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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도킨스의 변명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8. 8. 8. 00:22

본문

1.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이라는 단어가 야기한 엄청난 비난에 골이 나 있었다. <이기적 유전자> 전면개정판은 시작부터 제목에 관한 하소연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제목의 위력을 과소평가했거나 아니면 그것이 야기할 문제를 감수하고자 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도 논란이 그렇게 커질지는 예상치 못했던 듯하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감수성은 여전히 확고하다. 우리 내부의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니. 그럼 결국 우리도 이기적이고, 그런 우리의 이기심이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는 뜻인가? 사람들의 생각은 대개 이와 같이 이어진다. 리처드 도킨스는 '30주년 기념판 서문'에서 이 책이 이타성에 더욱 주목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이기심'만을 강조하고 있다며 아쉬워한다. 그는 "이 책 제목에서 강조해야 할 핵심 단어는 ('이기적'이 아니라) '유전자'"(8쪽)라고 말한다. 그는 수식어의 위력을 간과했던 것 같다. 인공지능 책을 집필한 한 학자가 책 제목으로 '인공지능의 미래'나 '인공지능의 특성'을 선정했다면 책의 판매부수는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내용의 책에 '인공지능의 저주'라던지 '수상한 인공지능' 혹은 '살인기계, 인공지능'이라는 제목을 달아 놓는다면 주목도와 판매부수는 확 올라갈 수밖에 없다. 제목을 그렇게 달아놓고는 "실은 나는 인공지능의 장미빛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푸념한다면 변명처럼 들리기 쉽다.


물론 그는 독자들이 책은 읽어보지도 않고 제목만으로 판단하려 한다는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독자 역시 제목만으로 그 책이 어떤 내용일 거라 짐작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만일 저자와 출판사가 제목을 내용과 상반되게, 혹은 감수성이 가득한 단어를 사용하여 지었다면 제목만 보고 내용을 잘못 상상한 책임을 독자에게 물을 수는 없다. 저자는 독자의 '상식적인' 판단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우연히 외모가 무척 더러운 한 사람을 마주쳤을 때, 그 사람이 실은 매우 청결한 사람이지만 불운하게도 딱 그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씻지 못한 거라 가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미리 판단하지 말자. 어쩌면 깨끗한 사람인데 강도를 당해서 저꼴인 걸지도 모르잖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그를 우러러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식적인 판단마저 거부하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제안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매우 피곤한 일임에 분명하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통의 생각을 '상식'이라 정의한다면, 대중들이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까지 모두 예견해서 행동하길 바라는 것보다는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고 있는 소수가 다수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는 편이 여러모로 이롭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인간을 비유할 때 사용한 '로봇'이라는 단어가 극단적 표현이라는 비판을 받자 그를 받아들이기보다는 대중에게 '상식 밖의 상황'을 가르치려 했다. 즉 그는 보통 사람들에게 '로봇'이란 단어가 어떤 의미로 인식되어 있는지를 고려하기보다는, 로봇이 "학습하고 생각하며 창의력 있는 존재"(433쪽)라는 매우 예외적인ㅡ아직까지 실현한 바가 없으며 앞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은ㅡ설정을 제시하여 자신의 비유가 과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성공적이지 않아 보인다.



2.

