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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네가 밑바닥을 안다고?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9. 1. 17.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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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자전 소설인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다른 제목으로도 꽤 번역되어 있었다. 찾아보니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그리고 <파리와 런던 거리의 성자들>이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제목으로 번역되는 외국 문학이라니, 흔치 않은 일이다. 이 네 권의 번역서 중 어떤 걸 읽을까 고민하다가 삼우반 출판사에서 나온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골랐다. 

 

고민 목록에서 제일 먼저 배제된 건 <파리와 런던 거리의 성자들>이었다. '성자'라는 단어가 소설 내용과 어울리지 않았고 또 상투적이었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따라지'라는 낯선 단어가 걸렸다. '미리 보기'로 번역을 확인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동물농장>과 합본으로 나와 있어 미리 보기로는 읽어볼 수가 없었다. 굳이 따라지라는 표현을 써야 했을까?

 

최종적으로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 경합을 했는데 강렬함에서 '밑바닥'이 '빈털터리'를 앞섰다. 빈털터리와 밑바닥 모두 파리의 더러운 빈민가에 어울리는 '저렴한' 표현이라 마음에 들었는데 개인적 경험 때문에 '밑바닥' 쪽에 더 마음이 갔다.

 

한때 난 내 개인적인 가난과 어려움을 친구에게 토로한 적이 있었는데ㅡ당시 난 수중에 돈이 거의 없었고 당연히 제대로 된 식사도 할 수 없었으며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도 딱히 없어 주변에 신세를 져야만 했다ㅡ친구가 이야기를 다 듣더니 빙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래서, 네가 밑바닥을 경험해 봤다고 생각하는 거야?" 난 그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 친구의 복잡한 가정사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는데, 그것만 비교해 봐도 이미 난 유복함에서 앞서 나가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밑바닥이 아니었으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내 머릿속에 강렬히 남아 있다. 내가 '밑바닥 생활'이라는 단어에 끌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고른 것만 봐도 그렇다. 그때 내게 그 말을 해주었던 친구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이 소설은 꽤 독특해서 읽는 내내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 속 오웰의 친구, 보리스에게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올린 건 나뿐이었을까? 책을 읽으며 아래와 같이 주석을 달아 보았다. 또 다른 주석은 다른 독자들의 몫이다.

 

 

1.
"어머니는 하루 열여섯 시간 일하면서 한 짝에 25상팀을 받고 양말을 꿰맸는데, 아들은 깔끔하게 차려입고 몽파르나스의 카페촌에서 빈둥거렸다." 

ㅡ 철없는 자식을 부양하는 고생하는 부모는 시대를 뛰어넘는 전형이다.


2.
"가난과 뗄 수 없는 따분함을 발견한다. 아무런 일도 할 것이 없고 제대로 먹지를 못하니 아무런 일에도 관심이 가지 않는 때이다."

ㅡ 따분함을 꼭 가난해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이 없어 무료 공공시설만 이용해도 금세 따분해지는데, 배고픔에서 오는 따분함이라니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이쯤 되면 굳이 '왜'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수준의 가난을 겪게 되면 자살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가 보다. 조지 오웰은 극심한 가난을 겪으며 그것이 보상해주는 커다란 특징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가난이 장래를 전멸시킨다"(26쪽)는 것이다. 자살 시도라는 생각조차 사라져 버린다.


3.
"자넨 글을 쓰겠다는데 말야. 글은 무슨 놈의 글인가. 글 쓰는 걸로 돈 버는 길은 출판사 사장 딸하고 결혼하는 거, 그거 딱 한 가지뿐이야."

ㅡ 고래로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훈수꾼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런 말조차 때로는 맞을 때가 있다.


4.
"한 잔에 두 시간까지 앉아 있는 게 예의라서 우리는 두 시간 뒤 카페를 나왔다."

ㅡ 우리는 종종 커피 한 잔으로 카페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가를 두고 논쟁한다. 조지 오웰의 위 문장으로 당시 파리에도 '커피 한 잔의 예의'가 있었으며 그 시간은 두 시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국내에도 똑같이 적용 가능할까? 국내의 커피 가격은 당시 파리의 커피 가격에 비해 상당히 높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그 점을 감안해서 계산해야겠다.


5.
"뚱뚱하고 부유한 미국인을 몽파르나스의 어두운 길모퉁이에서 스타킹에 넣은 돌로 퍽 친다."

ㅡ 이 시기의 파리에도 지금처럼 '퍽치기'가 있었다. 물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6.
"힘든 이틀이 뒤따랐다. 남은 돈이 60상팀이었고, 이것으로 우리는 빵 반 파운드와 거기에 문질러 먹을 마늘 한 개를 샀다. 마늘을 빵에 문지르는 이유는 그 맛이 남아 있어 방금 음식을 먹었다는 환상을 주기 때문이다."

ㅡ 마늘빵에 대한 새롭고도 놀라운 해석이었다. 1인당 마늘 소비량으로 세계 최고치를 기록하고, 탄생 설화에도 마늘이 등장하는 우리 민족의 특성에서 비슷한 환상을 찾아볼 수 있을까? 


