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이들이 칭찬받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은 여러 실험을 통해 입증되어 왔다. 어린 시절, 내가 차도에서 달리는 자동차들의 이름을 겉모습만 보고 모두 판별할 수 있었던 것은 차 이름을 맞출 때마다 내게 보내던 또래 아이들의 눈빛이 그런 나의 심리를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자동차였을까? 아마도 제자리에 얌전하게 서 있는 식물이나 크기가 작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곤충보다는 굉음을 내며 내 옆을 수시로 지나가는 자동차에 호기심이 더 향했던 것 같다. 당시 또래 아이들은 주차되어 차에 다가가 창문 안을 들여다 보며 "이건 수동이야, 저건 자동이야" 하며 따지곤 했어도 "이 식물은 잎이 다섯 개야, 이 식물은 겨울에도 잎이 안 떨어져" 하고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물론 기억은 의심스러운 것이다. 정말 나와 내 또래 아이들이 당시 식물에 별 관심이 없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게는 식물에 관한 유년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다. 빨간색 사르비아 꽃을 빨아먹던 기억, 봉숭아 꽃으로 손톱을 물들이던 기억, 강아지풀로 코를 간지럽히던 기억, 민들레 홀씨를 입으로 불던 기억,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는 단풍나무 열매를 가지고 놀던 기억, 교실에서 화분에 어떤 식물을 기르던 기억 들. 당시 난 그 식물에 이름까지 붙여주며 애지중지 키웠었고, 죽이지 않고 끝까지 잘 살려내어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었다. 그런데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어느 순간 난 그 세계에서 멀어졌고, 어느 한 시기가 지난 이후론 그런 존재가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린 채 살게 되었다.
2.
아내를 만난 후 난 다시 그 세계와 조금씩 가까워지게 되었다. 아내는 식물을 잘 알고 있고 또 좋아하여 내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내게 어려운 대상으로 남아 있다. 수목원에라도 가면 식물의 특성과 이름표를 사진으로 남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구분의 모호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갔을 때에도 아이에게 식물의 이름들을 제대로 알려줄 수 없었다. "이건 이름이 뭘까?" 하고 자문하는 게 고작이었으니 아이가 읽어야 할 식물책을 내가 보아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아직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난 예행 연습을 해보고 싶었다. 그 연습을 위해 멀리 갈 필요는 없었다. 우선 그동안 제대로 살펴본 적이 없었던 아파트 단지 내 식물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아이를 업고 집 밖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단지 전체를 다 돌아볼 기세였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식물들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살아가고 있어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겨우 한 동을 돌아보았을 뿐인데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음, 이 식물은 이름이 뭘까. 구상나무 같은데?" 나무를 미심쩍이 살피다가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3.
감나무. 서울, 2017. 8.19.
아파트 동쪽면에서 자라고 있는 감나무. 감나무는 낙엽 교목으로 가는 줄기에 갈색 털이 나 있다. 잎은 달걀형이고 어긋나며 톱니가 없다. 얼핏 보면 잎이 목련과 비슷해 보인다. 한쪽에서 감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강아지풀(추정). 서울, 2017. 8.19.
화단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강아지풀. 키가 작은 편이고 아파트에 나 있는 것으로 보아 금강아지풀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을이 되면 보다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고무나무. 서울, 2017. 8.19.
아파트 남쪽면에서 자라고 있는 고무나무. 집에 커다란 뱅갈 고무나무를 들였던 적이 있고, 집안의 가구들이 고무나무로 된 게 많아 개인적으로 친숙하게 생각하는 나무이다.
고추. 서울, 2017. 8.19.
아파트 북쪽 화단에 심겨 있는 고추. 잎은 어긋나며 삼각형 형태로 길쭉하다.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가 위로 자라고 있는게 색달랐다. 위로 자라는 고추를 흔히 '하늘고추'라고도 하는데 이는 민간에서 쓰는 이명으로, 표준 명칭은 아닌 듯하다. '화초하늘고추'와도 다르게 보인다.
국화. 서울, 2017. 8.19.
국화는 추운 가을에 꽃을 피운다 하여 사군자가 되었으니 이제 몇 달 뒤면 꽃이 필 것이다. 어떤 색의 꽃이 필지 궁금하다.
들깨. 서울, 2017. 8.19.
아파트 동쪽면에서 자라고 있는 깻잎. 잎은 마주보기로 나며 전체적으로 원형이고 끝에 둔한 톱니가 있다. 아침이 지나면 종일 빛이 들지 않는 곳인데도 이렇게 자라나 있었다. 하얀색의 꽃도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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