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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주석을 달다 (2)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9. 1. 2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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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는 매우 예리한 식탁용 나이프를 구입해놓았다. 예리한 나이프는 성공하는 음식점의 비결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기쁘다. 왜냐하면 이 일로 해서 프랑스인들은 좋은 음식을 알아본다는 나의 환상이 깨졌기 때문이었다."

 

ㅡ 예전에 서울 상봉동의 한 오스테리아에서 발견한 프랑스산 스테이크 나이프에 관해 쓴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순전히 그 나이프 하나 때문에 그 오스테리아를 괜찮은 곳이라 평하였다. 당시 나는 스테이크의 맛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관심이 있었다 한들 좋은 평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문 쪽에 앉아 있던 탓에 주변의 공기는 차가웠고, 그 때문에 여러 조각으로 썰린 채 나온 스테이크는 빠르게 식어버렸다. 스테이크가 다른 요리에 뒤이어 나온 탓에 식기 전에 빠르게 음미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스테이크 나이프, 그것 하나 때문에 나는ㅡ다른 것을 모두 무시한 채ㅡ그 식당을 특별하게 평가했다. 

 

바로 이런 것이다. "예리한 나이프는 성공하는 음식점의 비결 바로 그것이다."[각주:1] 맛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는 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다.

 

 

12.

"나중에 들었는데 우수한 두 사람이 주방에 들어오면서 접시닦이의 일이 하루 열다섯 시간으로 줄었다고 한다. 주방을 현대화하지 않고서는 이보다 더 많이 줄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ㅡ 조지 오웰은 남성인데도 불구하고 그때 이미 주방의 현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에 비하면 훨씬 진보된 상태였던 프랑스 파리의 주방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으니, 당시에도 상수도가 없어 우물물을 길어야 했던 우리 주방의 일이란 얼마나 고된 것이었을지 지금의 우리는 그저 상상만 해볼 수 있을 뿐이다. 이 소설이 쓰인 1930년대의 파리 주방은 이미 가스버너를 사용했는데[각주:2], 그때 우리 조상들은 온수는커녕 상수도조차 기대할 수 없었다. 

 

조선 시대의 서울은 '우물의 도시'였고 노비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물을 길어오는 것이어서 당시 '양반이 직접 물을 긷는다'는 것은 그 정도로 가난하다는 어려움을 표현했다. 개화기 무렵엔 전국에 '물장수'라는 직업이 등장했는데, 이 시기에 외국인이 찍은 물장수 사진이 다른 사진에 비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역사학자 전우용에 따르면 이것은 "그들이 외국인의 눈에 희한한 존재로 비쳤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수 자체가 많았기 때문"[각주:3]이었다. 이렇게 물을 길러야 하는 사정은 해방 이후에도 나아지질 않아서 부엌일에 큰 고통을 주었다.[각주:4] 

 

오늘날의 부엌은 상당한 현대화를 거쳤지만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다. 싱크대는 높이가 다양하지 못한 탓에 키가 여성 평균 키보다 큰 사람, 특히 남성이 사용하기에 불편하다. 개수대는 작아서 물을 사용하기에 불편하고 수도꼭지도 여전히 한 개에 불과해서 주방 일을 '혼자만의 일'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도 계속 개선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집의 구조에서 지금까지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 바로 부엌이다.

 

 

13.

"한 시간 정도를 제외하면 나는 아침 일곱 시부터 밤 아홉 시 십오 분까지 일했다. 처음에는 그릇을 설거지하고, 다음에는 종업원 식당의 식탁과 마룻바닥을 훔치고, 다음에 유리잔과 나이프의 광택을 내고, 다음에 음식을 나르고, 다음에 다시 그릇을 닦고, 다음에 또 음식을 나르고 또 그릇을 닦았다."

 

ㅡ 주방 일이라는 것은ㅡ특히 작은 식당일수록ㅡ여자가 전담하는 일처럼 보였다.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도 주방은 언제나 '이모'를 구했지 '아저씨'를 구하지는 않았었다. '식당 알바를 설거지로 시작했다'라는 유쾌하고도 고된 경험담은 매번 여학생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조지 오웰은 남자인 자신이 주방 일을 했다고 서술했다. 20세기 초에 주방 일을 남자가 했다는 소릴 들었다면 우리 사회는 깜짝 놀랐을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보통은 설거지하는 사람이 여자"[각주:5]였지만 그렇다고 남자가 주방일 하는 걸 이상하게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그런 류의 놀라움이 주변을 떠돌고 있다.

 

 

14.

""이거 봤어? 요즘에는 이런 종류의 접시닦이를 보내온단 말이야. 너 어디에서 왔어, 이 천치야? 샤랑통이야?" (샤랑통은 큰 정신병원이 있는 곳이다.)

"영국입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

"내가 이거 알아 모셔야 하는 건데. 그런데, 영국인 나으리, 당신이 매춘부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려드려도 되겠소이까? 자아, 어서 네가 속한 카운터로 썩 꺼져, 이 새끼야."

(...)

