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움베르토 에코 기획 <중세> 4권, 에코 신화의 끝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8. 7. 22. 09:41

본문

1.

아내가 <중세> 4권이 출간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문자로 연락이 왔단다. 나한테는 왜 연락이 안 오지? 하고 물으니 문자 수신 동의를 하란다. 수신동의를 하지 않았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대한 스팸의 홍수 탓 교보문고 또한 내 차단 목록에 들어가버렸는지도 모른다. 



2.

글의 저자가 아니라 기획자의 이름이 전면에 들어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총 4권에 각 권마다 1,000페이지에 달하는 놀라운 분량을 자랑하는 <중세> 시리즈에는 움베르토 에코가 쓴 글의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는 계속 움베르토 에코를 앞에 내세웠다. <중세> 4권도 마찬가지였다. 움베르토 에코가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알아주는 인물이었던가? 움베르토 에코 전집이 나와 있는 것으로 봐선 마니아층이 있는 게 분명했다. 다른 나라는 물론 이탈리아에도 없는 이 전집의 이름은 대단하게도 '에코 마니아 컬렉션'이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책이 일부의 교양서를 제외하면 쉽사리 읽기 어렵다는 점에서 유행의 특성이 엿보였다. 저자 소개만 봐도 그 점을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다. 에코가 몇 개 국어를 구사하고 무슨무슨 훈장을 받았고...... 그는 천재이자 완성된 지성인으로 기술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 목말라 있다. 그래서 그는 신비에 싸인 르네상스적 지성인이자 성스러운 인물로 우리의 주변부에 머문다. 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이, 그의 책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 그런 분위기를 부추긴다. 그래서ㅡ마치 토리노의 수의처럼ㅡ그의 손길을 거친 책들은 비록 그 접촉이 일부라 할지라도 크나큰 대접을 받게 되었다. 지금은 절판된 어떤 요리 책은 단지 그가 서문을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전히 높은 중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이쯤되면 일종의 신화가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에서도 에코의 신화는 지속된다. 저자들을 대신하여 표지에 찍히는 그의 이름은 출판사 사장을 기쁘게 해주고 소비자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루이비통이 된 셈이다. 지식인들은 대중의 저속한 취향을 비웃는 동시에 자신의 지적 허영을 그의 이름으로 예쁘게 포장시켜 놓는다.


그런데 이 신화ㅡ오래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점에서 유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현상이 아니었다면 움베르토 에코의 여러 글들을 한국어판으로 만나보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중세> 시리즈도 움베르토 에코의 기획이라는 수사가 달리지 않았다면 한국어로 출판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 유행에 감사의 인사를 해야하는 게 일견 당연해 보인다. 유행은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던 말 떼가 우연히 탄생시킨 요구르트처럼 때론 긍정적인 효과를 낳기도 하였으므로. 하지만 그 말 떼는 유럽에 페스트균도 함께 실어 보낸 적이 있으니 섣부른 감사 인사는 아직 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3.

<중세> 4권의 출간은 <중세> 1권의 출간처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같은 시리즈가 이미 3권 연달아 출시되어서 내 정신이 '에코'의 울림에 면역이 된 것도 있을 테지만, 가장 큰 이유는 <중세> 4권이 다루고 있는 시대가 1,400년에서 1,500년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중세는 잘 모르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가령 영화 <잔 다르크>를 본 관람객이나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2세> 혹은 <헨리 4세>를 연극으로 본 독자, 혹은 동명의 영국 드라마를 본 시청자 들은 <중세> 4권에 기술되어 있는 백년전쟁이나 장미전쟁의 내용이 간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중세 영국사의 이해> 같은 책을 섭렵한 독자는 "영국에 대해서라면 내가 이 책보다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지"라고 우쭐댈 수 있다. 비잔틴 제국의 멸망이라는 드라마틱한 사건이 발생한 1453년은 이미 영화와 소설의 배경으로 여러 번 등장하였으니 <중세> 4권에서 설명하는 오스만 제국과 비잔틴 제국의 결전은 밋밋하게 읽힐 가능성이 있다. <미의 역사>나 <서양 미술사>를 읽은 독자들, 혹은 서양미술사 전공자들은 <중세> 4권이 다루고 있는 미술사면을 탁 덮으며 이렇게 읊조려 볼 수 있다. "이 책은 말이야...... 개론서에 불과해." 시공사에서 번역한 이 <중세> 시리즈는 서양의 중세사이기에 동양의 중세는 거의 언급되는 법이 없고, 서양의 문화에 익숙한 우리들은 동양 중세사는 몰라도 서양 중세사에는 어느 정도 익숙하기에 이 두꺼운 책 앞에서도 약간의 자신감을 내세울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의 가치가 낮아지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현대 신화의 중심, '기획자' 움베르토 에코가 있다. 게다가 바로 그가 <중세> 4권에서 니콜라우스 쿠사누스의 말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내리지 않았는가. "중심은 도처에 있고 그리고 그 어디에도 주변부는 없다."(284쪽) 



4.

책을 <중세> 4권, 딱 한 권만 주문했다. 그런데 나머지 책들을 이미 구입했다는 걸 눈치챘는지 인터넷 서점에서 <중세> 시리즈를 모두 꽂을 수 있는 케이스를 함께 보내왔다. 덕분에 각 권마다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이라는 이름이 딱 박혀 있는 거대한 책 4권을 케이스에 꽂아둔 채 장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서 주의해야 하는 일이 하나 더 늘었으니 "와, 이 많은 책들을 다 읽으셨어요?"라는 반응에 대한 대비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그런 반응에 대한 대비법을 여럿 기술해 두었으나 지적 허영을 인정하는 법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제 '움베르토 에코의 컬렉션'이라는 문구를 넣은 편집장은 그 허영을 인정하라고 외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읽기'의 대상이 아니라 '수집'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움베르토 에코는 이런 현상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ㅡ그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ㅡ그의 책을 서가 정중앙에, 방문객에게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꽂아두는 실수는 범하지 않도록 하자. 설령 그의 책이 순수하게 컬렉션용이라 할지라도. 그의 이름은 어디에서나 빛나기 때문이다. 중심은 도처에 있고 주변부는 어디에도 없으니, 그건 당신의 서재를 감탄과 의혹이 섞인 눈길로 바라볼 방문객과 출판사 사장과 중고서적 판매상 들에게도 똑같이 적용 가능하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