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키나와(류큐 왕국 시절)에서 본격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가라테'는 일반적인 무술처럼 두 명이서 서로 대련을 하는 형태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통 가라테에는 대련뿐만 아니라 '카타', 즉 자세를 통해 대련을 하는 분야도 있다. 위 동영상은 바로 그 카타를 통한 대련 장면을 보여준다. 위와 같은 카타 대련은 흔히 말하는 실전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으며 카타가 아닌 실제 시합에서의 모습과도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위의 카타를 허울뿐인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위 카타를 보고 있으면 수련자가 추구하고 있는 어떤 정신을 느낄 수 있게 되는데, 때로는 그 정신에서 인간이 무도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도의 시합은 '한판'이라는 기준에서 승부가 가려지는데, 수련을 하다 보면 이 한판의 기준이 꽤 모호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가 있다. 그 이유는 이 한판에 무도가 추구하는 정신적 가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 그 가치란 위 카타에서 느낄 수 있는 정신과 무척 비슷하다. 검도에서는 그것을 '기검체 일치'와 '존심'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단어들이 가리키는 뜻만으로는 의도가 명확히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한 것은 '기검체 일치'와 '존심'이라는 개념을 통해 신체 외부로 드러내고자 하는 '정신'이 검도의 한판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이 담겨 있는 한판, 한판의 정신이라는 것은 스포츠 세계에서 통용되기 어려운 이론이다. 정신이라는 것은 명확화 할 수 없는 것으로, 표현상 예술의 분야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시합에서 말하는 한판과 시합이 아닌 모범 대련에서 말하는 한판이 미묘하게 달라지게 된다. 시합에서는 충분히 한판으로 인정될 만한 것이 모범 대련, 혹은 고단 사범님들과의 대련에서는 한판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일을 겪은 몇몇 수련생들은 불만을 표시한다. 고단자들이 자존심 때문에 자신이 진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분명히 자신의 죽도가 상대의 머리에 닿았는데도 고단자란 사람은 내 목에 죽도를 겨누면서 한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판이 아닌데 마치 한판이 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기부림을 하는 상대방 때문에 기분이 상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분명 단순히 자존심 때문에 그런 억지를 부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신'을 이용하여 상대의 '자세'를 막연하게 비난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도덕한 종교인이 있다는 이유로 종교 전체를 깎아내린다면 그건 좁은 소견이라 할 수 있다. 나쁜 남자도 있고 나쁜 여자도 있겠지만 그걸 이유로 다른 쪽 성별을 태생적으로 비난하기에 바쁘다면 그것 역시 불건전한 생각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한판의 기준을 나쁘게 이용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 분명하나, 그렇다고 하여 그 자체를 나쁘게 보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생각에 그런 차이는 대개 (상대가 악마라서가 아니라) 한판의 이해도 차이에서 온다. 한판이면 똑같은 한판이지, 왜 고단자와의 대련에서는, 혹은 상황에 따라 한판의 기준이 달라지게 되는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검도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스포츠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지만 무도의 가치 또한 잃고 싶지 않다는 것, 그 두 세계의 목표 사이에서 검도의 한판은 각자의 기준을 세우려 한다.
물론 위와 같은 식으로 검도의 한판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 곳은 없다. 똑같은 검도를 하면서도 경우에 따라 한판의 기준을 달리 한다는 구분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그러나 앞으로 내가 검도를 해나감에 있어 그런 구분이 내게 도움을 줄 거라 생각한다. 그런 기준에 따르면 시합에 나가서는 보폭을 넓히고 앞뒤좌우로 재빠르게 움직이며 팔과 상체를 쭉 뻗어 상대를 가격하고 때로는 죽도를 들어 상대의 공격을 막기까지 해야 하지만, 고단자 그리고 사범님들과의 모범 대련에서는, 아니, 비록 검도 경력이 많이 짧은 검도인과의 대련이라 할지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다른 모습이 무엇인지는 나도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저 막연하게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뿐이다. 약속된 카타 대련에서 드러나는 자세와 정신, 그것과 비슷한 어떤 것. 그것의 실체를 조금씩 알아나가는 것이 내가 앞으로 검도를 하며 이루어내야 할 목표라는 생각이 든다. 검도가 20~30대 시절에 반짝 빛났다가 하향 곡선을 그리는 무술이 아니라 평생을 추구해야할 무도, 평생검도로 불릴 수 있는 것은 그 속에 바로 그런 지향점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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