호기심에서 이날 몇 번이나 "이 뚜쟁이야" 하는 욕을 먹는지 세어보았는데 모두 서른아홉 번이었다."

 

ㅡ 어느 순진한 구직자는 이러한 노동 현실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옛날엔 저랬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랫사람을 하대하고 욕설을 수시로 던지는 노동 현장을 오래전의 악습으로만 간주하기는 매우 어렵다. 

 

내가 국방부의 전산원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여러 고위공직자를 모아놓고 사업설명회를 하는 날이었는데, 빔프로젝트가 고장 나서 발표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자 부서장은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수십 분 동안 내게ㅡ말 그대로ㅡ쌍욕을 내뱉었다. 사업설명회를 들으러 왔던 공직자 중에서 그를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발표를 하러 왔을 뿐, 빔프로젝트 관리 담당자가 아니어서 내 책임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퇴직을 앞둔 노년의 그 공직자는 마치 작심이라도 한 듯 수십 분간 입에서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조지 오웰이 묘사한 욕설 정도는 장난 정도에 불과했다. 그날 들은 쌍소리를 세면 서른아홉 번은 충분히 넘겼을 것이다. 결국 빔프로젝트를 담당하던 다른 부서의 여직원이 눈물을 펑펑 흘리고 말았다. 그녀는 울먹이며 내게 죄송하다고 했는데 죄송할 일도 아니었다. 세상에 많은 미치광이 중 하나가 그날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같은 부서의 부하 직원인 내게도 행실이 그 모양이었으니, 그가 외주 업체 직원, 이른바 '을'에겐 어떻게 행동했을지 충분히 짐작 가능할 것이다.

 

사실 욕설은 드문 일이다. 다만 고함치는 정도는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직장인 중에는 상대방이 자신보다 직급이 조금이라도 낮거나 입사 시기가 늦으면 그를 인격적으로 모독해도 좋은 '하등동물'로 취급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고함을 치지 않는다고 해서 좋아할 일도 아니다. 당신의 상사는 빙긋 웃으며 당신의 자존심을 긁는 악담을 술술 해댈 테니까. 이런 경우는 반격하기도 쉽지 않다. 취업 준비생은 이런 점에 유의해야 한다. 사정이 아주 천천히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직장은 당신의 인격을 파괴할 수 있다. 직장인들이 틈만 나면 모여 상사나 후배의 뒷담화를 늘어놓는 걸 어느 정도는 이해해 주도록 하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 역시 또 다른 가해자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쌓은 업식은 결코 스스로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한 가지 언급해두고 싶은 것이 더 있다. 그것은 호텔의 이 부엌 노동자들이 수시로 욕을 해대는 이유가ㅡ조지 오웰의 설명에 따르면ㅡ"단지 서로를 자극해서 네 시간짜리 일을 두 시간 안에 해치우려고"[각주:6] 애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가해지는 욕설은 단순히 성질이 북받친 분노의 표현일 때가 많다.

 

 

15.

"빵 상자는 바퀴벌레가 들끓었다. (...) 

프랑스 요리사는 수프에 침을 뱉는다고 하는 말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단지 사실을 진술한 것뿐이다. (...) 수석 요리사는 자기의 검사를 받으러 스테이크를 가져오면 그것을 포크로 다루지 않는다. 그는 (...) 접시 위에 엄지손가락으로 둥그렇게 원을 긋고 그 손가락을 빨아 고깃국물의 맛을 보고 (...) 뚱뚱한 분홍빛 손가락으로 고기를 사랑스럽게 눌러 자리를 잡게 한다. 이 손가락들은 모두 이날 아침에 백 번은 빨았던 그 손가락들이다. (...) 

암으로 죽는 사람이 의사에게 단순히 "하나의 사례"이듯이, 그 종업원에게 음식은 단순히 "하나의 주문"일 뿐이다. (...) 굵은 땀방울이 그의 이마에서 토스트 위로 떨어진다. 그가 무슨 걱정인가? 곧 그 토스트가 더러운 톱밥이 깔린 바닥에 떨어진다. 왜 고생하고 새로 만드는가? 톱밥을 닦아내는 게 훨씬 빠르다. (...) 종업원 구역 어디에나 불결이 곪아 터졌다. (...)

요리사들이 세련되게 조리해내는 법을 알았지만, 음식 재료는 대체로 질이 매우 낮았다. (...) 야채는 웬만한 가정주부라면 시장에서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들이었다. 크림은 이 호텔의 근무 수칙에 따라 우유를 섞어 희석시킨 것이었다. 홍차와 커피는 열등한 종류였고, 잼은 상표 없는 큰 깡통에서 나온 인조 제품이었다. (...) 위층에서는 한 번 사용한 시트를 세탁하지 않고 물만 축여 다시 다리미질을 하고는 침대에 다시 깐다는 지저분한 이야기가 있었다. (...)

그런데도 <X> 호텔은 파리에서 가장 비싼 열두 군데 호텔 중 하나였고, 손님들은 엄청난 가격을 지불했다.

