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가오면 수조의 수온이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면 해수 동호인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냉각기와 냉각팬을 향하게 된다. 해수어와 산호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들 중 하나가 수온의 문제, 즉 잦은 온도 변화와 높은 수온에서 오기 때문이다. 최근 호주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에 서식하는 대다수의 경산호가 백화 현상으로 하얗게 탈색되어 버렸는데, 그 원인으로 엘리뇨 현상으로 인한 수온 상승을 지목하고 있다. 경산호만큼 민감하지는 않지만, 연산호나 해수어 같은 생물들도 급격한 온도변화와 상승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따라서 가정집에서도 수온 상승에 대비하기 위해 수조에 냉각팬이나 냉각기를 달아주어야 하는데, 이 둘 중 어떤 걸 선택하는 게 좋은지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 왜 냉각기가 아니라 냉각팬을, 혹은 그 반대의 선택을 해야 할까? 다음의 정리가 조금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1. 냉각팬
냉각팬은 물의 증발이 더 활발히 일어나도록 자극하고, 이때 발생하는 기화 현상으로 수조의 열을 식힌다. 빨래를 말릴 때 선풍기를 틀어주면 빨래가 더 빨리 마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공기 교환을 통해 물의 증발이 더 많이 일어나도록 유도하고, 이때 발생하는 증발에 따른 기화 현상으로 수온 하강울 촉진시킨다.
가. 장점
냉각팬의 가장 큰 장점은 설치가 간단하고 비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수조의 수면을 향해 바람만 불어넣어주면 되기 때문에 그 형태가 컴퓨터용 쿨러든 일반 선풍기든 별 상관이 없다. 바람만 내보낼 수 있으면 된다. 디자인을 고려한다면 전용 쿨러를 설치하는 게 좋겠지만 필수적인 고려사항은 아니다. 따라서 설치 비용이 수십 만원에 이르는 냉각기에 비하면 무척 저렴하다고 할 수 있다. 직접 만든다면 만 원 내외로 설치가 가능하다.
나. 단점
냉각팬의 단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냉각팬이 가장 필요할 시기에 단적으로 드러난다. 봄이나 초여름이 되어 적정 수온 이상으로 온도가 올라가면 냉각팬이 작동하기 시작하는데, 이 냉각팬의 영향으로 집안 습도가 빠르게 올라간다. 초여름이 되면 물의 증발량이 많아져 집안의 습도가 더욱 빠르게 올라간다. 집안에 빨래라도 널게 되는 날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져 습한 기운에 답답함마저 느껴질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집안 습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냉각팬의 온도 조절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냉각팬은 물의 증발을 자극하기 위한 것인데, 집안의 습도가 높은 상태에선 아무리 강한 바람을 불어넣어도 증발이 잘 일어나지 않게 되고, 따라서 냉각팬을 몇 시간 동안 틀어놓아도 수온을 거의 떨어뜨리지 못한다. 이 문제는 환기로 해결할 수 있는데, 이런 해결책마저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바로 장마철이다. 장마철엔 외부의 습도 역시 높기 때문에 환기를 해도 집안의 습도가 낮아지지 않고, 따라서 냉각팬은 거의 무용지물이 된다. 장마철 이후에 오는 열대야 기간에도 냉각팬은 거의 힘을 쓰지 못하니, 냉각팬 사용자는 온도도 높고 습도도 높은 열대야 기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냉각팬의 다른 단점으로 보충수를 자주 채워주어야 하는 문제를 들 수 있다. 수조와 수도관을 연결하여 증발된 물이 자동으로 채워지도록 해놓았다면 상관 없겠으나, 보충수통에 직접 물을 넣어 주고 있다면 신경 쓸 일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냉각팬이 자주 돌아갈수록 물의 증발량이 많아 보충수를 채우는 빈도 역시 빠르게 늘려야 된다. 수통의 크기가 작다면 단 하룻만에 보충수통의 물이 모두 고갈될 수 있다. 그런 시기에 여행 등으로 며칠 자리를 비우게 된다면 수조 내 전체 물량이 크게 줄어들어 수조 내 생물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 냉각기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대일 냉각기나 리선 냉각기는 물이 냉매제 속에 들어있는 열교환 코일을 순환하면서 수온을 낮추는 방식을 쓰고 있다. 프레온 가스(R-12) 퇴출 이후, 냉매제로는 대일과 리선 모두 R-134a를 사용 중이다(관상용 냉각기가 아닌 대형 해수 냉각기에는 냉매제로 여전히 R-22를 쓰고 있다).
가. 장점
냉각기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효율이다. 온도 설정만 해놓으면 달리 신경 쓸 일이 거의 없다. 냉각팬처럼 수시로 보충수를 넣지 않아도 되고, 적정 용량의 냉각기를 선택했다면 수온이 떨어지지 않는 문제로 고민할 필요도 없다.
나. 단점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일 것이다. 저렴한 것도 30만원 이상이라 냉각팬에 비해 수십 배 비싸다. 전력 사용량도 높아서 전체적으로 전기세를 증가시킨다. 원래 전기 사용량이 많은 집에서 냉각기마저 자주 돌아간다면 높은 누진세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다음으로 열과 소음, 그리고 크기 문제를 들 수 있다. 냉각기는 수온을 낮춰주지만 자체적으로 열을 내뿜는다. 냉각기에서 발생하는 열은 여름에 더욱 뜨겁게 느껴질 것이다. 모델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대체로 소음도 큰 편이여서, 소리에 민감한 사용자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크기 또한 상당하기 때문에 집에서 한 자리 차지하게 되고, 사람에 따라서는 이를 좋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에 비하면 냉각팬은 열도, 소음도 거의 없는 편이며 자리 또한 거의 차지하지 않으니 냉각기와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3. 더 나은 선택
냉각기와 냉각팬은 상반되는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선택이 쉬울 것도 같지만 막상 고르려고 하면 또 그렇지만은 않다. 만일 아크로포라 위주의 민감한 산호를 기르고 있고, 수조가 크며, 통풍이 잘 안되는 지역에 살고 있고, 또 집을 비울 때가 많다면 냉각기를 사용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만일 연산호 위주의 산호를 기르고 있으며, 수조가 작고, 상대적으로 북쪽 지방(그마나 시원한)의 통풍이 잘 되는 곳에 거주하며, 또 수조를 자주 관리해줄 수 있다면 냉각팬으로도 여름을 나는 데엔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수조 전용 장비는 아니지만 에어컨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에어컨을 적절히 잘 사용해 줄 수 있다면 냉각팬이나 냉각기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 냉각팬과 냉각기, 그리고 에어컨을 모두 갖추고 운영하면 좋을 테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으니 자신이 기르는 생물에 맞는 적절한 장비를 갖추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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