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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오래된 가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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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무작정 찾아오면 어쩌냐고 난처해 하는 중개소장의 차를 타고 고성 읍내와 외곽 지역을 돌았다. 가는 길이 다소 멀 때는 시선을 먼 곳까지 두었는데, 어제까지 자욱했던 미세먼지가 사라져 깨끗했고 덕분에 읍을 둘러싼 작은 산맥들을 먼 곳까지 시원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읍내에 위치한 단층 슬라브 주택이었다. 도배를 새롭게 한 듯 실내가 잘 정돈되어 있었고 보조 주방도 있었으면 읍내 주택치고는 꽤 넓은 텃밭까지 있었다. 옥상도 정비한지 얼마 안 된 듯 갈라진 데 없이 방수처리가 잘 되어 있었다. 주변도 거의 대부분 단층이라 옥상 시야는 물론 햇빛을 가리는 데가 없었다. 오히려 옥상이 텃밭으로 어울릴 듯했다. 문제점도 있었다. 시내의 단독주택들이 그렇듯 마당이 좁았고 주차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주차는 갓길에 하거나 아니면 벽을 허물어 공간을 마련해야 했다. 이 집을 꾸민다면 벽을 허물어 주차장을 만들고 좁은 마당과 텃밭 일부를 잔디 마당으로 꾸미면 좋을 듯했다. 텃밭이 넓긴 했지만 주택들이 붙어 있는 탓에 해가 기울면 옆 건물의 그림자가 졌다. 여러 조건이 좋은 편이었지만 도시에서 읍내로 옮기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 따라왔다. 읍내라는 위치 때문에 무시하기 어려웠던 가격도. 내가 집밖으로 나와 이곳저곳을 둘러보자 방에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따라나와 중개소장의 말에 설명을 보탰다.


나의 요청에 따라 우리는 고성 외곽으로 향했다. 읍내는 아니더라도 면소재지와 가까워야 한다는 게 조건이었다. 외곽에서 들른 첫 번째 주택은 주인이 없어 내부를 볼 순 없었다. 내가 갑자기 찾아온 탓이라고 했다. 내부를 볼 순 없었지만 보았어도 그리 맘에 들지 않을 위치였다. 주택 가까이에 있던 분묘는 문제가 아니었다. 옹벽을 쌓아올린 언덕 옆의 내리막길 아래쪽에 세워진 집이라 위에서 집을 내려다 볼 수  있었고 특정 시간 동안 그늘이 졌다. 마당이 작고 대지는 길쭉하여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형태가 아니었다. 경량철골구조의 주택이라 단열에 신경을 써야 했는데 건축주가 단열에 얼마나 신경을 썼을지 알 수 없었다. 이런저런 주변 상태로 보아 주택 건축 시 단열에 신경을 썼을 것 같지 않았다. 대신 가격이 저렴했지만 이런 건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세 번째로 방문한 곳은 수십 가구가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커다란 저수지를 지나 약간 경사진 길을 오르니 오래된 촌집이 나왔다. 커다란 축사가 딸린 집이었다. 본채는 리모델링이 되어 있어 아주 오래된 집이란 느낌을 받을 수 없었지만 별채는 건축된지 못해도 50년은 되어 보였다. 이 오래된 별채는 토벽으로 된 흙집이었는데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군데군데 패인 흔적이 있었다. 오래된 집답게 아궁이 떼는 온돌방이 있었고 위치도 바로 옆의 본채보다 더 좋았다. 별채에서 마을 아래쪽을 내려다 볼 수 있었고 마을 끝으로 저수지가 보였다 별채는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어 대대적인 수선이 필요해 보였지만 기초를 살려 꾸미면 예쁠 듯했다. 리모델링된 본채는 평범했다. 오래된 촌집이 그러하듯 대청을 막아 만든 좁고 긴 마루가 있었고 그 마루에 두 개의 방과 주방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도 거주를 하려면 수리를 꽤 해야할 듯했다. 축사는 철거하여 마당으로 꾸미면 될 듯했는데 본채 앞도 마당도 꽤 넓어서 축사는 철거 후 창고나 텃밭으로 쓰면 좋을 듯했다 300평 정도 되니 상당한 크기였다. 물은 마을 상수도를 쓰고 있는데 광역 상수도 공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마을 곳곳엔 신축 전원주택들이 들어서 있어 입지가 나쁘지는 않은 듯했다. 문제는 리모델링 비용이었다. 조경까지 제대로 하려면 적어도 5천 만원은 들여야 할 듯했다. 300평이라는 너비를 생각하면 토지값은 수긍할 만했는데 그건 리모델링 비용을 제외했을 때 이야기였다. 


지나쳐 가기만 했던 동네를 둘러보고 또 묵어보니 시골살이가 생각처럼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주변 사물 하나하나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는데, 복잡하게 얽힌 좁고 오래된 길을 어렵사리 빠져나가다가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짙은 화장을 한 채 유흥가 주변을 배회하는 모습을 목격하였을 때 그런 생각이 정점에 달했다. 고성뿐 아니라 어느 오래된 도시에서나 일어날 일을 겪은 것이었지만 불안에 떨던 내 마음은 모든 걸 새롭게, 그리고 두렵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외지에 가족 없이 혼자 왔기 때문은 아닐까.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중개소는 전문가의 공간이라기보다는 나이든 어르신들이 의자를 차지한 채 담소를 나누는, 오래 전 복덕방 같은 공간으로 날 맞이했다. 어르신들은 나를 아끼고 염려하며 배려하듯 대하였고 나는 예의바른 신입생의 자세로 다가갔지만 외지인과의 담장이 단번에 무너질 수는 없었다. 이야기가 다소 길어지자 나는 언제쯤 일어나면 좋을지를 생각했다.


"그 마을엔 애들이 없어. 애들을 볼 수가 없어. 죄다 70대 이상 노인들 뿐야."

 

머리 전체가 하얗게 물들어 있던 복덕방의 할아버지는 나의 이주를 반기는 건지 만류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시골은 텃세가 쎄. 그건 어쩔 수가 없어. 누가 이사와서 집 짓고 그러면 훼방 놓고 그런다고."

"그러면 안 돼지, 누가 이사를 오면 마을 사람들이 다 나와서 반겨주고 잔치도 하고 그래야지, 쫓아내면 어떡해, 참 문제야."

"반겨주는 게 아니라, 죽을 때 된 사람들이 안 죽어서 그렇다고. 갈 때 되면 바로 가야 되는데."

"영감님 가시면 제가 재는 좋은 곳에 뿌려 드릴게."


이런저런 말씀들을 듣다 중개소 밖으로 나오니 해질녘이었다. 나는 어둑해진 고성군의 낯선 길을 헤매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는 해지는 고성군의 들녘을 잠시 바라보었다. 공기는 맑았고 지는 태양은 먼 동쪽의 산맥을 비추었으며 그 산맥을 타넘던 수많은 철탑들은 우리의 산과 들판 위에 자신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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