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황현산 같은 유명 비평가들의 산문집을 몇 번 읽어본 적 있다. '자주'가 아니라 '몇 번'이 된 까닭은 내가 평소 산문집에서 기대하던 가벼움을 깨고 나오는 그들 특유의 냉철하고 엄정한 시각 때문이다. 무엇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정해 놓고 그 이상과 이하에 대해 냉철하게 평가하는 방식은 피끓는 젊은이들에게서 기대한 것이지 한국 문학의 거목이라 불리는 이들에게서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김현의 경우 내 이런 생각에서 빗겨갈 수 있다. 그는 '노인'이라 불릴 만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건드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을 것 같은, 어떤 흠집조차 내서는 안 될 것 같은 국내 문학계의 거목들을 향해 '생각보다 별로'라는 반응을 보이는 건 영리한 행동이 아니다. 시인이든 검찰이든 선생이든, '가장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집단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것'에 놀라는 것조차 이젠 진부하게 느껴지는 세상이니, 책 몇 권을 읽고 나서 진리를 회복했다거나 인생의 참뜻을 깨달았다거나 하는 독자들이, 혹은 삶의 지평 너머를 바라본다고 자랑스레 언급하곤 하는 문학가들이 자신과 시선을 공유하지 않는 자들에게 퍼부을 악담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실망이란 것도 내가 산문집에서 기대한 바를 얻지 못하여 일어난 것이니 딱히 언짢아할 일도 아니다.
비판이 주가 되는 산문이란 내게서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인데, 나는 그 결정적 괴리를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을 가리켜 깊이가 없다고 평한 김현의 산문집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때 난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포함한 다른 평론가들의 산문집을 때때로 읽는 것은 그래도 내가 얻어가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추종자들이 그들에게 휘둘러 놓은 성역을 걷어낸 뒤 그저 한 사람의 인간이 남긴 기록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면 금세 잊히는 잡지처럼 뿌예지고 도리깨질로 널뛰기하는 이삭처럼 움찔대는 그들의 글맛이, 집기를 망설이지만 결국은 손으로 움켜쥐고 마는 과자처럼 아삭하게 내 혀의 맛봉오리들을 점령하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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