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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인가 쓰유인가, 원조라는 문제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8. 7. 4.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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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국수장국을 만들어 보았다. 먼저 장국을 만들었다. 장국은 장모님께서 링크해주신 백종원 레시피를 기본으로 해서 만들었는데, 디포리와 생강은 없어서 넣질 못했고 맛술은 아내를 생각해서 넣지 않았다. 대신 미림을 약간만 넣었다. 이렇게 만든 장국과 얼음 위에 올린 메밀면, 그리고 무와 오이로 만든 고명을 섞어 먹었다.


2.

백종원의 장국 레시피는 이름은 장국이지만 우리나라의 전통 장국 혹은 맑은 장국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일본의 쓰유[각주:1]나 다름없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장국 레시피와는 완전히 다를 뿐더러, 가다랑어포(가쓰오부시)에 간장, 설탕 등을 넣어서 만든다는 점에서 일본식 간장인 쓰유에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니 백종원의 장국 레시피가 아니라 쓰유 레시피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고, 이렇게 만든 쓰유에 메밀을 섞어 먹는 음식은 메밀 국수장국이 아니라 소바키리라고 불러야 더 어울린다. 우리는 일본에서 김치를 '기무치'로 부른다며 언짢아하지만 이런 부분에선 둔감하다. 역지사지란 이토록 어렵고 또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게 누구의 것인지, 원조와 후대의 발전된 계승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니 나 또한 쓰유나 소바라고 쓰기보다는 레시피 공개자인 백종원 선생을 따라 장국, 국수장국이라 쓰기로 한다(하지만 쓰유를 만드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3.

<본초강목>(1596)을 보면 내복[각주:2]이 '국수의 독성을 제어할 수 있으므로 밀과 보리를 복용할 때 함께 먹는다'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동의보감>(1613)에는 '무가 밀가루와 보리가루의 독성을 제어할 수 있으므로 내복이라 부르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일본에서 소바를 먹을 때 흔히 무를 섞어 먹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즉 <동의보감>의 영향이라는 설이 퍼져 있다. 일본에서 소바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건 에도시대 이후이므로 소바 역시 중국의 <본초강목>이나 우리나라의 <동의보감>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밀과 메밀은 엄연히 다르다. <본초강목>과 <동의보감>은 '밀'과 '보리'의 독성을 무와 연관지어 말했을 뿐 '교맥'[각주:3]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또한 면류가 발달한 일본에서 유독 소바에만 무를 갈아넣는 것만 봐도 소바에 무를 넣어 먹는 걸 <동의보감>의 영향으로 보기는 어렵다. 정말 메밀의 독성 때문에 무를 섞어 먹은 것이라면 우동에도 무를 넣어 먹어야 했다. 


4.

먼저 장국을 만들었다. 향미를 올리기 위해 양파 한 개와 대파 두 쪽을 불에 구운 뒤, 물 다섯 컵, 진간장 두 컵, 설탕 한 컵, 미림 약간, 마른 멸치 한 줌을 넣어 함께 끓였다. 백종원 레시피에는 디포리도 10마리 정도 넣고 또 생강도 1/3컵 가량 넣으라고 되어 있었는데 없어서 생략했다. 대신 멸치를 조금 더 많이 넣었다. 또 원 레시피에는 미림이 아니라 맛술을 반 컵 넣어라고 되어 있었지만 알코올 문제로 미림을 두 숟갈 정도만 넣었다. 육수가 끓기 시작하자 불을 낮추고 30분 가량 끓였다. 그 후 다시마를 적당량(A4 용지 절반 크기) 넣은 후 10분간 끓였다. 마지막으로 불을 끈 뒤 가다랑어포를 한 줌 넣고 식혔다.


5.

메밀은 잘 삶아서 찬물에 식힌 뒤 얼음을 깐 그릇 위에 올렸다. 냉메밀인 셈이다. 고명으로는 무와 오이를 갈아서 썼다.


향미를 위해 양파와 대파를 구웠다. 백종원 레시피에는 불에 직접 구우라고 되어 있지만 난 간접 방식으로 구웠다. 서울, 2018. 7. 3.


여러 재료를 혼합하여 끓였다. 역시 기본은 간장이다. 서울, 2018. 7. 3.


완성된 장국. 물 다섯 컵, 간장 두 컵 정도를 끓여 이 정도 분량이 나왔다. 서울, 2018. 7. 3.


저녁 식사 준비. 메밀 국수장국이다. 일본식으로 표현하자면 '쓰메타이 소바', 즉 냉메밀이다. 그릇에 얼음을 깔고 그 위에 메밀을 얹었다. 장국에도 얼음을 넣었다. 서울, 2018. 7. 3.


  1.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쓰유가 올바르나 '츠유' '쯔유' 등의 표기가 훨씬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일본어 'つ'의 표기법은 아직까지도 정착되지 않고 있다. [본문으로]
  2. '무'를 한문으로 '내복' 이라 한다. [본문으로]
  3. '메밀'을 한문으로 '교맥'이라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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