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때마다 내가 전에 이 작가의 글을 제대로 읽었던 것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새로운 번역으로 읽었는데, 이번 역자는 책의 시작을 '엄마'가 아닌 '어머니'로 시작하고 있었다.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이방인을 읽었을 때, 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르겠다." 난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라고 말하는 그 첫 문장이 잘 잊혀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 책은 어머니였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아니 느꼈지만 왜인지 잘 알 수 없었단 문장과 문장 사이의 단절을 이제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대화의 배제, 단조로운 설명, 단순 과거, 모든 것을 수용하는 듯한(실은 무관심을 의미하는) 태도. 어디에 있거나, 무엇을 하거나 결국 마찬가지일거라는 생각. 그런 단절을 나타내는 데는 엄마보다 어머니가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 주인공의 감정은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하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기분은 이 이방인 뫼르소가 그때 시대가 만든 시대적 인간이 아니라 보편성을 띤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소설이 여전히 견고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는 그 역시 한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눈을 뜨자 얼굴 위에 별이 보였기 때문이다. 들판의 소리들이 나에게까지 울려올라왔다. 밤 냄새, 흙 냄새, 소금 냄새가 관자놀이를 시원하게 해주었다. 잠든 그 여름의 그 희한한 평화가 밀물처럼 내 속으로 흘러들었다." -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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