엄격함"(112~113쪽)에 있었다. 꼭 서양인이 아니더라도, 때론 동양인들도 일본 문화에서 그들만의 특수성을 읽어낸다. 음식에서, 판화에서, 다기에서 그런 것을 발견한다. 일본을 구분 짓는 이런 특성은 꽤 알려진 편이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분 혹은 어떤 형식의 수용과 거부 같은 의도적 행위가 아닌 무심함에서 오는 태도. 레비스트로스는 이를 프랑스어로 '엥시테'라고 부를 만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개념적 정의가 불가능한, '그냥 그러니까 그런 것'"(116쪽)이라는 뜻이다. 이 또한 일본의 선불교와 연결 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런 특수성을 일본의 모든 것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근대 일본 회화도 화려함을 추구한바 있으며[각주:1] 뛰어난 장식성과 기교를 선보인 신사도 있다.[각주:2] 일본 사찰의 높다란 탑에서 '라쿠'로 정형화된 도기 예술의 소박함이나 불완전성보다는 중국풍의 과장이나 위세를 읽어내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사례에 주목하고자 했다. 동양권 국가와의 관계에서 유사성을 찾기보다는 차이점을 발견하고자 노력했고, 반대로 유럽권 국가와의 관계에선 차이점보다는 유사성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는 동양은 동양끼리 비슷하고 서양은 서양끼리 비슷하다는 상투적 인식을 깨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어쩌면 레비스트로스가 일본을 너무 좋게만 해석하려 한다는 의혹이 생길 수도 있겠다. 일본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그럴 소지가 더 크다. 그런데 그런 의혹은 일본 내부에서도 나타났다. 이 책에서 일본에 비판적 의식을 드러낸 이는 프랑스인 레비스트로스가 아니라 일본인 가와다 준조였다. 레비스트로스와 막역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달의 이면>의 서문을 쓰기도 한 가와도 준조는 레비스트로스가 일본에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다는 말을 남겼다. <달의 이면>에 수록된 레비스트로스와의 대담에서 가와다 준조는 일본어의 '하이'[はい]가 군사도시였던 사쓰마의 지방어라면서 "1945년 이전 일본의 극우적 군국주의를 잘 알고 있는 우리 세대로서는, '하이'라는 말은 최고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상기"(170~171쪽)시킨다고 했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는 프랑스어 "'위[oui]'가 일종의 수동적 동의라면, '하이'는 대화 상대자를 향한 도약"(170쪽)처럼 느껴진다는 찬사를 내보였다. 일본은 독특하다는 레비스트로스의 평을 두고 '전형적인 (해석) 방식'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 것도 가와다 준조였다.

 

레비스트로스가 일본에 내보이는 열의와 인정을 굳이 정치적으로 해석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는 순수히 학자로서, 문화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서 애정이 어린 눈길을 담아 일본을 바라보았다. 그는 비슷한 시선을ㅡ어려서부터 일본의 우키요에를 수집할 만큼 마음과 생각이 일본에 가 있었던 그였기에 아무래도 일본 문화에 더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겠지만ㅡ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어느 국가에라도 보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일본 무사 정권기 혼란을, 동북아를 상대로 했던 일방적인 침략 전쟁을, 석기시대 유물 조작이라는 일본 고고학계의 어두운 면을 지적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할 필요는 없다. 국가든 인물이든 예술이든, 그것이 지닌 흑백을 하나의 저서에서 모두 평등하게 기술하기는 불가능하다. 그가 스스로 인정했듯 그가 일본을 이해하는 방식은 '외부적 타자로서'이고, 관찰자는 "이미 한 문화의 구성원인 이상,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17쪽)으며 "따라서 그 문화를 통해 어떤 다른 문화를 평가한다는 것은 애당초 객관성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는 것"(같은 쪽)이라는 걸 독자 역시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2.

레비스트로스는 일본을 잘 모른다며 겸손하게 운을 뗐지만 그 깊이가 일반인이 쉽게 논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달의 이면>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조몬 시대 같은 일반 역사뿐만 아니라 가쓰시카 호쿠사이 같은 우키요에 작가, <겐지 이야기>, <헤이케 이야기> 같은 헤이안 및 막부 시대의 일본 문학, 거기에 일본의 전통 음악 체계까지[각주:3] 언급하고 있다. 분라쿠와 가부키의 극본도 직접 읽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비록 번역서일지라도[각주:4] 그 열정엔 가히 놀라운 데가 있다. 그는 일본 회화가 프랑스에 끼친 영향을 언급하며 "일본 판화의 영향이 모네, 피사로, 시슬레에게 가기보다는 앵그르[각주:5]의 귀환을 촉발했어야"(70쪽) 한다고 썼는데 이런 언급에서 그가 가진 지식의 폭이ㅡ비록 그의 조국인 프랑스 화가에 관한 언급이기는 하나ㅡ결코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는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 이유로 그곳에서 일하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를 들었다. 그는 다른 경제학자들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ㅡ그를 콕 집어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ㅡ같은 사회학자, 인문학자를 더 존경한다고 고백했다. 나도 그 마음을 이해한다. 어떤 이들은 프랑스 지성사에서 루소 이후 가장 박식한 사람으로 레비스트로스를 뽑았다. 일본의 국보급 화가인 오가타 고린이나 센가이 기본, 하이쿠의 대가인 마츠오 바쇼는 워낙 유명하니 그렇다 할 수 있지만, 센자이 기본이 속해 있던 린자이 학파와 그 학파의 특성, '공안'이라는 체계에 대한 설명은 그가 프랑스 지성사에서 손꼽히는 이유를 알게끔 해준다. 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는 수학만으로는 경제를 예측할 수도, 위기에서 구할 수 없다고 보았다.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샌델은 정치만으론 정의를 구현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들이 원했던 어떤 지식, 지성의 융합을 바로 레비스트로스에게서 볼 수 있다.

 

  1. 17세기 말에 활동한 오가타 고린이 대표적으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화려한 화풍에서 오가타 고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본문으로]
  2.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기리는 신사인 도쇼구[東照宮]를 들 수 있다. 건축 기법과 장식이 매우 화려하다. [본문으로]
  3. 그는 한때 음악가를 꿈꾸었다. [본문으로]
  4. 같은 책에서 그는 자신이 일본어를 조금도 할 줄 모른다고 밝혔다. [본문으로]
  5.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19세기에 활동한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터키의 욕탕>, <옥좌에 앉은 나폴레옹 1세>, <그랑드 오달리스크> 등이 유명하다. 그의 스승인 자크 루이 다비드처럼 선과 윤곽을 강조하는 화풍을 선보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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