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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무질 <특성 없는 남자> (2), 축하합니다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7. 6. 21. 22:32

본문

1.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는 분명 예술적인 작품이다. 이것은 오직 비평가들만이 칭찬하며, 제대로 즐기며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고, 심지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은 사람조차 찾아내기가 무척 어렵지만 거의 항상 '걸작'이나 '대작', '기념비적 작품'으로 손꼽히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평과 비슷한 면이 있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독자는 <특성 없는 남자>의 초반부를 읽다가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난 뒤, 곧장 이 책을 책장 속에 얌전히 넣어두고는 그 존재를 영원히 잊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소설은 재미가 없다. 한 단어를 더 넣자면 이 소설은 대중적 재미가 없다. 조금 더 써넣자면, 이 소설은 철학서를 읽으며 미소를 띠는 사람들에게나 적합한, 대중적 재미가 없는 소설이다.

 

그러니까 난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이 책은 추천을 받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이런 부류의 책은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기 전에 이미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자의로 읽는 책이지, 누군가의 추천으로 읽는 책이 아니다. 고전적인 독서클럽이나 비평가들의 카페에선 이 책을 서로에게 추천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에 악평을 남길 만한 강심장은 드물겠지만, 개개의 취향은 다르므로 때론 그런 평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시대를 뛰어넘는 소설'이라거나 '사유의 영웅'이라는 표현을 이 소설에 붙일 것이다. 그건 어쩌면 '현대인은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이라거나 '장르를 잘못 고른 소설'이라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그 말은 독자 여러분도 이 책을 읽기 제대로 위해선 시대를 뛰어넘을 준비를 해야 하며, 사유의 영웅은 못 될지라도 그 발자국을 붙잡고 따라갈 수 있을 만한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깟 소설 하나를 읽는 데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단 말인가? 난 그저 내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혹은 재미를 얻기 위해서 소설책 한 권을 집어 든 것인데? 그렇다면 이 책은 조용히 덮어 둔 채 당신의 도서 목록에서 지우도록 하자.

 

 

2.

처음에 한 서술자가 등장하는데(이 화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는 태연히 날씨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런저런 화두를 꺼내던 그는 결국 인간의 보편적 특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나 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파장을 이용해 붉은색을 백만 분의 1밀리미터까지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으면서도 붉은 코에 대해선 그냥 붉다고 말하는 걸로 만족"(12쪽)하는 반면, 도시에 대해선 정확하게 알고 싶어하는 존재이다.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과대평가하는 습관은 목초지가 어디인지 알아내야 했던 유목시절에서부터 시작된 것"(12쪽)이라는 그의 의견엔 중요한 점이 있다. 여기엔 인간의 도시에 대한 집착이 보인다. 그러다 불쑥, 서술자는 갑자기 특성 없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마치 그동안 그 남자를 언급하기 위해 시간을 끌어 왔던 것처럼.

 

서술자에 따르면 특성 없는 남자는 대저택에 살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멈춰서서 틀림없이 '아!' 하고 외칠 만한 집"(16쪽)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그는 "학자의 방에나 있을 법한 서가"(16쪽) 또한 가지고 있다. 서술자는 자신의 그런 묘사를 통해 독자가 특성 없는 남자의 '특성'을 파악하길 바라는 듯하다. 다행히도 간접적인 묘사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서술도 등장한다.

 

특성 없는 남자는 "사회적 총합 속의 작은 일상들과 그 모든 총합을 더한 것은 영웅적인 행위보다 더 큰 힘을(18쪽)"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그는 사소한 행위들도 영웅적일 수 있거나, 혹은 영웅적인 행위로 결국은 사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영웅적 행위란 거대한 환상"(18쪽)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시민적인 삶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서술자는 "오히려 그는 (...) 자신의 그 시민적인 성향을 괴롭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18쪽)고 썼다. 어쩌면 그것이 "집단적인 개미떼 영웅주의의 시작"(18쪽)을 알리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가정하며.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니, 특성 없는 남자는 또한 다음처럼 말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 어느것 하나 차이가 없는 것이지."(19쪽) 그러니 특성 없는 남자가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엄청난 힘을 쓰고 있는지"(17쪽)를 계산해보면 그 수치는 아틀라스의 힘을 능가할 것이라고 믿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니까 특성 없는 남자는 세상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간주하는 일들을 대단찮게 여기는 사람이며, 동시에 쓸데없는 행위라고 보는 일들을 위대한 일이라 간주하는 사람이다.

