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이 손으로 녹색 진딧물을 잡아낸지 5일쯤 되었을 때 드디어 진딧물을 다 잡아냈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가량 경과를 지켜봤는데 더 이상 녹색 진딧물이 생기지 않았다. 이제 집안으로 들여놔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3일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아내가 내게 말했다. 가침박달나무에 검은 진딧물이 생겼다고 말이다. 진딧물의 엄청난 번식력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분명 며칠 전만 해도 벌레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는데 나가서 보니 검은색 진딧물이 나무를 온통 점령하여 가지가 검은색으로 보일 정도였다. 너무 많아서 손으로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대로 놔두면 나무가 죽어버릴 거 같아 벌레 퇴치제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오킬'이라는 이름의 벌레 퇴치제를 구입하기 위해 약국으로 갔다. 비오킬이 진딧물을 잡는데 효과가 있으며 화초에 사용해도 된다는 설명을 인터넷에서 본 터였다. 그런데 약국에 비치되어 있는 비오킬 설명서에는 진딧물 퇴치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고 심지어 식물에 사용해도 된다는 언급도 보이지 않았다. 약사에게 비오킬을 화초에 사용해도 되는지 물었다. 비오킬을 한참 살펴보던 약사는 뭔가 이상하다고 했다. 예전에는 약초에 써도 된다는 설명이 있었는데 지금 그 설명이 빠졌다는 것이었다. 약사는 이 제품을 화초에 사용할 목적으로 판매중이라 했다. 그런데 정작 설명서에는 화초에 사용하란 말이 없으니 난감한 듯했다.
선택은 내 몫이 되었다. 난 약사에게 비오킬을 받아들고 다시 설명서를 차근차근 읽었다. 그러길 10여분, 결국 아주 작은 글씨로 '화초'라고 써 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화초를 언급한 부분은 단 한 곳에 불과하여 자세히 읽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웠다. 약사의 말에 따르면 예전엔 화초에 사용하는 게 당연시될 정도로 설명서에 큼지막하게 써 있었다고 했다. 어쩌면 식물, 특히 식용 열매를 맺는 식물에 대한 유독성 여부가 아직 명확하게 판명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와 마스크를 쓴 채 비오킬 반 통을 뿌렸다. 다음 날 보니 검은 진딧물 상당수가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일부 가지에 아직도 진딧물이 남아 있어 한 달쯤 후에 다시 뿌려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마침 장마가 시작되었다. 나무를 아파트 공원에 내놓아 약 대신 장맛비를 맞도록 했다. 강한 바람과 비가 진딧물을 쓸어내주지 않을까. 오늘도 가침박달나무는 마치 그 자리가 원래의 자기 자리인 것처럼 그곳에 서 있다.
아파트 공원에 내놓은 가침박달나무. 서울, 2018.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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