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를 벽선반에 올려두었다. 애초에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벽선반의 높이 조절이 가능한 덕분에 호구의 갑을 딱 맞게 넣을 수 있었다. 호구를 올려놓으니 도장에서나 맡을 수 있었던 특유의 냄새가 방에도 퍼졌다. 매캐하지만 싫지만은 않은 냄새이다. 그 냄새는 오래된 것에서 풍기는 것이다. 오래되었음은 낡았음을 뜻하기도 한다. 여기저기에 상처가 난, 낡았다면 낡은 호구. 새것, 좋은 재료를 쓴 것, 장인이 만든 것은 뛰어난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그 가치란 대개 많은 이들에게 동시에 통용된다. 그런데 하나의 물건이 여러 사람이 아닌 아주 소수의 사람, 때로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가치를 지니는 경우가 있다. 저 낡은 호구가 그런 것이다. 다른 사람은 아무리 보아도 저 호구에서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찌른다. 롤랑 바르트식으로 이야기하면 '푼크툼'인 셈이다. 낡은 호구의 상처는 코에 난 작은 점과도 같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빼야겠다고 말하지만, 난 그것 때문에 마음을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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