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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에게 끓여준 미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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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벌써 일곱 끼니째 미역국을 먹고 있었다. 아내에게 지겹지 않냐고 물으니ㅡ아내는 나와 달리 연달아 같은 메뉴를 선택하는 법이 별로 없다ㅡ미역국은 좋아하니 괜찮다고 한다. 그래서 산부인과에서 집으로 돌아온 날 집에서 미역국을 끓였다. 사실 미역국 재료를 미리 사두었었다. 아내가 '이제 미역국은 지겨워', 하고 말했다면 난 냉장실에 있던 소고기를 냉동실로 옮겨야 했을 것이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온 첫날 미역국을 해주고 싶은 내 마음을 몰라준다며 투덜댔겠지.



2.

우리는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며 투덜대곤 한다. 아내는 남편이 무관심하다고 불평하고 남편은 아내가 무심하다고 하소연을 한다. 반면 자신은 상대방에게 잘하고 있다고, 충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실상 온전히 무관심한 사람도, 온전히 배려가 깊은 사람도 없다. 정도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바라보는 관심사에 크게 차이가 날 뿐이다. 누구든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엔 관심을 보이고 그렇지 않은 곳엔 흥미를 덜 둔다.


예를 들어 남편은 전체적인 집안 청소에 관심이 있는 반면, 아내는 수챗구멍 같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남편은 바닥 청소를 열심히 하는 반면, 아내는 수챗구멍과 세탁기 먼지 필터 같은 곳에 열심이다. 서로 열심히 하는 곳을 칭찬해 주면 좋으련만ㅡ취향이 다른 사람끼리 만나야 행복하다는 흔한 결혼 공식은 오로지 이 경우에만 성립 가능하다ㅡ세상사는 상대가 부족한 부분을 먼저 바라보기 마련이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가 청소를 잘 안 한다고 타박하고 아내는 남편이 청소를 구석구석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구박한다. 


내가 이러한 사실, 이러한 차이를 잘 안다고 하여 비슷한 일로 곤란을 겪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떨 때는 차이를 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대개 내 설명은, 내 대화의 목적은 '차이를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차이를 좁히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상대방에게 다가간 덕분에 거리가 좁혀지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내게 다가와서 거리가 좁혀지기를 바랄 때가 많았다. 그런 심리 기저에는 '내가 옳기 때문'이라는 정당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것은 스스로 옳은 행동을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독선이라는 이름의 크나큰 오류였다. 설령 내 주장이 객관적으로 옳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그 입장을 명백히 거부한다면 난 거기에서 멈추어야 했다. 거리 좁히기 시도는 거기에서 끝나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최근 노자의 <도덕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내 마음의 독선을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완독을 했음에도 별반 변화는 없었다. 무슨 책을 읽었느냐는 문제가 아니었다. 깨달은 듯한 느낌은 그때뿐이기 때문이다. 마음가짐은 마치 습관처럼 되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었다. 물론ㅡ꼭 임마누엘 칸트가 주장했던 대로ㅡ'습관화'된 선이나 '습관화'된 중용은 참된 도덕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그건 뇌의 일정 부분을 수술로 제거하여 논쟁적인 심리가 제거된 사람을 향해 '인품이 깊은 사람'이라 말하기 어려운 이유와 비슷하다. 우리의 도덕은 금의 가치를 몰라서 금을 돌처럼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 금의 가치를 알고 있음에도 금을 돌처럼 여기는 사람을 향한다. 하지만 알고 있음에도 그러하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안다고 믿는다. 혹은 알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 독선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애써 미역국을 끓인다. 어쨌거나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우선시하고 그것에 홀리기 마련이니까. 



3.

미역국은 의외로 간단한 요리다. 하지만 깊은 맛을 내는 건 그리 쉽지 않다. 나는 나 자신의 평가에 후한 편이기 때문에 맛이 마음에 들었다. 아내의 생각은 다를 수 있었는데, 아내는 주의를 기울여 맛을 보더니 좋다는 평가를 내려 주었다. 고기가 부드럽고 미역도 병원에서 먹던 것보다 부드럽게 씹힌다고 했다. 고기는 값비싼 한우 덕분인 것 같고 미역은 아마도 여러 번 씻어낸 뒤 중불에서 꽤 오래 끓여낸 덕분인 듯하다. 그러면 맛은? 아내가 미리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멸치육수에 그 영광을 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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