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루마니아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루마니아 음식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 걸 책에서 우연히 본 게 계기라면 계기였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삶에서 거창한 이유를 찾아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 사람들은 사소한 주제를 진지하게 탐구해보고 싶어 하니, 내 평생 단 한 번 먹어본 적이 없는 루마니아 음식을 만들어보겠다고 나선 것도 무분별한 시도 중 하나로 볼 수 있겠다. 아내는 내가 루마니아 요리를 하더라도 그게 루마니아 현지 음식과 비슷한 맛인지 알 수 없다는(루마니아 음식을 먹어본 일이 없기에) 의견을 제시하며 내 시도의 무위성에 무게를 더했다. 어쨌거나 나중에 알게 될 일이다. 언젠가 루마니아 사람이 만든 요리를 맛볼 날이 오게 되겠지. 그때 가서 비교해도 늦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여러 루마니아 음식 후보들 중에 비교적 간단한 걸 먼저 해보려고 했으나 마트에서는 옥수수가루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비교적 복잡한 요리인 사르말레를 먼저 해보게 되었다.
사르말레는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흔하게 먹는 음식으로 서양의 각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루마니아에서는 사르말레(Sarmale)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양배추말이가 적당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양배추말이와는 조리 방법이 다르다. 사르말레는 오스만 투르크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오스만 투르크의 오랜 지배를 받았던 동부 루마니아에서 많이 즐기고 있는 음식 중 하나이다. 1 기본적으로 다진 고기와 쌀, 여러 야채와 향신료를 섞어 소를 만든 뒤 절인 양배추잎으로 둘둘 말아 쪄내는 요리라고 보면 되겠다. 2
보통은 절인 양배추를 사용하는데 난 양배추를 절일 만한 여유가 없었기에(짠맛에 어울리는 머멀리거도 없었다) 양배추를 삶아서 썼다. 다진 양파와 쌀을 올리브유에 볶은 후 물을 넣어 조금 끓이다가 다진 돼지고기(다져두지 않으면 소를 만들기 어려울 수 있다), 타임(백리향), 딜씨드(보통은 딜을 넣는다), 토마토 퓌레를 넣어 섞어 소를 만들었다. 이때 소금과 후추를 치기도 하는데 난 넣지 않았다. 쪄낸 양배추로 소를 말아서 냄비에 차곡차곡 넣언 뒤 사이사이에 베이컨과 월계수잎을 끼워 넣었다. 소를 잎으로 말아야 하기에 커다란 양배추잎이 필요한 데 크기가 큰 잎이 몇 개 없었다(양배추를 통으로 썼어야 했는데). 하는 수 없이 냄비 가운데에 작은 양배추잎을 깐 뒤 그 위에 남은 재료들을 쌓아 올렸다. 통후추를 여러 군데 뿌린 후 가운데에 토마토 퓌레(사실상 페이스트)를 올렸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르말레가 붉게 변할 정도로 토마토 퓌레를 가득 부어넣기도 하는데 나는 적당량만 넣었다. 마지막으로 사르말레가 살짝 잠길 정도로 물을 부은 뒤 1시간 정도 끓여 쪄냈다. 이렇게 쪄낸 사르말레는 그냥 먹어도 좋지만 토마토 퓌레나 사워 크림을 부어 먹어도 좋다.
사르말레. 2017.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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