 

ㅡ 이 소설이 조지 오웰의 자전 소설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을 토대로 소설을 썼다. 하지만 만약 내가 서울의 일부 특급 호텔에서 변기를 닦은 수세미로 컵과 세면대를 닦고, 베갯잇은 빨지도 않은 채 먼지만 털었다는 뉴스 보도를 보지 못했다면, 조지 오웰의 진술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의 장소는 싸구려 여관이 아니라 특급 호텔이었다. 특급 레스토랑이라고 하여 다른 걸 기대할 수는 없다. 자기가 먹을 것도 아닌데 뭐하러 위생에 신경을 쓰겠는가? 어떤 요리사는 코를 판 손으로 야채를 다듬고 음식 위에다 기침할 것이며 어떤 웨이터는 사타구니를 긁던 손으로 수저와 젓가락을 집어 테이블에 올려둘 것이다. 껍질 채 먹는 과일이나 야채를 깨끗이 씻을 가능성도 그다지 높지 않다. 위생적인 직원이라고 급료를 올려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야단을 맞지 않으면 다행 아닐까? 과일과 야채를 깨끗이 씻고 있는 직원이 듣게 될 말은 '쓸데없이 물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호통ㅡ초보 남편이 부엌 일을 도와주겠다고 나섰다가 듣게 되는 가장 빈번한 말 중의 하나ㅡ일 가능성이 크다. 저급한 식자재는 또 어떠한가? '가정주부라면 시장에서 거들떠보지도 않을' 재료들이 요리사의 플레이팅과 향신료 덕에 근사한 모습을 드러낸다. 

 

집에서 먹는 '집밥'이 좋은 이유는 단순히 상대적으로 저렴해서가 아니다. 오늘날의 중장년층은 외식을 포기하고 집밥을 먹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돈이 없어서 저렇다고 혀를 차기도 한다. 하지만 꼭 돈이 없어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집밥을 통해 얻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대표적인 것을 뽑아보라면 단연 위생과 건강이다. 집에서 하는 밥은 바로 '우리'가 먹을 것들이다. 식당에서 하는 밥이 '남'이 먹을 것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유일하게 깨끗하게 나온 음식은 직원과 호텔 주인이 먹는 음식이었다"[각주:7]라고 쓴 조지 오웰의 사례는 그 호텔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16.

"접시닦이가 현대적인 세계에서 노예들 중에 하나라는 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 그의 일은 노예적이고 기술이 없다. 그는 딱 살아 있을 만큼을 보수로 받는다. 그의 유일한 휴일은 해고이다. 그는 결혼의 길이 막혀 있고 만일 결혼을 한다면 그의 아내도 일해야만 한다. (...) 이 순간에도 파리에는 학사학위를 가지고 하루 열 시간에서 열다섯 시간 접시를 닦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게으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게으른 사람은 접시닦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각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일상의 덫에 걸려든 것이다. 만일 접시닦이가 조금이라도 생각을 한다며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처우 개선을 위해 파업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럴만한 여가가 없기 때문에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이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놓는다. (...) 마르쿠스 카토는 노예가 자지 않을 때에는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예가 하는 일이 필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일 자체가 노예에게 좋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서는 아직도 잔존하고, 그런 정서가 산더미 같은 무익한 고역을 쌓아오고 있다."

 

ㅡ 이는 1930년대 파리의 하층 노동자의 삶을 묘사한 것이다. 이들에게 결혼의 길은 막혀 있다. 아들은 학위를 가지고도 온종일 접시를 닦는다. 사회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는 위의 상황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것이다. 물론 상황은 그때보다 나아졌다. 노동 시간이 줄어든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100여 년 전의 노동자들과 지금 노동자들의 삶을 비교해 보면, 10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노동의 질적인 면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게 된다. 또 다른 100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부자와 빈자의 질적 차이는 크게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견해는ㅡ조지 오웰 스스로 밝힌 바대로ㅡ새로울 것이 없는 "대체로 진부한 견해임에는 의문이 없다"[각주:8]고 할 수 있는데, 놀라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개선이 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점이다.

 

 

  1. 조지 오웰 저, 신창용 옮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삼우반 2009), 150쪽 [본문으로]
  2. "요리용 화력은 가스 스토브 세 대가 전부였고"(139쪽)라는 책 속 문장에서 파리는 1933년 즈음에 이미 가스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본문으로]
  3. 전우용 글 <서울은 깊다> (돌베개, 2008), 313쪽 [본문으로]
  4. "1960년 전국의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서울에서 우물물 사용자는 전 가구 수의 35.7퍼센트, 공동 수도를 사용하는 가구는 38.8퍼센트였고, 개인 수도를 사용하는 가구는 불과 23.8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수도가 집집마다 가설이 되었다 하더라도 수압이 낮아 수도가 끊기기 일쑤였다." ㅡ전남일 글, 그림 <집> (돌베개 2015), 79쪽 [본문으로]
  5. 조지 오웰 저, 신창용 옮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삼우반 2009), 88쪽 [본문으로]
  6. 같은 책 99쪽 [본문으로]
  7. 같은 책 106쪽 [본문으로]
  8. 같은 책 158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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