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는 자신의 책 <미식견문록>에서 철학자나 화가, 시인 같은 공상가는 '살기 위해 먹는' 경우가 많고, 정치가, 회사원, 저널리스트 같은 현실주의자는 '먹기 위해 사는' 경우가 많다고 썼다. 그런 경우가 대다수인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그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는다. 예술가 타입의 인물들 역시 먹는 것에 관심이 많기는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현실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비해 없을 뿐이라고 말이다. 내가 보기엔 작가들 역시 먹을 것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자신의 기호 편력을 열심히 쏟아내곤 했다.
내가 말 그대로 '살기 위해 먹는' 존재였을 당시, 나와는 달리 '먹보 피가 농후해' 보이는, 그것도 여성이 아닌 남성 작가들을 알게 되어 상당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래서 먹을 것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던 작가들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고(하루키의 수필에는 요리에 관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았다), 움베르토 에코가 그랬다(난 에코가 왜 쉽게 '커틀릿'이라 지칭하지 않고, '고기를 얇게 저며 빵가루를 입힌 커틀릿'이라고 표현하는지를 궁금해 했었다). 조선시대의 소설가이자 정치가라고 할 수 있는 허균도 <도문대작>을 남길 만큼 상당한 미식가였으며, 역시 독일의 문호이자 정치인이었던 괴테는 음식에 관심이 많아 직접 채소를 길러 요리를 하였고 심지어 레시피를 새롭게 만들기까지 했었으니, 요네하라 마리가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 중에 "철학자나 고상한 음악가, 화가, 시인 등이 직업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했던 것은 개인적인 경험으로 한정해야겠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된 사람들은 세계사 속 인물들 중에서도 특출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으니 마리의 경험을 단순히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최근에 몇 가지 요리를 더 했다. 해놓고 보니 대부분 밀가루 요리들이다. 그래도 신선한 재료를 쓴 건강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생크림 스파게티. 아스파라거스도 넣었다.
충분히 발효시키지 못했던, 다소 급하게 만들었던 식빵
화성 표면이 연상되는 에스프레소. 라바짜 원두로 만들었다.
머핀. 좀 더 커다란 유산지가 필요하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