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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말레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8. 10.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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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루마니아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루마니아 음식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 걸 책에서 우연히 본 게 계기라면 계기였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삶에서 거창한 이유를 찾아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 사람들은 사소한 주제를 진지하게 탐구해보고 싶어 하니, 내 평생 단 한 번 먹어본 적이 없는 루마니아 음식을 만들어보겠다고 나선 것도 무분별한 시도 중 하나로 볼 수 있겠다. 아내는 내가 루마니아 요리를 하더라도 그게 루마니아 현지 음식과 비슷한 맛인지 알 수 없다는(루마니아 음식을 먹어본 일이 없기에) 의견을 제시하며 내 시도의 무위성에 무게를 더했다. 어쨌거나 나중에 알게 될 일이다. 언젠가 루마니아 사람이 만든 요리를 맛볼 날이 오게 되겠지. 그때 가서 비교해도 늦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여러 루마니아 음식 후보들 중에 비교적 간단한 걸 먼저 해보려고 했으나 마트에서는 옥수수가루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비교적 복잡한 요리인 사르말레를 먼저 해보게 되었다.


사르말레는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흔하게 먹는 음식으로 서양의 각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루마니아에서는 사르말레(Sarmale)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양배추말이가 적당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양배추말이와는 조리 방법이 다르다. 사르말레는 오스만 투르크에서 유래한 음식으로[각주:1], 오스만 투르크의 오랜 지배를 받았던 동부 루마니아에서 많이 즐기고 있는 음식 중 하나이다.[각주:2] 기본적으로 다진 고기와 쌀, 여러 야채와 향신료를 섞어 소를 만든 뒤 절인 양배추잎으로 둘둘 말아 쪄내는 요리라고 보면 되겠다.


보통은 절인 양배추를 사용하는데 난 양배추를 절일 만한 여유가 없었기에(짠맛에 어울리는 머멀리거도 없었다) 양배추를 삶아서 썼다. 다진 양파와 쌀을 올리브유에 볶은 후 물을 넣어 조금 끓이다가 다진 돼지고기(다져두지 않으면 소를 만들기 어려울 수 있다), 타임(백리향), 딜씨드(보통은 딜을 넣는다), 토마토 퓌레를 넣어 섞어 소를 만들었다. 이때 소금과 후추를 치기도 하는데 난 넣지 않았다. 쪄낸 양배추로 소를 말아서 냄비에 차곡차곡 넣언 뒤 사이사이에 베이컨과 월계수잎을 끼워 넣었다. 소를 잎으로 말아야 하기에 커다란 양배추잎이 필요한 데 크기가 큰 잎이 몇 개 없었다(양배추를 통으로 썼어야 했는데). 하는 수 없이 냄비 가운데에 작은 양배추잎을 깐 뒤 그 위에 남은 재료들을 쌓아 올렸다. 통후추를 여러 군데 뿌린 후 가운데에 토마토 퓌레(사실상 페이스트)를 올렸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르말레가 붉게 변할 정도로 토마토 퓌레를 가득 부어넣기도 하는데 나는 적당량만 넣었다. 마지막으로 사르말레가 살짝 잠길 정도로 물을 부은 뒤 1시간 정도 끓여 쪄냈다. 이렇게 쪄낸 사르말레는 그냥 먹어도 좋지만 토마토 퓌레나 사워 크림을 부어 먹어도 좋다.


사르말레. 2017. 8. 9.


  1. 터키에서는 랴하나 살마시(Lahana Sarması)라고 부른다. 소에 쌀 같은 곡류를 넣는 것은 동일하나 고기는 넣지 않는다. 또한 고춧가루를 추가하여 매운 맛을 살리는 것에도 차이가 있다. [본문으로]
  2. 참고자료: 한상희 지음 <흑해의 진주> (우리마음 2016), 256~257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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