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런데 성의 문제를 편파적으로 서술했다는 이유로 이 책을 매도한다면 그 또한 옳지 못한 일이다. 허수경 시인이 이 수필집에서 여성성을 강조한 '모국어'라는 단어는 문제 삼지 않고 남성성이 떠오르는 고딕 성당의 치솟은 양식만을 문제 삼는다면 분명 공평하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모든 일이 동시에 공평하게 이루어질 수는 없다. 대화에도 들어주기가 필요하듯 시대에도 양보가 필요하다. 지금은 여성들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 시대이다. 설령 그 주장에 미진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마음의 상처는 논리적인 말로는 치유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남성들이 보기에 여성들의 주장이 일방통행로 위를 걷는 듯해도 기다려야 한다.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책이라도 읽으며 음악이라도 들으며 충분히 기다리자. 길에 소음이 사라지고 공간에 여유가 생길 때까지. 여성들이 원하는 건 영원한 일방통행도 아니고 책 제목처럼 '너 없이' 걷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스스로를 논리적이라 믿는 무리들이 실은 자신들이 만들어 둔 견고한 일방통행로 위를 먼저 걷고 있었다는 걸, 게다가 지금도 그 위에 서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일이다. 누구나 일방통행로 위를 걷는다. 그런데 남성들은 이미 충분히, 너무나 오래 그 위를 걸었다. 이제 잠시라도 서서 그들의 행진을 지켜보자. 우리 모두가 양방향통행로 위에서 악수하며 지나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2.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전 독일 수상 헬무트 슈미트는 2차대전 당시 유대인을 학살한 것은 '나치들'이 아니라 '독일인들'이었다고 말했다. 누구도 그때의 정치 상황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을 이제 아흔이 훨씬 넘은 전 수상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211쪽)
누구도 지금의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오늘날의 남성들은 여성들을 억압하는 것이 일부의 '어긋난' 남성들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걸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