7.
"공원 의자에서, 특히 예쁜 여자들로 가득한 것이 보통인 튈르리 공원에서 신문지에 싼 음식을 먹는 것을 불쾌한 일이지만 너무 배고파서 상관하지 않았다."

ㅡ 공원 의자에 앉아 있는 노숙자들을 바라보면 불쾌한 기분이 들 것이다. "공무원들은 뭐하는 겁니까! 노숙자들이 공원에서 먹고 떠들어서 동네 분위기를 다 망치잖아요!"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우리를 상관할 겨를이 없다.


8.
"어느 날 그(앙리)는 사랑에 빠졌는데, 여자가 자기를 거부하자 냉정을 잃고 발로 걷어찼다. 걷어차이자마자 여자가 그에게 열렬한 사랑을 느껴, 이들은 2주 동안 같이 살면서 앙리의 돈 천 프랑을 썼다. 그리고는 여자가 바람이 나자 앙리는 그녀의 위쪽 팔에 칼을 꽂고 6개월간 교도소에서 보냈다. 칼에 찔리기 무섭게 여자가 어느 때보다 앙리에게 깊은 사랑을 느껴 두 사람은 화해했고, 그가 출소하면 택시 한 대를 사고 결혼해서 정착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2주 뒤 여자는 다시 바람이 났고 그가 출소했을 때는 아이를 가진 몸이었다. 그는 다시 그녀를 칼로 찌르지는 않았다. 그는 저축한 돈을 전부 찾아 한바탕 술독에 빠져 지내다가 결국 다시 1개월간 교도소 신세를 졌다." 

ㅡ 이 문단에서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라캉의 유명한 다음 명제를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소설의 배경이 프랑스 파리이지 않은가. "여자는 남자의 증상이다."


9.
"남자가 돈이 생기면 가는 데가 어디겠습니까? 당연히 창녀촌이지요. (...) 그 애의 고개를 젖혀 얼굴을 내려다보았어요. 스무 살쯤 되어 보였지요. (...) 충격받고 일그러진 모습이었지요. 부모가 노예로 팔아먹은 농촌 처녀가 분명했어요. (...) 호랑이처럼 그 애를 덮쳤습니다. 아아, 그때의 그 기쁨, 그 비교할 수 없는 환희! (...) 바로 사랑입니다!"

ㅡ 성의 문제는 철학자들을 괴롭혔다. 성은 억압되어 왔는가? 성의 억압이 오히려 무분별한 성의식을 야기시켰는가? 성의 완전한 개방은 여성 인권을 향상하는가? 성은 비즈니스가 될 수 있는가? 성행위가 사랑을 유발할 수 있는가? 

오웰의 소설 속 저 남자는 성적 충동을 사랑의 감정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사랑은 성행위가 끝나자마자 쾌락과 함께 사라졌다.


10.
""<X> 호텔에서 처녀성을 간직한 여자를 찾는 것보다 겨울에 구름 없는 하늘을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이곳은 괴상한 곳 같았다."

ㅡ 학창 시절, 동갑내기 여학생과 함께 학교에 세워져 있던 동상 옆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문득 그 여학생이 동상을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학교에 입학한 처녀가 동상 옆을 지나가면 말이 크게 울음 소리를 낸데." 청동으로 만든 그 동상은 말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처녀가 옆을 지나가면 말이 살아나 소리를 내어 운다는 것이었다. 

"누가 그런 말을 해?" 
"내 남자 동기가 그런던데."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 
"얼른 히잉 하고 울음 소리를 냈지."

난 그 여학생이 던진 갑작스러운 성적 주제에 다소 당황하였지만 겉으론 태연한 척 말을 이어갔다. 이전까지 여자와 단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그 여학생은 그런 당돌한 성적 자유가 여성의 권리를 높여줄 거라 믿는 페미니스트였을까? 아니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거리낌없이 여자들에게 내뱉는 남성의 불건전한 습성을 탓하고자 그런 말을 꺼낸 것이었을까? 아니면 동상이 울지 않은 것으로 자신이 처녀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을 테니, 만일 네가 처녀만을 원하는 고지식한 남자라면 일찌감치 자신을 포기하라는 뜻을 무언중에 전하려던 것이었을까? 

그때 여학생의 말에 순간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얘는 왜 그때 굳이 '히잉' 하는 울음 소리를 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자신이 처녀라는 걸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정신의 소유자라면 '처녀' 타령하는 그 남자를 위해 자신이 처녀라는 걸 드러내기보다는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일침을 날렸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곧이어 다음의 의문이 따라왔다. 

'지금은 왜 '히잉' 하고 울지 않는 거지?'

물론 그런 걸 묻지도, 내 의중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아내에게 말해 봐야 전혀 믿지 않을 테지만 난 속마음을 꽤나 감추고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지금은 그때가 그립다. 밑바닥 생활도 그렇지만, 애초에 사람의 인성에는 밑바닥이란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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