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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즐겨찾기

우아하고 감상적인 산책로/시

by solutus 2016. 7. 30.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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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을 기억하지 않아. 내가 들을 수 있던 건 당신의 머릿속 지식이었지, 당신이라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당신은 내게 법률 지식과 좋은 여행지에 대해 가르쳐 주었어. 아마 당신은 그 이야기를 해주며 내가 당신이라는 사람을 기억해주길 바랐을 거야. 하지만 난 당신을 몰라. 내 머릿속엔 법률 해석과 피서지 정보만이 남아있을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난 당신을 몰랐고, 내가 여전히 당신을 모른다는 사실에 당신은 갸웃거렸지. 내가 그렇게 많이 도와줬는데도 넌 어째서? 내가 뭔가를 말하면 당신은 결과물을 보여줬어. 인터넷의 웹사이트처럼. 내가 원하는 정보가 없다면 난 곧바로 X표를 눌렀고, 내가 원하는 정보가 있다면 난 잠시 뒤에 X표를 눌렀지. 그런데 당신은 그 잠깐의 응시를 특별한 것이라 여겼던 거야. 모두가 X표였는데도. 그러니 그 기억할 필요 없던 그 수많은 사이트들의 운명들처럼 난 당신에게 X라는 기호를 남겨뒀지. 어깨를 한번 토닥이고 나서 각자의 일상으로 흩어져야만 하는 위로의 자리 같은, 당신의 기억을 건네받은 뒤 내가 지워버리곤 했던 그 이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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