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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강릉, 그리고 겨울 바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산책로/익숙한 길

by solutus 2018. 12. 14.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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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계획은 원주를 거쳐 속초로 가는 것이었지만 우리는 강릉에서 멈춰섰다. 속초까지 가려면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몇 십분을 더 움직여야 했는데 날은 이미 어두웠다. 더 가야할까? 속초는 이미 잘 알잖아. 강릉은 겨울에만 가보는 것 같아. 나는 차를 운전했고 아내는 숙박할 곳을 검색했다. 아이는 카시트에 앉은 채 꿈에 빠졌다.


아내는 외딴 곳을 두려워했다. 추위를 걱정하기도 했다. 잠깐은 괜찮지만 오래 견딜 자신은 없다고 했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인간은 생각 외로 적응을 잘한다. 외딴 곳도, 추위도.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을 경우에 한한다. 피할 수 있다면 굳이 선택하지 않는다. 잠깐은 괜찮지만 오래 견디기는 힘듦ㅡ많은 경우가 그렇다. 외딴 집, 한적한 동네, 포구 없는 섬, 보폭이 다른 동행, 듣지 않는 대화, 달콤한 식사, 그리고 겨울 바다.


바다가 주는 이미지가 침울하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겨울 바다는 더욱 그렇다. 물은 차갑고 바람은 매서우며 파도는 거칠고 끝 간 데 없는 자연의 장엄함은 헛됨이 무엇인지를 묻는 듯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바다에서 우울증을 발견한다. 바다나 강을 오래 보고 있으면 우울증에 걸린데. 겨울 바다ㅡ잠깐은 괜찮지만 오래 견디기는 어려운 것. 우리가 출발 전에 최종 목적지로 삼았던 속초까지 가지 않고 강릉에서 멈춰선 건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래도 막상 살면 괜찮을 거 같긴 해, 속초에 사시는 분들 얘기 들어보면 다 살기 좋다고 하시더라. 자기 사는 동네는 다 살기 좋다고 하던데 뭘. 


난 바닷가에서 살고 싶었다. 아침이면 자리에서 일어나 해변을 달리는 걸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난 내가 그러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건 실제로 그 해변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달리러 갈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였기에. 난 아침 느즈막에 일어나 조깅을 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고 중얼거릴 것이다. 그리고 커피를 한 잔 마시겠지. 내일은 꼭 일찍 나가봐야겠다 다짐하며. 그 게으른 가능성이, 언제든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안도가 마음에 충만히 들어선다. 어느 아침이고 언제나 한껏 몸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은 부서지기 쉬운 자신감과 함께. 


겨울 바다의 매서운 바람은 거친 파도를 일으키고, 거친 파도는 해변에 밀려와 내가 모래 위에 갈겨써 놓은 그 게으른 희망에 아무런 대비가 없음을 알린다. 난 그 잔인한 지적에 놀라 허둥지둥 아늑한 카페로 들어간 뒤 따스한 커피잔으로 손을 녹이며 그 온기에 위로를 받으려 한다. 목적지를 바꿔 중간에 멈춰선 채로. 왜 애초에 정했던 목적지까지 가지 않느냐며 서로 타박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나는 목적 그 자체보다 나를, 그리고 너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난 아내를 바라보며 말한다. 인생 뭐 있나, 다 그렇고 그런 거지. 


바깥은 겨울, 손엔 따뜻한 커피, 그 안에서 보호받고 있는 듯한 위로. 내가 겨울 바다를 좋아한다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바다와 아이. 강릉시 강문동. 2018.12.12.


자몽차와 카페라테. 강릉시 강문동. 2018.12.12.


오리 카페와 바다, 아내와 아이. 강릉시 강문동. 2018.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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