도킨스가 자신의 실수를 명백히 밝힌 부분도 있다. 도킨스는 제1장에서 "우리가 이기적으로 태어났다"라고 썼던 것을 "틀린 문장"이라고 인정하며, 그런 취지의 표현들을 "마음속에서 지워 버리기 바란다"(10쪽)고 썼다. 그는 개체, 즉 인간이 이기적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라는 '자기 복제자'가 이기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했다. 여전히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우리의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면 결국 우리, 즉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뜻 아닌가 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도킨스는 그 둘(개체와 유전자)을 구별하지 못하면 결국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할 거라는 주장을 굽히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의 비유법이 '이기적'인 단어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초판 서두부터 그는 "우리는 생존 기계"이며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들을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 운반자들"(28쪽)이라고 밝힌다. 기계, 맹목적, 프로그램된, 로봇, 운반자...... 본문을 시작하자마자 이런 단어들로 '우리' 인간을 묘사하면서도 그의 저서를 읽는 대중들이 그가 아직 밝히지 않은 비밀을 넓은 마음으로 통찰해내길 바라는 건 무리다. 우리는 자신의 주장을 제일 앞에 두는 두괄식 문장에 매우 익숙하다. 따라서 "우리는 생존 기계다"라는 문장이 문단 첫머리에 있다면, 그 뒤에 그 문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게다가 그는 과학자가 아닌가? 유머를 즐겨 사용하는 수필가라면 마지막에 반전처럼 '사실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과학자가 쓴 교양서에서 그런 기대를 하는 독자는 상당히 드물 것이다. 하지만 도킨스는 그것을 간과하였다. 따라서 논란의 큰 책임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ㅡ나는 그가 적어도 처음엔 이런 여러 논란들을 즐겼을 거라 생각하지만ㅡ그의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 판단한 독자보다는 그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심지어 인류가 근본적으로 모두 시카고 갱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받았다"(429쪽)며 아쉬워 했지만, 본문을 쓴지 얼마 안 되어 "성공한 시카고 갱단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유전자는 치열한 세상에서 때로는 수백만 년 동안이나 생존해 왔다"(40쪽)라고 비유하는 건 그런 오해를 사기에 좋을 뿐이다. 게다가 "어떤 남자가 시카고 갱단에서 오랫동안 별 탈 없이 살아왔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40쪽)라고 서두를 뗀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아마 다음 문장을 읽을 때 쯤이면 도킨스의 모든 하소연이 그저 변명으로 들리고 말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 이기주의는 보통 개체 행동에서도 이기성이 나타나는 원인이 된다."(40쪽)



3.

비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이 책에서 주장하려는 바는 성악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도킨스의 주장이 성악설과는 다르게 크게 이슈가 된 이유는 무얼까? 성악설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설'인 반면, 도킨스가 쓴 것은 과학에 기반한 것이어서 우리가 마주한, 빠져나갈 수 없는 충격적인 '진실'로 느껴졌던 것 같다. 과학은 항상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우리의 보편적인 믿음은 그 믿음 때문에 종교의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과학은 반증을 무기로 삼고 있다고 하지만 대중들은 감히 과학의 이론에 반증을 들이댈 엄두를 내지 못하니, 이는 곧 그곳에 적힌 내용은 모두 진리라 가르치는 종교와 다를 바 없어지게 된 셈이다.


어쨌거나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아직까지는 '설'에 불과하며 이 설조차 언제 반증될지 모를 운명에 처해 있다. 가설 하나가 이런 놀라운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그가 선택한 '이기적'이란 단어임은 분명하다. 자신을 복제하고자 하는 욕구만을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이기심처럼, 어쩌면 자신의 저작을 무한정 복제(인쇄)하고자 하는 그의 열망이 매력적이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이기적인 제목으로 그를 이끈 것인지도 모른다.[각주:1] 결과적으로 그의 책은 스테디셀러가 되어 초판이 나온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존'하는 데 성공하였다.



4. 

이외에도 의아스러운 점들은 있다. 대표적으로 이기적인 개체가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대전제이다. 그는 이기적인 개체가 마지막까지 생존하며 이기적인 유전자가 이타적인 유전자를 누르고 자신의 유전자를 남긴다는 대전제를 단 채 이야기를 한다. 유전자 수준까지는 모른다 하여도(그런데 그는 유전자 사이의 문제를 개체나 집단의 문제로 비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개체 수준에서도 이기적인 것이 최종 승리할 거라고 가정하는 데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도킨스는 포식자가 나타나면 특이한 소리를 내어 동료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특정 조류의 행위를 이타적인 행위로 간주한다.[각주:2] 소리를 낸 개체는 포식자의 눈길을 끌어 죽을 수도 있는데, 그 조류 무리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단 구성 초기에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개체와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개체가 각각 절반씩 섞여 있었다 하더라도 이타적인 개체의 계속된 희생으로 이기적인 개체만 남게 될 거라고 추정한다. 결국 이기적인 개체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다른 이타주의자를 이용하려는 이런 이기적인 반역자가 한 개체라도 있으면 (...) 그 개체는 아마도 다른 개체보다 더 잘 살아남고 자손도 더 많이 낳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손은 그의 이기적인 특성을 이어받을 것이다. 여러 세대의 자연 선택을 거치고 나면, 이 '이타적 집단'에는 이기적인 개체가 만연해 이기적 집단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48쪽)


