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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B.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폭풍은 오게 마련이다.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8. 11. 22.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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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B. 피터슨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유튜브 영상과 인터뷰, 특히 영국의 채널4 뉴스에서 남녀의 문제를 놓고 캐시 뉴먼과 논쟁을 벌였던 영상이 널리 퍼지면서 국내외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게 되었다. 물론 그 지지자는 대개 남성들, 특히 안티 페미니스트들이다. 그런데 피터슨은 반여성주의자도 아니고 남성중심주의자도 아니다. 그는 그저 지극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관점에서 책임과 의미의 관계에 접근했을 뿐이다. 그는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환경 탓부터 하고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날선 비판을 하고 있는데, 이런 방식의 비판이 남성들에게, 특히 남성 유튜브 구독자들에게 대단한 환영을 받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것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쟁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지식인인 움베르토 에코 또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날 선 블랙유머를 선보인 바 있지만 피터슨처럼 강경한 논조는 아니었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여러모로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요즘처럼 개인보다 환경 탓을 먼저 하고 보는 사회적 흐름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은 내가 며칠 전에 서평을 남겼던, 두 명의 여성 저자가 공동 집필한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과 여러 방면에서 정반대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여성 작가들은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저 첫째 딸로 태어났기 때문이지'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던 환경(출생 순서)을 논하며 독자를 위로한다. 그와 반대로, 남성 심리학자인 피터슨은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환경 탓만 하지 말고 스스로의 잘못은 없었는지를 돌아보라고, 하루하루 작은 실천을 하기보다는 어려움을 회피하려고만 하지는 않았는지를 살펴보라고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그가 환경의 영향을 무시하거나 무조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식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는 폭력적 성향의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상당히 예민한 편이며 과도한 자기 억압의 성향을 지니게 된다는 걸 인정한다. 그가 말하는 노력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채 하루에 10시간씩 하는 공부가 아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면ㅡ그 가해자가 왜 하필 자신의 옆에 있는지만을 탓하지 말고ㅡ더 이상 당신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당신의 어려움과 불쾌함을 명확히 표현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어떤 독자는 왜 피해자가 그런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의아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가해자가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노력과 반성은 가해자의 몫이 아닌가? 하지만 피터슨의 생각은 다르다. 그가 생각하기에 세상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자연은 폭력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본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세상이, 세상 사람들이 언제나 자기에게 친절과 선을 베풀거라고 기대하지 말고, 악의적 상황에 대비해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이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도와주려다 사기를 당했다고 해보자. 그건 순전히 사기꾼의 잘못인가? 어쩌면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당신 자신도 돌아보기를 권한다. 혹시 당신은 순진무구한 사람이 아니었는가?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는 허영과 나르시시즘에 빠져 그것이 순수한 도움 요청인지 아니면 당신을 이용하려는 수작인지를 제대로 파악해보지 않은 것은 아닌가? 


사기처럼 극단적인 상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금연을 선언했다고 해보자. 그런데 친구가 한 대만 피고 시작하라고 권한다. 만일 당신이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담배를 다시 피웠다면 나중에 그 친구 탓만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당신은 금연을 하려는 당신의 의지를 제대로 표현해야 했고, 그래도 친구가 담배를 권한다면 그 친구를 멀리했어야 했다. 친구라는 이가 금연을 하려는 당신의 의지와 당신 자체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였는데도 당신은 거부하지 않은 것이다. 피터슨에 따르면 "이런 사람들은 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둔다."(119쪽) 자신이 희생적이며 남을 돕는 선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남을 돕는 사람은 착한 게 아니라 그저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들은 "(...) 자신을 선한 사람으로 꾸민다. 실상은 선하지도 않고, 실질적인 문제를 회피하는 것뿐이다."(129쪽)


피터슨은 극단적으로 가해자만을, 다른 사람을, 사회에 모든 죄를 물으려는 경향을 우려한다. 그는 그런 식으로 해선 어떤 문제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연민과 동정을 최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말에 무조건 공감해주는 것을 미덕이라 여기는 경향이다. 하지만 그런 식의 동정은 오히려 피해자를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린다고 그는 말한다. "끔찍한 일을 당한 피해자라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러 이유로 사건이 터졌는데 피해자에게는 어떠한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거에 벌어진 사건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그 피해자가 주체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126쪽)


그가 남성들, 특히 20대 남성들에게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는 이유는 그가 동일한 방식으로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만 놓고 말하지 말라, 결과의 평등을 요구하지 말라, 자신이 지닌 불만을 모두 남성의 탓으로 여기지 말라고 그는 주문한다. 그런 방식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하며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 페미니스트들이 남성과 여성의 본성, 자연적 천성을 근본적으로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일 서로 다른 성이 지니고 있는 특유한 천성을 무시한 채 결과만을 억지로 맞추려 한다면 그건 크나큰 폭력이고, 결과적으로 사회에 커다란 위해를 일으킬 것이라고 그는 일관되게 주장한다. 


"당신이 지금 고통받고 있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고, 삶은 그 자체로 비극적이다. 하지만 그 고통이 더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그래서 그 때문에 비뚤어지고 있다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232쪽)


자연은 그것이 지닌 본성이 있다. 그 본성은 결코 따뜻하지만은 않다. 우리가 나쁘다고 여기는 본성을 항상 억누를 수만은 없다. 억누르기만 하면 마음에 병이 생긴다. 우리는 성자가 아니다. 결국 나 자신도, 옆의 친구도, 여성도, 당신의 아내와 남편도 선하지만은 않다. 그저 착하다고만 믿었던 당신의 개도 누군가를 물 때가 있다. 폭풍은 오게 마련이다. 그에 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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