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방금 전까지 내 손에 들려 있던 책도 김애란 소설가의 책이었다. 제목은 <바깥은 여름>으로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사실 '어쩌다 보니'라는 말을 조금 더 들여다 보면 정말 '어쩌다' 김애란의 소설을 자주 읽게 된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난 의식적으로 그 작가의 책을 골랐고 그 이유는 분명히 '읽기가 편해서'였다. 김애란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드라마나 영화가 떠오른다. 그녀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의 일관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가끔 다른 느낌을 주는 작품이 있기는 했다. 예를 들어ㅡ조금 미심쩍기는 하지만ㅡ2008년도에 발표한 <칼자국>이라던지, 확실하게 분위기를 바꿔서 쓴 2013년도의 <침묵의 미래>라던지. 하지만 그런 작품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녀의 책을 읽다가 문득 아, 김애란이 대중문학을 추구하는 작가였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구별이 고루하게 취급되고 모든 소설이 대중문학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세상이지만 내 개인적 감성은 여전히 이른바 순수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파트리크 모디아노나 주제 사라마구의 글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은 김애란이나 정이현의 글을 읽을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들의 글을 모두 묶어 구분하지 말자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난 아직도 앙리 보스코의 글을 감탄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문학을 문예라고도 칭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글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전히 난 김애란을 소설을 읽고 있다. 난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을 꺼내는 듯한 기분으로 김애란의 소설책을 펴든다. 수많은 상을 수상하며 대중적으로도 인정을 받은 그녀의 책을. 이것은 상업성을 담보로 할 수 밖에 없는 소설계의 현실이거나, 한국 소설계만의 한계이거나, 시대를 향유하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거나, 혹은 경계들의 접점을 찾아낸 뒤 그 위에 적절히 서는 데 성공한 작가적 기교의 반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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