이기적인 행위를 하는 개체가 이타적인 개체에 비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은 일부만 맞는 가정이다. 물론 그 '당시'엔, 포식자의 위협을 받을 당시엔 이기적인 개체가 생존에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위험을 무릅쓰고 포식자의 출현을 알린 어떤 새가 살아남는 데 성공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충분한 인지능력과 기억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 무리는 자신의 위험을 무릅쓴 개체를 기억할 것이고, 그 개체는 집단 내에서 우월적 위치를 얻게 되어 짝짓기 시기가 되면 비겁하게 뒤로 숨은 새보다 더 높은 확률로 번식에 성공할지도 모른다. 그 무리가 한 번에 낳는 새끼의 수가 적은 종이라면 그렇게 될 확률은 더 높아진다. 뒤로 숨은 채 이기적으로 이득만 본 새는 겁쟁이로 낙인 찍혀 수컷끼리의 싸움에서도 낙오할 가능성이 크다. 이 예시는 새라는 종이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도킨스의 가정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도킨스는 제5장에서 싸움에서 승리하려는 무리들의 생존 전략을 소개하였다. 더 나아가 제10장에서는 집단생활을 하는 이기적 개체들의 문제를 보완하여 설명하였다. 여기서 그는 이기적인 '사기꾼'과 이타적인 '봉'이외에, 사기꾼에게는 이타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원한자'라는 집단을 설정함으로써 이기적인 개체가 집단에서 소수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설명이 '이기적 개체가 결국 승리한다'는 대전제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5.

도킨스에게 억울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를 환원주의자로 모는 것은 상당한 실례이며, 그의 비유법을 전혀 이해하지 않으려는 폐쇄성에도 문제가 있다. 하나의 동전을 수없이 던지면 5대 5의 확률로 앞면과 뒷면이 나오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데, 이를 두고 "동전은 중립적인 경향이 있다"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이런 비유에 타박을 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재치 있는 표현이라며 엄지를 세울지도 모른다. 그런 걸 감안한다면 유독 '이기적 유전자'라는 표현에 지극히 거부감을 드러내는 일은 도가 지나쳐 보인다. "유전자는 의지가 있는 물질이 아니므로 '이기적'이라는 성질을 가질 수가 없다"라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중립적인 동전'에게도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일까? 중립적인 동전이라는 표현이 허용된다면 이기적 유전자는 왜 허용될 수 없단 말인가? 도킨스의 불만은 그것이다. 자신의 표현을 오해할 수는 있다,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에 대한 비난이 이 정도로 경직되어 있는 건 너무한 처사이다. 분명히 그런 면이 있기는 하다. 대중이 아니라 이른바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토로라면 말이다. 여러 사정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과학자들은 그가 처했던 상황에 심심한 위로를 전할 필요가 있다.



  1. 현대의 책은 하나의 판본에서 나오는 복사본이므로 복제자라 명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도킨스를 포함하여)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의 주장대로 인쇄물은 복사본에 불과하므로 복사본 하나에 흠집이 난다고 하더라도 그 흠집이 다른 인쇄물에 전해지지는(유전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뒷골목 어두운 어딘가에서 그 흠집이 난 판본을 몰래 복사하여 판매하는 일당이 존재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해적판 번역본은 또 어떠한가? 하나의 원본에서 변이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처럼 모든 것이 통제와 감시 속에서 조절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현대의 인쇄물이 복사본에 불과하다는 정의는 상황에 따라 수정될 필요가 있다. [본문으로]
  2. 소리를 내는 행위가 실은 자신의 이기적 이익을 위한 행동이라는 이론도 있다. 동료들에게 주변에 포식자가 있음을 재빨리 알려야 자신도 안전해진다는 식의 설명이다.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 '이기적 행동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주장에 어울리기는 하다. 하지만 도킨스의 우선적인 가정은 그 행동이 이타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기적 유전자> 제10장 참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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