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재료 다듬기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5. 25. 17:41

본문

음식 재료를 다듬는 걸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 일은ㅡ설거지와 비슷하게ㅡ요리 그 자체와 무관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리와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그 일을 하는 데에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동을 들여야 했고, 그래서 재료 다듬는 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아주 가끔씩 세척 당근이나 세척 대파 같은 걸 사기도 했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집에서 다시 한 번 씻고 손질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갔다. 그만큼 난 재료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그들의 순수한 촉감, 향, 모양새... 어느 날 개수대에서 생마늘을 씻고 있었다. 마늘 여러 개를 양손에 쥔 채 흐르는 물에 대어 비비고 있었는데 새삼 마늘의 단단함이 신비하게 느껴졌다. 마치 부드러운 돌이 손에 들려 있는 듯했다. 난 마늘을 양손으로 가볍게 쥐었고, 마늘이 손바닥에 가하는 압각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질 못했다. 내가 재료를 다듬는 데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건 대략 그때부터였다. 케일 뒷면의 부드러운 탄력, 모난 돌 같은 오이 껍질의 감촉, 매끄러워 보이지만 헝겊 같은 토마토의 뻣뻣함... 어쩌면 이것은 먹어야 살 수 있고 먹기 위해선 재료를 다듬어야만 하는 내 피곤한 숙명을 견디기 위한 자기방어의 한 방편이었을까?


잎을 딴 파슬리와 레몬 껍질(레몬 제스트), 그리고 마늘. 파슬리는 절반 정도만 잘게 다져 냉동실에 넣었고 레몬은 껍질을 벗겨 역시 냉동실에 넣었다. 마늘은 설탕을 묻힌 키친타월 위에 올려 냉장실에 넣었다. 2017. 5.24.


100% 순수 레몬즙. 레몬 열 개를 반으로 갈라 손으로 짠 뒤 면포에 걸렀다. 깨끗하게 나온 레몬즙은 냉동실에 넣어 얼렸다. 이때 얼음틀을 이용하면 먹기에 편리하다. 레몬즙을 손으로 짜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제대로 짜야 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손에 더 많은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내가 손아귀가 약한 여자였다면 진작 레몬즙 짜개를 구비해 놓았을 것이다. 2017. 5.25.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