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포동의 하덕 마을은 오래된 어촌이 아니라 관광지처럼 보였다. 자갈이 많은 거제시의 다른 해변들과는 달리 덕포동의 해변은 백사장이었고 덕분에 일찍부터 관광지로 개발된 듯했다. 꼭 백사장 덕분만은 아닐 것이다. 외포리에 있는 흥남해수욕장에도 백사장이 있었고 펜션 역시 제법 들어선 상태였지만 외지인이 상시 거주할 만한 곳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덕포동의 해안은 크게 만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긴 해안선을 크고 작은 건물들이 채우고 있어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또 작게나마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고 절벽 위쪽에선 고급 빌라들이 해안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난 이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 어린이집이 있다는 것이 좋았고 동네에 외지인이 많아 보이는 것도 좋았다. 길을 다니는 사람과 차량이 제법 많아 번화가라는 인상을 주었다. 해변이 남쪽을 향하고 있어 주택들도 대부분 남향이었다. 태양은 늦은 오후에도 해변 위를 머무르며 따뜻한 기운을 쏟아냈다.
약속 시간이 되려먼 멀었기에 덕포 해변에 차를 댄 뒤 근처에 있던 '빈스 커피'라는 상호의 카페로 들어갔다. 한창 때가 아니라 그런지 손님은 나 혼자뿐이었고 덕분에 바닷가 바로 앞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빈스 커피는 풍경을 판매하는 평범한 카페는 아니었다. 커피 원두를 직접 볶는 로스터리 카페였고 카페라테를 만들어 내는 바리스타의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여름이 아니라 계속 한적할 거라 생각했지만 내가 일어설 즈음엔 앉을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난 공인중개사를 만나기로 한 장소로 이동했다. 절벽 위쪽으로 전원주택이 들어서 있는 곳이었다. 바닷가쪽에서 가장 가까운 주택이라 시야를 가리는 게 없었다. 3층으로 된 주택 내부 어디에서나 바다가 보였고 마당으로 나가면 덕포 해변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1층에도 주방과 욕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손님을 초대하기에도 좋아 보였다. 주차도 두 대 이상 할 수 있었다. 지하수를 쓴다는 건 마음에 조금 걸렸다.
공인중개사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칭찬을 하며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를 보이자 공인중개사는 예쁜 집이라 언제 나갈지 모르니 바로 계약을 하는 것이 좋다며 서두르기 시작했다. 헤어진 뒤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며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난 그의 여러 제안들이 좋은 조건인 '척'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걸 눈치채고 말았다. 그의 '가장 행렬'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내가 좋은 사람인 것 같으니' 집주인에게 말해 잔금 납입 일자를 미룰 수 있도록 해주겠다던 호의를 들 수 있다. 그가 집주인에게 말해 잔금일을 몇 달 미뤄주겠다고 했던 건 그 짧은 시간에 낭중지추처럼 드러났던 내 인품 때문이 아니라, 당시 그 집에서 전세를 살고 있던 세입자의 계약기간이 아직 꽤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는 내가 헤어지자마자 PC방에 들러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듯하다. 그는 '좋은 사람'을 '어리숙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게 분명했다.
예로부터 중매와 거간은 상대를 조금씩 속여야 성사되는 것이라 했지만 거래를 성사시키고자 좋게만 포장하는 행위가 난 탐탁지 않았다. 중매쟁이가 결국 뺨을 맞는 이유는 그 거짓말 때문이다. 난 공인중개사의 포장에 실망하여 계약을 하지 않았지만 적당히 속고 속이며 사는 게 낫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잠재된 위험이 다른 가족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그 피해를 혼자 오롯이 감당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거제에서의 일을 끝내고 남해군으로 돌아가 숙소를 잡은 뒤 전화로 그날 있었던 일을 아내에게 설명해 주었다. 아내는 내가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잔금일을 연기해 주기로 했다는 공인중개사의 말을 듣자마자 깜짝 놀라 외쳤다. "말도 안 돼!" 아무래도 내 아내는 중매쟁이가 되기는 그른 것 같다.
덕포해수욕장. 거제시의 해변은 자갈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모래로만 이루어져 있다. 거제시 덕포동, 2019. 3.14.
잠시 머물렀던 빈스커피 카페. 창밖으로 덕포동의 바다가 보인다. 거제시 덕포동, 2019. 3.14.
전원주택에서 내려다 본 덕포동의 주택과 해안. 거제시 덕포동, 2019. 3.14.
주택 내부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거제시 옥포동, 2019.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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