 

한편, 특성 없는 남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성'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집을 얻었다는 것"(20쪽)에 감정이 상했다. 아버지의 입장에선 그것이 "재앙을 부르는 어떤 교만"(20쪽)으로 보였다. 

 

아버지는 아들과는 다르게 특성 '있는' 남자이다. 그는 충분히 부유했는데도 일(귀족 가문의 가정교사)을 그만두지 않았으며, 귀족 집안과의 관계를 잘 유지한 덕분에 황제에게 귀족 칭호를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 일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아들, 즉 특성 없는 남자는 그 사건을 다르게 바라본다.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어느새 가정교사에서 귀족원의 스승으로 변모"(22쪽)된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들은 회의를 느낀 것이다. 즉 세상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간주하는 일(귀족의 칭호를 받는 것)은 그 사람의 근본이 아니라 귀족과 좋은 관계 유지 따위에 좌지우지되므로 결국엔 하찮은 것과 다름이 없다. 따라서 특성 없는 남자에게 위대한 것이란 결국 하찮은 것과 같은 셈이다.

 

아버지는 거대한 저택을 산 아들에게 "어떤 질책보다도 더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23쪽) 그 이유는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경멸받았다고 느꼈"(23쪽)기 때문이고, 그 경멸은 아들이 저택을 살 때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20쪽)했으며, 그 일이 "독립심을 소중하게 생각하는"(20쪽)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건 아마도 독립심이라는 포장을 두른 방임과 무관심이었을 것이다.

 

특성 없는 남자의 아버지는 현실 감각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는 걸 원칙으로 삼아 왔다. 그런데 "현실 감각이라는 게 있다면 가능성 감각이라고 불릴 수 있는 어떤 것도 있어야 한다."(24쪽)는 주장을 서술자가 한다. 이 대목은 꽤 중요하다. "가능성 감각을 지닌 사람은 환영과 상상력과 꿈과 가정법의 세계 속에서 살아"(25쪽)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능성 감각을 지닌 사람은 세상을 살아 가기가 쉽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서 이런 성향을 엄격하게 몰아내며, 이런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 "환상가, 몽상가, 나약한 자"(25쪽) 등 부정적 이미지를 덮어씌우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이상주의자'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표현 역시 그다지 좋은 뜻은 아니다. 

 

그런데 '현실 감각'이 있고 '가능성 감각'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또한 '가능한 현실'을 지닌 사람도 있다. 그는 현실 감각은 물론 가능성 감각 또한 지닌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성질을 가진 사람은 "새로운 가능성에 비로소 의미와 형제를 부여"(26쪽)해주는 존재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숲이고, 다른 사람들은 나무"인 셈이다. "숲은 묘사해 내기 어려운 반면, 나무들은 규정된 질을 지닌 무수한 목재의 입방미터들이다."(27쪽) 이처럼 "가능성 감각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실 감각을 지닌 사람"(27쪽)은 규정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그는 "일관된 생각에서 한참이나 멀어져"(27쪽) 있는 사람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는 그 범죄가 사회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고 책임은 범죄자 개인에게가 아니라 사회제도에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27쪽) 

 

자, 그렇다면 이 사람, 가능한 현실을 지닌 이 사람이 갑자기 따귀 한 대를 맞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그걸 사회 탓으로 돌릴까 아니면 개인의 문제로 돌릴까? 서술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그는 우선 따귀 한 대를 복수하고 나서,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할 것이다."(27쪽) 서술자는 가능한 현실의 남자를 불완전한 인물로 바라보고 있으며 "나약함과 강함을 동시에"(28쪽) 지닌 인물로 묘사한다. 

