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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느낌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8. 6. 10.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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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기념하여 찾아갔던 신사동의 한 가게에는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둔 두 점의 칼이 있었다. 칼은 크기가 서로 달라, 하나는 다른 하나에 비해 크기가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액자 옆에는 원래 같은 크기의 칼이었는데 셰프가 2년 동안 열심히 연마하며 사용한 탓에 크기가 반으로 줄었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그때는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기껏 생각한 것이라곤 그 많은 쇳가루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하는 정도였다. 김애란 소설가의 <칼자국>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칼 이야기가 많이 나왔지만 나는 칼 그 자체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실 독자가 칼 그 자체에 관심을 둬야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것들도 보인다. 예를 들어 신사동 가게의 액자에 걸려 있던 칼을 지금의 눈으로 다시 보면, 이 칼은 도쿄의 가파바시 주방거리에서 사온 것으로 녹에 어느 정도 강하고 날이 단단한 청강으로 만들었으며 종류는 회를 썰 때 쓰는 야나기바이고 날 길이만 300mm이니 셰프의 실력이 제법 쌓였을 때 구매했을 거라는 단서들이 보인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셰프로서의 긍지도. 


마찬가지로 김애란 소설가의 <칼자국>을 다시 읽으면 예전과는 다른 감각을 느끼게 된다. 소설 속 '나'의 어머니는 칼 하나를 25년 동안 썼으며 개고기 뒷다리를 자를 땐 일주일에 두세 번도 더 숫돌을 꺼냈다 했으니 연마에 관해선 베테랑 일식 셰프 못지 않은 실력일 것이고 칼 크기가 처음보다 많이 작아졌을 거라는 것, 또 그 칼이 '특수 스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했으나 '나'의 어머니가 수시로 연마를 해야했던 걸 보면 분명 말만 그럴싸했던 싸구려 칼이었을 거라는 것 같은. "좋은 칼 하나라든가 프라이팬 같은 것이 여자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같은 문장들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물론 나의 경우엔 여자를 남자로 바꿔 주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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