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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진심의 공간>, 자신의 공간을 짓다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8. 10. 1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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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의 공간>은 건축을 철학적 사색의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인문서적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건축은 단순히 거주를 위한 공간 설계 기법이 아니다. 집은 삶의 철학적 양분을 제공하는 터전이자 가만히 그곳에 앉아 있기만 해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건축이란 그를 실천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조력자가 될 수 있어야 했다. 성당에 들어설 때 느끼게 되는 경건함과 숭고함, 방문자로 하여금 절로 종교의 충만함에 빠져들게 하는 건축의 힘을 거대한 건축물이 아니라 일상의 건물에서도 느낄 수 있게 하려는 것, 그 느낌의 방식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 지은이의 의도라 할 수 있다. 


일반인이 생각하기에 다소 과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비슷한 모양과 구조의 아파트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의 현실에서 공간의 철학을 생각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뿐더러, 양보해서 생각하려 해도 창문을 바라보며 창문과 벽의 관계가 연출하는 흐름과 시의 운율을 언급하는 저자의 심리를 평범한 독자가 따라가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집을 지을 때 '창문'이라고 하면 첫째로는 빛과 환기의 문제, 둘째로는 기밀성과 보온성의 문제, 운치 있는 사람이라면 창문에서 보이는 풍경의 문제를 따지지, '창은 내면의 반영이라는 인본적 인식'을 우선적으로 성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가 빈 집에 난 창문들이 서로 대화를 하는 것 같다고 느꼈을 때, 그 감정은 옆의 사람에게 전이되지 못한 채 오로지 그의 것으로 머물 가능성이 높다.


나 역시 지은이의 의식을 온전히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과잉의식이 아닌가 생각할 만한 부분도 있었다. 예컨대 내가 부엌에 놓여 있는 식칼을 볼 때마다 칼날의 예리함에서 생과 사의 떨림과 긴장을 인식하고 새파란 날에서 죽여야만 살 수 있는 인간의 모순을 경험하며 그를 토대로 삶에 무한한 감사를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웃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철학자라 하더라도 고개는 크게 끄덕여지지 않는다. 한 번쯤이야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우리의 이성과 지성은 그런 작업에 특화되어 있으므로. 하지만 그 현상에서 보편성을 끄집어 낸 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자신의 부엌에 식칼을 걸어두고 그를 매일 바라보며 명상을 시간을 갖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부엌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차라리 거실에서 TV나 보라는 핀잔을 듣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저자도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래와 같은 문장을 남겼다.


"감정에 휩쓸려 하나의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의 장점이자 약점이라면, 그 특성에 의지하여 현재의 애착과 목적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를 살아가게 할 것이다."(330쪽)


이 책이 쓸데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배우려 하는 만큼 얻는 법이다. 지은이의 관점은 일상과 대중의 개념을 완전히 벗어나 저 이상향을 향하고 있으니, 바라보는 방향이 그와 같다면 평범함은 결코 취할 수 없는 '진심의 공간'을 얻을 수도 있다. 우리는 땅을 딛고 살지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땅의 물질만능주의적 관념과 인간사의 냉철함이, 육체의 고통과 정신의 고독이, 생의 유한성과 찰나의 간격이 허무로 당신의 내면을 채우려 할 때 어쩌면 이 책이, 저자의 말이 우리의 무너져가는 마음 아래에 지지대를 심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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