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덕수궁과 그 주변을 이런저런 이유로 찾아가곤 했지만 덕수궁 내에 있는 두 개의 서양식 건물만큼은 예외였다. 20세기에 세워진 그 근대식 건물들은 각각 덕수궁 미술관과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쓰이고 있어 따로 예매를 하지 않으면 들어가 볼 수 없었던 탓이다. 특히 과거엔 단순히 석조전이라고 불렀던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은 지난 몇 년간의 공사 때문에 애초에 구경할 방도가 없었고, 공사가 끝난 2014년 이후에는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었던 데다가 예약 가능 인원도 많지 않아 관람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좀 더 일찍 준비를 하여 오전엔 덕수궁 미술관에, 오후엔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에 방문할 수 있도록 아내와 계획을 짰다. 덕수궁 미술관은 사전 예약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도슨트의 해설을 듣기 위해선 시간 조정이 필요했다.
덕수궁 정원의 퍼걸러 아래에 앉아 중화전과 그 주변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덕수궁 미술관에서 '이집트 초현실주의자전'을 관람한 후 석조전으로 향했다. 석조전에는 바퀴가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가 없어 유모차를 양손에 든 채 계단을 낑낑대며 올라가야 했다. 석조전의 육중한 문을 열자마자 한 관리인이 다가와 예약자와 인원을 체크했는데, 관리인은 우리가 예약 당시 만 1세가 되지 않은 아이를 예약인원에서 뺐다는 이유로 주의를 주었다.
"예약할 땐 아이도 인원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관리인이 다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관리인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곧장 움직이더니 사람들 앞에서 자기 소개를 했다. 알고 보니 그녀가 방문객과 함께 이곳을 돌아볼 안내해설사였다.
"석조전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되었습니다. 1933년에 미술관으로 쓰면서 원형 훼손이 상당히 많이 진행되어 2009년부터 복원작업을 시작하였구요, 2014년에 공사를 완료해서 대한제국역사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덕수궁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처음보다 규모가 많이 줄어들게 되었는데요, 고종은 환구단에서 대한제국 황제 즉위식을 했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현재 조선호텔이 들어서 있죠. 예전엔 그곳도 덕수궁의 궁궐터였습니다." 1
해설을 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경직되어 있었고 재빨라서 기계 같은 차가운 인상을 주었다. 그렇기에 석조전 2층에 있는 한 작은 방에서 대한제국 황실가족에 관한 특별 해설을 하며 그녀가 보였던 웃음에 난 다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래에는 옆의 인간이 실은 기계라는 사실에 놀라게 되겠지만 내가 현재 거주하는 이곳은 그 반대의 상황이 통용되는 세계였다. 그 이후로도 그녀는 종종 미소를 보였고 표정은 한결 부드러워진 상태였다.
"석조전 정원에 분수가 설치되어 있죠. 그런데 처음엔 분수를 설치하는 것에도 반대가 많았습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게 자연스러운데 분수는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니까요. 불길해 보인다고 할까요. 그래서 분수는 분수를 모른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그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엔 웃음기가 가득했고 몇몇 관람객들은 소리내어 웃기까지 했다.
그녀는 해설을 모두 마치고 나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보다 정확히는 우리 아이를 향해 다가왔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애기 몇 살이에요? 울줄 알았는데 울지 않네?"
그녀는 엄마에게 안겨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친근하게 인사했고, 그 뒤 아내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어쩌면 그녀가 처음에 경직된 태도를 보였던 이유가 우리 아이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은 저학년과 미취학 아동의 '단체' 관람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아이를 인원수에 포함시키지도 않은 채 데려가서 적이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안내문에는 '단체'라고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데려갔던 것인데, 어쨌든 단 한 명의 아이라 할지라도 울기 시작하면 관람에 방해가 될 것은 분명했다. 아기들은 싫증이 나면 울기 마련이므로 그녀는 그런 상황에서 오는 당혹감과 피곤함을 수없이 경험했을 수 있었고, 이미 그런 지경이었다면 문제의 불씨가 보이기만 해도 쉽게 피로해질 법했다. 그런데 의외로 아이가 해설 중반 무렵까지 울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의 기분도 풀어지게 된 것 아니었을까. "울줄 알았는데 울지 않네?"라는 문장 하나에서 나의 상상은 계속 되었다.
석조전 앞 퍼걸러 아래에서. 2017. 6.20..
덕수궁 정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바라본 석조전. 신고전주의 양식의 열주들이 웅장하게 늘어서 있다.
석조전 내부 장식. 2017. 6.20.
건물 내부에서 로코코풍으로 치장한 화려한 장식들을 일부 볼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몰딩이라고 표현하는 반자돌림대에는 유선형의 무늬를 넣은 뒤 황금빛 칠을 하였고, 난간동자에는 선형의 아름다움을 배부르게 표현했다. 석조전의 로코코는 전등, 거울, 액자 같은 장식품에서 특히 두드러져 보였는데 서양의 그것처럼 아주 화려하지는 않았다. '동양적인 로코코'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하다.
석조전 발코니에서. 2017. 6.20.
석조전 2층 발코니에서 바라본 풍경.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다. 일부 자료는 석조전에 도리스 양식이 적용되어 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착오로 보인다.
석조전 대식당. 2017. 6.20.
공식적인 행사 후 만찬을 베풀던 대식당의 모습. 사람의 몸을 제대로 살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위치에 거울이 매달려 있는 걸 알 수 있는데, 이런 식의 거울 배치를 석조전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당시 거울은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처럼) 건물의 내벽 장식물로 이용되어 권위를 드러냈다.
석조전 귀빈대기실. 2017. 6.20.
준공 당시의 모습을 반영한 귀빈대기실. 벽난로 양쪽으로 2개의 라디에이터가 보인다. 서양 사람들이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고 침대 생활을 하며 천장에 오큘러스 같은 창문을 내었던 것은 화로라는 부족한 난방 방식 때문이었다. 온돌을 이용한 따뜻한 공간에서 자라왔을 고종이 석조전이라는 생김새마저 차가운 건물에서 겨울을 어떻게 났을지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 법하다. 하지만 걱정마시라. 고종이 살던 시기는 태양왕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반려견 일곱 마리를 껴안은 채 추위를 견뎌내던 때가 아니라 증기기관이 발명된 근대의 시기였으니. 석조전에는 이처럼 라디에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았다.
석조전 수도배관(라디에이터). 2017. 6.20.
석조전에는 복원 작업 당시 파헤쳤던 부분 중 일부를 그대로 남겨둔 공간이 있다. 사진은 파헤친 공간에 보이는 두 줄의 수도 배관을 촬영한 것으로, 겉면에 보이는 것은 동파 방지를 위해 동여맨 새끼줄이다. 배관 옆으로는 붉은 벽돌들이 보이는데, 이처럼 석조전은 화강암이 아니라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 건물이었다. 따라서 이 건물을 석조전이 아니라 '벽돌전'이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우측으로 90도 회전 편집.
덕수궁 중화전 앞. 2017. 6.20.
석조전 구경 후 경내를 잠시 거닐다가 아이의 덕수궁 첫 방문 기념 사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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