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대지'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다. 통속적으로 '땅'이라고 표현되는, 건물이 자리잡곤 하는 그것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땅이라고 하면 곧장 투기가 연상되어 알아보는 것 자체가 좋지 않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것이 없으면 건물은 들어설 수가 없다. 건물이 들어서려면 싫든 좋든 '대지'를 알아보아야 하는데, 그 일이 꼭 땅값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지를 알아보면서 대지의 위치가 차지하는 공간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주변 자연 및 도시 건물들과의 조화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도시계획과 조경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건축에 대한 이해도 조금 더 높일 수 있었다. 작은 하천 옆에, 강 옆에, 바다 앞에, 산 속에, 논밭 근처에 집을 지을 때, 그 위치에 따라 공간의 활용이 지극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야 했지만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볼 때 생각할 거리, 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제주를 방문했을 때 그 감각은 건축에 대한 하나의 시각을 내게 제공해 주었다. 카페 '그곶'에서 만난 안도 다다오의 책도 마찬가지였다.
제주도의 카페 '그곶'은 조용한 분위기와 어울리게 제법 많은 양의 책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카페에서 우연히 보게 된 책 중의 하나가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였다. 제주도에는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축물이 꽤 세워져 있었는데 그 때문에 안도 다다오의 책이 구비되어 있는 듯했다. 살펴 보니 저자가 안도 다다오 본인이었다. 본인이 직접 쓴 자서전이라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카페에서 책의 일부를 읽고 나서 제목을 메모해 두었다.
지난 토요일엔 오랜만에 아내 그리고 아이와 함께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렀다. 아내는 무슨 책을 사고 싶냐고 물었고 난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말했다. 메모되어 있는 여러 책들 중 가장 먼저 읽고 싶은 책이었다. 아내는 유모차를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다시 만났을 땐 아내의 손에 그 책이 들려 있었다.
2.
주택 건축주들은 건축가를 설계 시부터 배제하거나, 포함시키더라도 건축가에게 큰 역할을 주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통상 여유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주택 건축주들은 건축가에게 괜한 돈을 들이고 싶어 하지 않을 뿐더러, 예비 건축주들 사이에는 건축가란 건물을 실용적으로 짓지 않고 자신의 예술성만을 부각시키는 데 혈안이 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건축가를 건축주의 돈을 이용해 자신의 이름이나 남기려는 속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런 생각들이 완전히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안도 다다오도 자신에게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건축주의 요망대로 그저 기능만을 충족시키려고 들면 따분한 집밖에 짓지 못한다. 예산 제약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그 밖의 사항에서는 안이하게 타협하려고 하지 않았다. 건축주와 다투더라도 상대가 진저리를 내며 체념할 때까지 내 고집을 밀고 나갔다."(84쪽)
심지어 안도 다다오는 "거기 사는 사람이 (자신이 설계한 건물에 맞춰) 생활 방식까지 바꿔야"(96쪽)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걸 받아 들일 수 있는 건축주가 몇이나 될까? 안도 다다오가 만든 첫 주택인 '스미요시 나가야'는 사람이 살기에 얼마나 비좁았는지, 건축계의 중진이었던 고무라노 도고 선생은 제58회 요시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을 심사를 위해 방문한 뒤 이런 말을 남겼다: "상은 (이렇게 비좁은 데도 불구하고) 여기 사시는 분들에게 줘야 할 것이다."(91쪽)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제주도의 본태 박물관. 외부 복도는 마치 파도치는 해안가처럼 그 경계가 모호했다. 2017. 4.25.
선택은 건축주의 몫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 책을 통해 건축가의 입장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안도 다다오의 이 책을 통해 건축가를 불필요한 존재, 혹은 자신의 예술미나 생각하는 괴짜로 간주하던 예비 건축주들도 건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시공팀과 건축가의 관계, 건축가가 생각하는 건축 재료에 대한 생각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그저 그런 건물을 싸고 빠르게 지은 뒤 소비자에게 팔아 넘기려는 단순 판매업자가 아니라면 그의 글은 분명 도움이 된다. 반대편의 관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술이라는 이름의 어설픈 유행은 금세 식상하게 비춰질 수도 있는 노릇이니 예술을 가장한 그럴 듯한 이미지에 순간 혹해서도 안 될 일이다. 서로 다른 입장의 건축주와 건축가, 시공업자, 그리고 관청 공무원 들의 치열한 대결이 그의 책에 그려지고 있으니, 미래에 우리가 어느 편에 속하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난 무엇보다 "현장 시공 팀에 대해서도 시공 결과가 나쁘면 멱살을 잡아서라도 재시공을 요구했다"(84쪽)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끝까지 책임지려는 마음가짐이 보였기 때문이다. 건축주는 설계는 물론 시공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인데, 이럴 때 건축가가 지원자가, 아니 지휘자가 되어 준다면 든든하기 그지없다. 물론 그가 건축주의 멱살을 잡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건축주가 건축가를 싫어한다면 당연히 그 반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원하는 작업을 제대로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축가에게 가장 높은 장애물은, 어떤 의미에서는 출자자인 건축주라는 존재이다."(260쪽), "건축주를 교육시켜야 한다."(265쪽) 건축주 입장에선 안도 다다오의 이러한 말이 썩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좋은 결과를 바란다면 상대방의 의견을 세심하게 살피는 것도 필요하다.
자신만의 멋진 주택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장래의 꿈이 건축가인 사람이 있다면, 그도 아니라면 한 인간의 독백을 관조하는 다른 한 인간으로서 이 사람을 지켜보도록 하자. 직접 재료를 가다듬는 장인이 될지, 전체를 그리는 건축가가 될지 고민했던 20세기 중반의 한 거장을 통해, 대다수의 독자가 경험해 보지 못했을 건축가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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