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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05. 10. 27.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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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기분이 우울할 때, 늦은 밤이라 딱히 운동을 할 수도 없을 때, 복잡하고 긴 장문의 책은 읽기에 부담스러울 때, 딱히 들을 만한 음악도 없고 찾아 듣는다 하여도 그 우울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을 때, 이럴 때 나는 가볍게 쓴 단편 수필집을 찾는다.

읽기에 부담이 없어야 하고 세상을 원망하거나 조소하지도 않으며 훈계조의 글이 아니면 더욱 좋다. 몸은 의자 등받이에 푹 기대고, 양발은 다른 의자 위에 쭉 뻗어 올려 놓은 채 읽을 수 있는 책이면, 가끔씩 손 왼쪽에 놓인 차가운 커피를 홀짝거리며 읽을 수 있는 책이면 더욱 좋다. 그래서 난 즉석에서 이 책을 샀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의 책에 관한 세간의 평가가 그리 좋지만은 않지만, 상관없다. 몸에 아무리 나쁘다고 한들, 난 그 커피의 맛을 좋아하니까.

난 바르지 못한 것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정의를 부르짖고 싶지는 않다. '이것이 정의이므로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두 악마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참 이상한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던 간에, 그의 글은 내게 어떤 강요도 하지 않는다. '이런 책은 읽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사람보단, '뭐, 아무래도 상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편안함이 좋은 것이다.

적어도 이렇게 우울한 순간만큼은 말이다.


2005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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