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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인식 혹은 공감의식의 결여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5. 10. 22.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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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코미디언이자 프로그램 진행자인 빌 마허가 자신이 출연했던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작은 소동을 일으킨 적이 있다. 부시가 9.11 테러 당시 쌍둥이 빌딩으로 돌진했던 테러리스트를 가리켜 <겁쟁이들>이라고 표현하자, 가미카제는 겁이 많지 않다고 지적한 것이다. 비행기를 탈취한 후 자신이 그 비행기에 타고 있는 채로 건물에 돌진하는 일은 분명 겁쟁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그의 지적을 옳게 볼 수 있는 어떤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 표현 직후 소동이 일었다. 그가 완전히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관점에선 옳은 부분도 있으므로 "왜, 내 얘기가 틀렸어?"라고 강하게 항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소동은 해당 프로그램의 종영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아직도 9.11 테러로 고통받고 있는 시민들 앞에서, <가미카제는 용감했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갑자기 꺼낸 것은 무척 무례한 언사였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주변에서 무척 자주 일어난다. 세월호 사건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일각에서는, 세월호에 탑승했던 학생들이 국가적 업무를 하다 희생된 것이 아니라 그저 놀러가다 사망한 것이므로 그렇게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나서서 보상해 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죽음에 무게차를 둘 수 있는가 또는 타의적 희생과 자발적 희생의 구별이 가능한가의 문제는 철학의 범주에 속하고 따라서 논쟁하며 토론할 여지가 있다. 그들의 주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런 주장을 아직도 그 사건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펼친다는 점이다. 그들은 "내 말이 틀렸어? 군인들의 희생이 더 값진 거 아니야?"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장의 논거 방식이 아니라 그 주장을 하고 있는 주변 상황을 먼저 고려했어야 했다.

 

위와 같은 일들을 뻔뻔한 성격이상자들이나 인터넷의 익명에 숨은 가학성애자들이 벌이는 일로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수시로 벌어진다. 가령 한 남성이 신문을 보며 "이놈의 독재정권이 빨리 물러나야 할 텐데"라며 한숨을 쉬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자신이 독재정권을 싫어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기분이 좋지 않음을 명백히 표현하고 있다. 이런 사람을 앞에 두고 여자가 다음과 같이 대꾸한다고 생각해 보자: "독재정권이 꼭 나쁜 건 아니지. 덕분에 경제가 빨리 발전했잖아." 제일 처음에 언급했던 사건과 상당히 유사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어느 정도 지식을 쌓은 사람이라면, 독재정권이 모든 면에서 나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분명 독재라는 정치체제에도 장점이 있다. 문제는 그 발언을 그 상황에서 꼭 했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런 발언을 할 수도 있고, 하는 게 당연할 때도 있다. 바로 토론의 상황에서이다. 그땐 옳고 그름을 가리고, 상대의 말이 부당하다고 느끼면 강하게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런데 위의 상황에서 남자가 그런 토론의 상황을 원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내일 비가 오기 때문에 자가용으로 출근해야겠다>는 남자에게 <자동차가 고장나서 이용할 수 없다>고 답변해주는 것과도 다른 상황이다. 전자는 공감이 필요한 상황인 반면, 후자는 공감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몇, 아니 때로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구별도 하지 않은 채 모든 상황을 사실을 따지는 형태로 몰고 간다.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다음과 같은 예도 들 수 있다. "오랜만에 산에 오니까 참 좋다. 공기도 좋고"라는 아내의 말에, 남편이 "이렇게 갑자기 등산하면 오히려 무릎 망가져. 그리고 오늘 미세먼지 농도 엄청 높아"라고 대꾸하는 경우이다. 아내는 남편의 말에 기분이 상할 것이고, 남편은 자신의 말이 틀리지 않았으니 기분 나빠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제 아내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말을 그렇게 꼭 따져야겠어? 그냥 공감해주면 안돼?" 남편은 그게 아내의 최후통첩인지도 모른 채 다음과 같이 대꾸한다: "당신이 내 말에 공감해주면 되잖아. 왜 당신은 내 말에 공감 안 해주면서 당신 말에는 공감해 달래?" 남편은 자신의 그런 주장이 무척 합리적이라고 믿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의 최초 발언은 "긍정"(남편의 공감을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했고, 남편의 최초 발언은 "반박 이후의 긍정"(자신의 반박에 아내가 공감을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최초의 두 대화에서 남편은 반박당한 적이 없지만 아내는 반박당했다는 차이를 남편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부부란 정확한 사실을 따지는 관계가 아니라 공감을 기대하는 관계라는 점 때문에 남편의 발언은 아내에게 더 큰 상처로 남게 된다.

 

물론 이런 일은 남녀의 구분없이 일어나며 남녀의 상황이 바뀌면서 수시로 벌어질 수 있다. 이런 문제는 자신이 제시한 의견은 일단 공감해주길 바라면서도 타인의 의견은 사실 관계를 정확히 따지려고 하는 심리가 배후에 깔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음의 경우는 어떨까? 남자 A가 <물과 음식을 같이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하니까 앞으론 식후 10분 뒤에 물을 마시자>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가 이 말을 꺼낸 목적은 <소화를 위해 식후 10분 뒤에 물을 마시자>라는 것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그 얘기를 들을 B가 <우린 물과 음식을 동시에 입에 넣은 적이 없어. 그러니까 물과 음식을 같이 먹은 적이 없어>라고 대답한다면 과연 남자 A는 어떤 생각이 들까? <물론 물과 음식을 동시에 먹은 적은 없지. 그렇게 먹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내 말뜻은 그게 아니잖아.> <난 물과 음식을 같이, 그러니까 동시에 먹은 적이 없어서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을 뿐이야. 내 말이 틀렸어?> 참 이상한 대화 같지만 이런 이상한 대화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너무나도 쉽게, 너무나도 자주.

 

근래들어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적을 만들기란 참으로 쉽고ㅡ불행인지 다행인지ㅡ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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