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장에 검을 들고 간 일이 있다. 아이들은 검의 겉면에 보이는 장식을 보며 소리쳤다. "와, 고래상어다!" 어린 아이들이 어찌 고래상어를 알고 있을까, 난 내심 놀랐다. 하긴 고래상어는 애니메이션 <도리를 찾아서>의 주인공으로도 출연하였으니 이제 그리 낯설은 생물은 아닌 듯하다. 어쨌거나 관심은 그곳까지였다. 아이들은 검의 외부에 보이는 장식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칼 자체에는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건 대부분의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내가 가져온 이 검의 도신을 특수강으로 만들었는지 스프링강으로 만들었는지, 그중에서도 세부적으로 어떤 강종을 썼는지, 단조를 했는지 레이저 절단을 했는지 등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런 강종의 구분은 검을 이용하여 실제로 대나무나 짚단을 베고자 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었다. 대한검도회에서 운동을 하는 대다수의 검도인들은 진검베기에 관심이 없으므로 도신의 단단함, 날카로움, 유연함 등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건 나 역시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 조선세법도 제작을 위해 원도검을 찾아갔던 것은 원도검의 이경세 작가가 도신 제작에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의 관심은 도신의 기능적 완성도보다는 도검의 장식에 있었다. 아마도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검 제작을 위해 도검사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수요자들은 검의 날, 쇠붙이 자체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칼의 코등이 1나 손잡이의 테두리 2 장식은 중요한 관심 사항이 아니다. 그런 장식은 베기 기술과는 별 관련이 없어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베기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도신의 성능보다는 장식의 심미적 아름다움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난 원도검의 이경세 작가를 찾았다. 3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도신 자체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주문을 하려 했던 검은 가검, 즉 애초부터 칼날을 세울 수 없는 검이 아니라 날을 세울 수는 있지만 날카롭게 만들지 않은, 사실상의 진검이었기 때문이다. 대한검도회에 소속되어 있는 대부분의 검도인들이 가검으로 수련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가검으로도 조선세법 수련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하지만 '가'라는 접두사가 마음에 걸렸다. 기왕이면 '가'보다는 '진'이라는 단어가 앞에 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장식에 중심을 두기 위해선 그래야만 했다. 장식을 그 자체로 심미성을 지니고 있는 예술품으로 볼지 아니면 다른 것을 장식하기 위한 불완전한 장치로 볼지에 무관하게, 장식과 조화를 이룰 '본체'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날이 살아 있는 진검을 도장에서 수련 용도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칼날로 무언가를 벨 수는 없지만 도신에 열처리를 하고 연마도 어느 정도 마친 '날을 세우지 않은 진검', 통상 '진가검'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2.
베기에 관심이 있는 수련자들이 도검의 미적 아름다움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련자들 중 대다수가 일본도로 연습을 하고 있는데, 일본도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가타나는 칼 자체에 예술성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기에 이들 역시 일본도의 심미성에 관심을 갖게 된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 칼날에 보이는 물결 무늬 4를 들 수 있다. 칼끝 5과 칼날부의 수직선 6이 이루는 곡선, 혈조 7의 형태도 일본도의 외적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그렇기에 거의 모든 일본도 가검에 물결 무늬와 칼날부 수직선이 모조로 그려져 있다. 진검은 부분열처리와 연마로 그를 직접 구현하는데, 진검 역시 연마 방향을 다르게 하는 방식으로 칼날부 수직선을 꾸며 넣는 경우가 있다. 8
난 애초에 도검의 예술성에 의의를 두고자 했기 때문에 도신 자체의 미에도 관심이 있었다. 적어도 물결 무늬는 모조가 아니어야 했다. 따라서 도신에는 통열처리 및 부분 열처리 작업까지 들어가야 했다. 알루미늄 가검으로는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칼날부의 수직선은 비용 문제 때문에 옆선을 흉내만 내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실제 가공이 들어가 있었다. 그의 작가정신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 하겠다.
그래도 내가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역시 도검의 외장이었다. 흔히 도검 부속품이라고 하는 것들로, 칼을 구성하는 모든 부속품을 이른다. 많은 부품들이 있지만 장식 용도로 신경쓰는 것에는 코등이, 손잡이 테두리, 손잡이 머리 덮개 9, 쇠못 덮개 10, 그리고 도신 고정 장치 11가 있다. 칼집 12 역시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부품이었다. 다만 칼집은 그 형태와 질감이 대체로 정해져 있는 듯하여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칼집 전체에 가오리 가죽을 입힌다던지, 일부를 가죽으로 감싼다던지 하는 변형된 형태가 있었으나 난 칼집의 형태나 질감보다는 색채에 더 관심을 두었다. 13
손잡이를 감싸는 천과 손잡이용 가죽 14에도 신경을 썼다. 천은 실크, 손잡이용 가죽으로는 가오리 중심부의 가죽 15을 골랐는데, 이 가오리 가죽 역시 플라스틱을 이용한 모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에 일부러 가죽 중심부의 알이 굵은 곳을 골랐다. 가오리 가죽의 커다란 선과 실크의 부드러움이 도검에 심미성을 더했다. 표면 질감이 형식과 무관할 수는 있으나 적어도 양식의 발현임엔 분명하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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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 제작 및 사진촬영: 원도검 이경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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