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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찜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9. 29.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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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어릴 적 명절에 외할머니댁에 가면 소반에 갈비찜이 올라오곤 했다. 그때 내게 갈비찜이란 식혜와 선두 다툼을 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중 하나였다. 외할머니께서 "갈비찜 가져올게" 하며 부엌으로 들어가시면 난 아무렇지 않은 듯 소반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실은 두 눈으로 외할머니의 뒷모습을 쫓으며 온 정신을 곧 상에 올라올 그 고기에 쏟고 있었다. 그때는 음식 이름도 잘 몰라서, 어머니가 특별한 날에 '무얼 먹고 싶으냐' 하고 내게 물으면 '그 고기'라 답한 뒤 생김새를 묘사하기 바빴던 그 요리를 명절만 되면 기다리곤 했다.


야속하게도 그릇에 담겨 있는 갈비찜은 양이 풍성하지 않았다. 나이는 어렸지만 분위기는 파악할 줄 알았던 나는 그게 비싼 음식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고기'가 명절이나 다른 특별한 날에만 상에 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니. 그래서 더 먹을 거냐는 물음에 대부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외할머니께선 '김 서방'을 챙기며 더 들라고 하셨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적당히 먹으라는 눈치를 주며 그릇에 자작하게 담겨 있는 갈비찜 국물을 떠 내게 밥을 말아주시곤 했다. 그 맛 역시 잊을 수가 없었다. 단순히 국물에 말기만 했는데도 그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게 마냥 신기하였던, 그 맛있는 걸 자주 먹지 못한다는 게 그저 아쉽기만 하였던 시절이었다.



2.

갈비찜은 지금도 고급 음식에 속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먹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게 되었다. 예전의 갈비찜(보통 갈비찜이라 하면 소갈비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이란 대단히 값비싼 음식이어서 서민은 제대로 맛보기도 힘들었다. 60년대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구매조차 하기 힘들었고, 구매 예약을 했다 하더라도 소 갈비 두 짝에 당시 서울 시청 과장 한 달 월급에 육박하는 9,000원이라는 거금을 내야 했다.[각주:1] 80년대만 해도 주말 외식 한 번을 대단한 호사로 여기던 때였으니 그때를 생각하면 시절이 참 많이도 변했다. 그렇게 조금씩 아껴 먹어야 했던 소갈비가 이제는 명절만 되면 마트에 산처럼 쌓여 있다. 여전히 한우는 값비싸지만 꼭 한우를 욕심내지 않는다면 갈비찜은 더 이상 멀리서 바라보며 침만 꿀꺽 삼켜야 하는 존재는 아니게 되었다.



3.

갈비찜 역시 우리 전통 음식으로 조선시대 고조리서에서도 요리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지금의 조리법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시의전서>를 보면 당시에는 갈비찜에 갈비 외에 소의 부아와 곱창을 넣었음을 알 수 있다. 양념 재료에도 차이가 있었는데 특히 '다시마를 넣어 같이 삶으라'고 하는 부분에 눈길이 갔다. 심지어 갈비와 함께 삶은 다시마를 꺼내 잘게 자른 뒤 다시 넣으라고까지 되어 있었다. 국물을 낼 때 쓴 채소는 버리라고 하는 요즘의 세태와는 차이가 있었다.



4.

추석이 다가오니 옛 생각도 나고 하여 갈비찜을 하기로 했다. 우선 코스트코에서 호주산 갈비 2.5kg을 사와 물에 담가 두었다. 피를 빼기 위함이었다. 이때 물에 설탕을 한두 숟갈 정도 넣으면 피가 더 빨리 빠진다. 설탕물을 교환해 가며 3시간 정도 피를 빼낸 후 냄비에 넣어 살짝 익혔다. 닭 삶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하면 기름을 어느 정도 빼낼 수 있다. 다시 냄비에 갈비를 담은 후 표면에 올라오는 불순물을 잘 제거해 가며 50분 정도 삶았다. 이때 대파 1개와 양파 1개, 살짝 으깬 마늘 5개를 넣어 함께 끓였다. 


갈비를 익힐 동안 양념을 만들었다. 사과 한 개와 배 반 개를 블렌더에 넣어 충분히 갈아낸 뒤 간장 1컵, 쌀엿 1컵, 설탕 3숟갈, 무, 후추 1숟갈, 그리고 물 1컵을 부어 잘 섞었다.


갈비를 삶은 지 50분 가량 되었을 때 갈비와 채소를 각각 건져내었다. 이때 나온 국물은 나중에 육수로 사용하기 위해 따로 보관해 두었다. 이제 양념을 넣어 졸여가는 단계이다. 크게 썬 무와 익혀둔 갈비를 냄비에 넣은 뒤 양념장을 고기가 살짝 잠기도록 붓고 끓였다. 양념이 어느 정도 졸아들면 남은 양념을 갈비 위에 부어주어 주면 된다. 이 작업을 반복하면 양념이 고기에 잘 배어 들게 된다. 이 일은 아내에게 부탁했다. 조금만 더 지체하다간 운동에 늦을 판이었다. 


"여기 있는 밤하고 마늘, 꽈리고추 넣어서 조금만 더 졸여내면 돼." 일을 남겨 미안하다는 말을 아내에게 전한 뒤 난 검도장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갈비찜이 잘 완성되어 있었다. 


"꽈리고추를 넣으니까 맛이 달라지더라. 향부터 달라지더라구. 꽈리고추 넣었다고 이렇게 달라질 줄 몰랐어." 아내가 감탄한 투로 말했다. 


완성된 갈비찜을 그릇에 담은 뒤 그 위에 국물을 조금 끼얹는 것으로 요리를 마무리했다. 고명은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그럴 정신까지는 없었던 탓인데, 달걀 지단이라도 만들어 위에 뿌려 두었다면 보기에 더 좋았을 것이다.


갈비와 야채를 섞어 끓여내는 모습. 2017. 9.27.


완성된 갈비찜을 그릇에 담았다. 고명은 따로 하지 않았다. 2017. 9.27.



  1. 참고자료: 주영하 저, <식탁 위의 한국사> (휴머니스트, 2013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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