 

이제 서술자는 현실 감각이 전혀 없는 어떤 한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특성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고 예언한다. 그 남자의 이름은 울리히(Ulrich)이다.

 

 

3.

서술자에 따르면 울리히의 성향은 학창 시절의 작문 숙제에서 처음 드러났다. 울리히는 조국애에 관한 작문에서 "진정한 애국자는 조국을 결코 최고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29쪽)고 썼으며, 그 뒤에 "아마도 신 또한 그의 세상에 대해 가능한 가정법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세상을 창조했고, 그것이 다르게 될 수도 있을 텐데,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29쪽)라는 문장을 덧붙였다. 서술자에 따르면 울리히는 그 글을 쓰고 나서 우쭐해 했다고 한다(그런데 서술자가 울리히의 마음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서술자는 울리히와 매우 친하거나, 울리히 그 자신이거나, 그도 아니면ㅡ실망스럽게도ㅡ전지적 작가일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표현을 하는 건 20세기 초엽의 당시엔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비판을 허락하지 않는 두 상징인 조국과 신을 동시에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 일로 그는 아버지의 분노를 샀고, 결국 먼 도시로 전학을 가야만 했다.

 

확실히 울리히는 주관이 뚜렷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다음과 같은 말, "원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무엇을 원했는지조차 헷갈리게 된다"(32쪽)는 식의 자유를 부정하는 말을 반성하며 받아들일 수 있었다. 즉 아버지의 그 같은 말에 온전히 수긍하거나 극렬히 반대하는 대신에 "가능성과 계획과 느낌을 가진 인간은 (...) 모든 종류의 억압을 통해 구속당해야 하며, 그러고 나서야 가치나, 성숙, 존속과 같은,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33쪽)고 이해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아버지를 하나의 억압으로 받아들였으며, 그런 존재가 나타나 자신을 가로막는 일은 당연하고, 그를 극복해야 자신만의 가치를 갖게 될 수 있다고 이해하였다.

 

이런 울리히에겐 레오나라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눈에 축축한 어둠이 서려 있고 고통스럽고 연민에 찬 인상을 지녔으며 무대 위에서 외설적인 노래를 부르고 어린 시절 비싼 음식들을 먹어보지 못한 탓에 과식이라는 악덕을 지닌 데다가 다른 모든 일에서처럼 성욕에도 게으르고 자극에 대한 반응도 느린, 레오나라는 이름의 여자친구. 그런 레오나는 자신의 직업인 노래 부르는 일을 고귀하고도 필수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는 때로 무대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외설적인 짓도 마다하지 않았"(37쪽)는데, 놀랍게도 "제국 오페라단의 수석가수도 그녀와 똑같은 행동을 했으리라고 굳게"(37쪽) 믿기도 했다. 

 

또한 레오나는 사람들이 창녀가 하는 짓이라고 여기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서술자는 그녀의 그 일을 방어해 준다. "누군가 마치 그녀가 열여섯살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9년 동안 최하급 무대에서 아주 작은 돈을 받아오면서 (...) 매일 시달려왔으며, 그것들과 싸우고, 상인들이 하듯 계산해야 했다면, 문외한들에게 하룻밤의 기분전환에 불과한 모든 것이, 그것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에겐 논리와 실용성과 신분규정과 같은 것들이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37쪽)  한 마디로 그녀는 섹스를 "완벽하게 실용적인 태도"(38쪽)로 접근했다. 

 

그녀에게 고상한 것은 (노래 부르는 일 이외에도) 먹는 행위와 연관이 있는데, 서술자는 그걸 다음처럼 표현하고 있다. "성대하게 먹어대는 의식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인간적 우월성을 표현해내고 싶어하는 원시적인 사람들이나 호사스런 농부들 사이에서 여전히 관찰되는 현상"(38쪽)이라고 말이다.

 

 

4.

이것이 처음부터 38쪽까지의 이야기이다.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는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진다. 더 부연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없을 것이다. 흥미를 느끼지 못한 사람은 이미 읽기를 멈춘 채 이곳에서 나가버렸을 것이고, 만일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 있다면... 축하합니다! 이제 그의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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