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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 <체실 비치에서> (2), 결혼 후에 느끼는 새로움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8. 10. 16.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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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에 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을 읽고 난 감상을 적어두었던 일도 기억이 났다. 그런데 책의 내용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 책을 다시 집어든 건 내가 잊어버린 무엇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무엇을? 어쩌면 잊어버린 책의 줄거리를, 그저 단순히.



2.

책을 다시 한 번 다 읽고 난 후, 내가 전에 이 책을 읽은 게 언제였는지 확인해 보았다. 때는 2014년. 내가 결혼하기 전이었다. 경험이라는 것은, 실전이라는 것은 독서와 같은 간접경험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모든 게 여기, 이 소설에 들어있었다. 단순한, 별것도 아닌 사소한 사건이 어떻게 부부 사이의 갈등과 이혼으로 이어지게 되는지. 그 파국은 소설의 전반을 차지하고 있는 주인공 부부의 사랑스러운 연애 이야기 탓에 더욱 놀랍고도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실제로도 우리의 사랑은 대개 길고 달콤하다. 하지만 서로를 경멸하게끔 만드는 파국의 파도는 순식간에 우리를 덮친다. 그 분노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길고 진지했던 서로의 감정, 사랑한다고 되뇌었던 그 감정을 깡그리 잊고 만다. 그래서 이전의 감정을 모두 가짜로 규정한 뒤 순식간에 결별의 수순을 밟아버린다. 그때는 전부인 것처럼 보였던 단점이 실은 사소한 것이었음을, 그때 서로에게 필요했던 것은 상처받았다고 주장하는 자기기만이 아니라 잠깐의 기다림과 용서였다는 사실을 다툴 당시엔 결코 알지 못하는 것이다. 십수 년이 흐르고 나서, 그때 잠깐 참았으면 볼 수 있었을 아름다운 미래와 둘 사이에 생겼을지도 모를 영민한 아이를 그려본들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다.



3.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결혼 전에 읽었을 때도 충분히 훌륭한 소설이었지만 결혼 후에는 완전히 다르게 읽혔다. 내가 되찾은 것은 단순한 줄거리가 아니었다. 그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다독거림이라는 그의 말이었다. 사랑과 인내,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다독거림. 


어쩌면 이 소설의 기억이, 그 문장이 내게 준 감동이 희미하게나마 내 어딘가에 남아있었던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난 그렇게 아내를 뒤에서 불러댔던 것이다. 아내가 뒤돌아 볼 거라 기대하며, 아내가 저 멀리, 내가 붙잡을 수 없는 먼 곳으로, 희미한 하나의 점으로 변해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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