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몰고 몰아 목포항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차량을 선적하는 곳으로 이동하니 한 남자 직원이 차를 가로막으며 종이에 뭔가를 작성했다. 차량 선적에 관한 서류였다. 직원은 차 내부를 잠시 살피더니 동승자는 차에서 내려 매표소 대기실로 가야 한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는 차에서 내렸다. 목포는 생각보다 추웠다. 바람이 강하게 불지 않는데도 찬 기운이 옷으로 스며들었다. 따뜻한 남쪽으로 간다는 생각에 옷을 얇게 입은 탓이었다. 아내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고 난 차를 몰아 배 안으로 들어갔다. 차를 배 안에 대고 난 뒤 매표소라고 되어 있는 화살표를 따라 배 안에서 나와 매표소로 들어갔다. 매표소로 가보니 아내는 수유 중이었다. '배표클릭'을 통해 승선자에 대한 예매와 비용 지불은 해둔 상태였지만 차량 비용은 미지불상태였으므로 아까 받아둔 서류를 제출하여 비용 지불을 끝냈다. 대합실에서 잠시 대기하다가 배에 올라탔다. 배에는 영어로 '산타루치노'라고 커다랗게 써 있었다.
단테는 <향연>에서 삶을 배에 비유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인생의 마지막이란 돛을 서서히 내리며 입항하는 배와 같다. 사실 배를 인생에 비유한 글들은 많다. 누가 쓴 것인지 기억이 나진 않는 이런 대목이 떠오른다. "인생의 행로는 배의 항로와 같다. 태어날 때는 모두가 다가와 손을 흔들고 웃으며 축하를 하고 배의 안전을 기원하고 축복한다. 하지만 오랜 항해 후 배가 항구에 돌아왔을 때 반겨주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의아해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모르는 배, 즉 아이에 대해서는 그렇게 축복을 내려주면서도 왜 온갖 풍랑과 경험을 겪은 뒤 무사히 귀항하는 배, 즉 노인들에게는 환호하지 않는 것인가?
이런 비유도 이제 과거의 것이 되었다. 호화 크루즈선이라 하더라도 출항 준비 중인 배로 가족과 친구들이 몰려가 손을 흔들며 안전을 기원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게 되었다. 반대로 외국인을 실은 크루즈선이 국내에 도착하면 환영의 무대가 펼쳐진다. 그들은 지역경제와 지역홍보를 위한 귀중한 손님이기 때문이다. 만일 인생을 배로 비유할 수 있다면, 이제 그 이유를 인구구조의 변화와 경제논리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모든 준비가 끝난 듯했다. 이제 배가 목포를 향해 출발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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