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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충렬사(2), 팔사품의 훼손과 진위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8. 8. 17.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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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충렬사 왼편에는 충렬사에 속해 있는 유물전시관이 하나 있다. 이곳의 가장 유명한 전시품은 명나라 황제 신종이 충무공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 '팔사품'이다. 충무공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충무공이 직접 사용한 적이 없는 물건이라 그런지 1966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보물로 지정이 됐음에도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순신 성역화 사업이 시작된 이후에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팔사품은 습도계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던 이곳 통영 충렬사의 전시실에 방치되었고, 결국 심각한 손상을 입은 뒤에야 보관 시설을 갖춘 수장고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때 진품 일부(7점)만 통영시립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졌는데 이것이 2002년도의 일이다. 문제는 그 후로도 통영 충렬사 전시실에 항온, 항습 시설을 마련하지 않아 충렬사에 남아 있던 나머지 8점의 보물마저 서서히 훼손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언론에서 이 문제를 다룬 이후 충렬사 전시실에 남아 있던 나머지 보물들도 병풍 등과 함께 시립박물관의 수장고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들을 모두 수장고로 옮기던 2014년도 당시, 팔사품은 이미 심하게 손상되어 그중 하나인 남소령기는 일부가 삭아버렸고 역시 팔사품 중 하나인 귀도는 목 부위가 손상되어 검정 테이프에 둘둘 말려진 상태였다.


이런 연유로 현재 충렬사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팔사품과 병풍들은 모두 복제본이지만 충렬사 유물전시관에는 그런 설명이 되어 있지 않았다. 팔사품을 전시하고 있는 다른 박물관의 경우 그들이 복제품임을 명확히 표기하고 있었으나 정작 소유자인 충렬사는 그를 표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수의 방문객들이 이 복제품들을 진품으로 여기고 있었다. 큰돈을 들여 만든 복제품들 역시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해 쇠붙이에는 이미 상당한 녹이 슬어 있었다. 그래도 전시관 안은 에어컨으로 시원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잠시 더위를 식히다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2.

팔사품은 보관 문제 외에도 제작 주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모른다는 문제가 있다. 기존에는 명나라 황제 신종이 충무공에게 보낸 것이라 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 본 결과, 여러 문제가 있어 명나라 황제가 보낸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우선 한국과 중국의 양국 실록에 명의 황제인 신종이 충무공에게 팔사품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없었다. 게다가 팔사품 중 하나인 도독인의 형태가 명조의 관인과 달랐고, 팔사품 중 후대에 만들거나 덧댄 것도 있는 등 여러모로 명의 황제가 보낸 것이라 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각주:1] 이런 발표가 나온지 4년이 다 되어가지만 팔사품을 전시 중인 어느 전시관에서도 이에 대해 서술하고 있지 않았다. 



3.

오래 전에 촬영된 진품 팔사품 중 귀도를 보면 용의 입과 귀신의 턱이 서로 떨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복제품을 보면 용의 입과 귀신의 입이 서로 닿아 있다. 복제품에는 용과 귀신(귀모) 사이에 아이 형상의 목조물(귀자)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복제품을 만들 때 현존하는 진품이 아니라 충무공전서에 나와 있는 귀자 그림을 원본으로 하여 만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복제품을 만들 때 원본과 흡사하게 만드려 노력하는 건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귀자의 얼굴과 표정을 만들 땐 제작자도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했을 것이다. 충무공전서엔 귀자의 옆면만에 그려져 있을 뿐, 위에서 바라본 귀자의 모습은 그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 삼도수군 통제사였던 신관호는 팔사품을 배경으로 한 병풍을 하나 남겼는데 이 병풍에의 그림에도 귀도는 옆면만이 묘사되어 있다.


팔사품 중 귀도. 보물 제440호. 진품. 충무공전서에 그려져 있는 귀도와는 다르게 귀자 부분이 없다. 또한 귀신의 목 부분에 제대로 된 보존처리를 하는 대신 검은 테이프를 감아 두었다. 촬영연대 미상. 사진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팔사품 중 귀도. 복제품. 용의 입과 귀신의 턱 사이에 진품에는 없는 귀자가 들어갔다. 통영 충렬사, 2018. 8.14.


팔사품 중 남소령기. 보물 제440호. 진품. 크게 훼손된 상태이다. 사진출처: 부산일보 김민진 기자, "통영시 지역문화유산 관리 손 놓았나?"(2016.10.19)


팔사품 중 참도. 보물 제440호. 진품. 손잡이 가죽 등이 상당히 소실된 상태이다. 촬영연대 미상. 사진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팔사품 중 참도. 복제품. 칼날 부위. 녹이 상당히 올라왔다. 칼을 알루미늄, 적어도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었다면 어지간해서는 녹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옛스러움을 위해 일부러 녹이 생기게 한 건 아닌 듯하다. 통영 충렬사, 2018. 8.14.


팔사품 중 참도. 복제품. 손잡이 부위. 기록에 따르면 참도의 손잡이를 상어 가죽으로 감싼 것으로 되어 있다. 현대에는 손잡이를 감을 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오리 가죽을 많이 사용한다. 해당 복제품은 인조어피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통영 충렬사, 2018. 8.14.


  1.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사 참조. 1. "이순신 팔사품, 명나라 황제가 하사한 것 아니다"(중앙일보, 2014.11. 7) 2. "‘팔사품, 명나라 황실품으로 보기어렵다’ 장경희 교수 팔사품 연구논문서 주장"(통영인터넷뉴스, 2014.11.1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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