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 책을 찾은 이유는 이 책이 스토리상의 빠른 전개를 문학적 감성과 함께 어떻게 결부시키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 김영하 씨의 소설은 우리나라의 문단 주류를 이루는 여성작가들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와는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는데, 이런 김영하 씨의 글을 볼 때마다 그가 속된 말로 '뜬' 이유는 상당수 운이 작용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가 90년대에 PC통신을 이용해 발표하던 글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계간지에서 그의 글을 작품의 하나로 발표하려고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글은 순수문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90년대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나라의 단편소설은 순수문학과 리얼리즘이 상당수 점령하고 있다. 그건 그것이 그만큼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김영하 씨의 글은 소설도 아니며 그저 대중 소설이고, 깊이가 없다는 평을 들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도 그랬고. 지금은 박민규 씨와 같은 특이한 소설도 인정을 받고 있지만, 그런 수용조차 자신들이 아주 보수적이지는 않다는 문단의 선심쓰기처럼 보일 때가 있다. 나의 색안경인지도 모르겠다(그러나, 우리나라 문학이 해외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그 특유의 순수문학에 대한 강조때문일 터이다. 서사가 사라진, 언어의 기술에 종속된 문학이 해외에서 제대로 번역되기란 도무지 어려운 일 아닌가). 각설하고, 나 역시 몇몇 비판을 하곤 했지만, 그의 글은 재미있다. 빠른 전개가 그에 한몫한다(빠른 전개는 또한 빠르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의 글은 쉽게 읽을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문장을 그만큼 충분히 고려해서 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서사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그가 설정하는 인물들의 전형성과 비현실성이 너무나 새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나라 단편들의 흐름을 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새로운 느낌을 받고 싶을 때 난 아직도 김영하 씨의 책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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